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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Dec 05. 2019

정의론

PD수첩 <검찰기자단> 편을 보고

휴대전화 소지가 금지되었던 2000년대 후반의 한 군부대. 대대 선임 장교와 중대장이 병사들의 생활관을 뒤지고 나섰다. 몇몇 병사들이 몰래 휴대전화를 반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첩보 아닌 첩보를 입수한 다음이다. 운전병이 밖에 나갔다가 가끔 몰래 외부 음식을 가지고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애교 수준이라 몇 번 눈감아준 적은 있었지만, 휴대전화 사용은 다른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생활관을 샅샅이 뒤져 보니 무려 10여 명의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몰래 들여온 것 아닌가. 몇몇은 매트리스 속에 숨기거나 야상 점퍼에 숨겨두었고, 몇몇은 지레 쫄아서 자수했다. 후임에게 빼돌릴 것을 지시한 몹쓸 녀석도 있었다.


자, 여기까지는 내가 군 복무 당시 겪었던(나는 검사를 하는 쪽이었지만) 일화를 조금 각색한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를 꺼낸 건 한 가지 화두를 던지기 위해서인데, <이들을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대학 시절 한 번쯤은 접했을 법한 '정의론'에 대한 문제다. '처벌의 정의(justcie)란 무엇인가' '공정한 처벌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응보주의적 관점'과 '공리주의적 관점'이라는 기존의 시각이 이미 제시돼 있다. 그런데 이것 말고 조금 다른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대충 이런 어려운 이야기할 거라는 뜻.


다른 사람의 같은 행동은

똑같이 비난받아야 하는가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불시 점검을 진행한 다음에 휴대전화를 자진해서 반납한 병사들을 똑같이 처벌해야 하는가?> <후임 병사를 시켜 휴대전화를 빼돌리려 시도한 병사는 더 크게 처벌해야 하는가?> <혹시 몸이 크게 아프신 부모님의 안위를 걱정해 몰래 휴대전화를 부모님의 생사 확인용으로만 활용했다면 이 병사는 처벌을 적게 받아야 하는가?> <휴대전화를 가져만 오고 쓰지 않았다면 처벌받아야 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물론 다들 의견이 있겠지만, 누구도 '당신이 옳습니다'라고 만장일치로 통과할 수 있는 의견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위의 도덕적 질문을 정리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했다면, 이들의 행동은 모두 동일하게 평가받아야 하느냐, 혹은 상황과 처지와 의도 등에 따라 다른 판단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문장으로 정리된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며칠 전 방영된 PD수첩 <검찰기자단>과 그에 대한 기자들의 비판, 또 그에 대한 재비판을 보며 다시 한번 찾아보는 중이다.


PD수첩 <검찰기자단> 편 유튜브 섬네일. 제목만 보면, 이 정도 질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는 수준. 그러나...


PD수첩의 지적,

기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PD수첩이 방송에서 제시한 큰 주제는 <검찰기자단은 폐쇄적이고 때론 이익집단처럼 행동한다> <검찰기자단은 검찰에게 이용당하고 있으며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에 있다>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많은 기자들은 이런 주제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주제에 따르는 근거들이 기자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PD수첩이 위의 주제를 언급하기 위해 제시한 사례들을 예로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기자들이 줄을 서서 차장검사실에 한 명 씩 들어갔다 나가고, 거기서 들은 내용을 '단독'을 달고 받아쓰기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모습은 검찰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경찰에서도 과장 방에 기자들이 한 명 씩 드나들며 질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론 대응 라인이 단일화돼있는 기업과 정부부처라면 대부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최근 읽은 일본의 기자 출신 작가가 쓴 소설을 보니 이런 모습은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내 상식이 맞다면 방 안의 차장검사는 단독이 될만한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다음 <주요 피의자의 소환 내용과 귀가 예정 시간 등을 기자단에게 문자로 전달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자. 이것 역시 많은 곳에서 이뤄지는 행위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불필요한 마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그러라고 수사공보규칙이 있는 것이다. 나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치소 수감 중 모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포토라인이 제공되지 않아 온 병원을 헤집으며 방문자들에게 불쾌감을 선사한 적이 있다. 이는 포토라인이라는 관습이 공리주의적으로 적합하냐, 아니면 인권 차원에서 부적절하냐의 논란과 더 가깝지, 검찰기자단이 공생 및 유착 관계라는 주장과는 결이 맞지 않다.


http://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127


<검찰 관계자가 전화해 특정 인물의 이름을 빼 달라>고 하거나 <기자들이 특정 인물을 기사에 언급함으로써 검찰 인사에 개입한다>는 부분. 이 또한 기자들과 취재원들 간에 수시로 벌어지는 대화다. 검찰뿐만 아니라 대부분 출입처에서 그렇다. 심지어 길에서 만난 취재원들에게도 '혹시 이름을 다 넣어도 될까요?'를 묻고 '아뇨 김모 씨로 해주세요'라는 조율을 한다. 물론 모든 것이 떳떳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나, 이 또한 검찰 기자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대기업 출입할 때도 저런 행태를 본 적이 있다.


<검찰기자단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며 횡포를 저지른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출입기자단이 따로 없는 곳에서는 잘 모르겠으나, 출입사와 출입기자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있을 법한 일들이다. 특히 남부지검 브리핑에서 PD가 질문을 했다가 "누구시냐"는 질문을 되돌려 받은데 '압박감을 느꼈다'는 내용도 좀 이상하다. 남부지검이 통상 법조팀 담당이 아닌 것이라는 부분은 둘째 치더라도, 비출입사가 질문을 했을 때 브리핑자가 '누구시냐'라고 물어보는 일도 사실 비일비재한 일이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558



근거가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이처럼 PD수첩이 검찰기자단의 악습이라고 지적한 내용들이 사실은 <대한민국 기자들의 악습>이라는 범주에 머무르는 것들이다. (*기자들의 이런 행태가 적절하느냐를 논하는 것은 논점 이탈이다) 이쯤 되면, 기자들이 PD수첩의 논리에 반발하는 심적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검찰 출입 기자만 그러는 게 아닌데 왜 저런 걸 가지고 하필 지금 콕 집어서 비판하는 거야?"라는 것이다.


글 첫머리에 군부대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휴대전화를 숨겼다가 들킨 10명의 병사 중 1명이 분대장이었다는 이유로 1명을 콕 집어 강하게 처벌하는 것은 합당한가?'라는 질문은 '기자단 문화의 단점을 보여주는 출입처가 많은데 검찰 기자단이라는 이유로 콕 집어 지적하는 것은 합당한가?'로 바꿔 읽을 수 있는 것이다.


PD수첩 방송의 부족한 점은 여기다. <검찰 기자단은 다른 기자단과 마찬가지로 출입기자 제도의 단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 등의 이유로 특 히 비판받아야 한다>는 논리 구조를 명쾌하게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 등의 이유'가 명쾌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기자단과 마찬가지로'라는 부분은 애써 외면한 듯하다. 어쩌면 진짜 몰랐거나. 그러다 보니 기자들은 불만인 것이다. "충분히 못한 근거로 검찰 기자만 콕 집어 욕을 한다. 최근 시국을 고려했을 때 의도적이다"라는 반발이 나오게 된다.


예컨대 한 사람이 어떤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그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왜 하필 지금인지 궁금해할 것이다. 보통은 '최근의 연구 결과가 그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구나' 라든가, '최근 새로운 것을 발견했군' '새로운 사건이 생겼군' 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근거라는 것이 다 해묵은 팩트였던 거다. 그럼 사람들은 "갑자기 왜 지금?"이라며 그 시의성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얼핏 PD수첩이 제시한 고민을 이해해볼 수도 있다. 기자들에게 있어 검찰은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가진 존재다. 또 기자들도 잘못 판단하거나 오보를 할 때가 있다. 뒷단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는 시민들로서는 답답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이들이나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을 다루는 경우라면 그 파장이 크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눈빛을 보낼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보를 가진 자와 그것에 어쨌건 접근하고 보도하고 싶은 기자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딜레마다. PD수첩은 그 필연적 딜레마와는 다른 '검찰 기자만의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했다'며 가지고 나온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은 '왜 지금' '왜 검찰기자단이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자들은 안다. '설익은 기획'이 나올 때는 이유가 있다.



*참고한 글


https://www.youtube.com/watch?v=9lrk_DR2alI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989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1205/986668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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