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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Mar 09. 2020

[D+274] 혼자 서는 것도 무서운 쫄보

재미로 세워봤을 뿐인데

“아빠들에게 아기를 맡기면 생기는 일.”


뭐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짤 모음을 본 적이 있다. 아기를 가지고 온갖 장난을 치는 아빠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기 얼굴에 낙서를 하거나, 아기와 스릴 있게 놀아주는 모습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도 가끔 그런 마음이 든다. 평소에는 장난을 치는 것도, 당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왜 그렇게 아기한테는 장난이 치고 싶을까.



장난이 얼마나 재미있게요?


그렇다고 장난을 심하게 치는 편은 아니다. 아기의 발달은 어떤지, 뭘 싫어하고 좋아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실험 같은 것.. 이라고 핑계를 댄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블라인드를 무서워하는 아기에게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블라인드 끝에 머리를 꿍 하고 가져가 보는 것이다. 아기는 눈을 찡그리며 쪼는데, 이게 웃기기도 하고 블라인드에 괜한 공포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해서 몇 번을 더 해본다. 결론은? 아기 엄마의 호통이지 뭐.


이날은 엄마가 주말 외출을 한 날이었다. 꽉 찬 8개월이 되도록 기어 다니기는커녕 겨우 ‘엎드려 뻗쳐’ 자세를 하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얘가 다 할 수 있는데 귀찮아서 안 하는 것 아닐까?’ ‘기고 서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는 거 아닐까?’ 같은 쓸데없는 생각.


그런데 이 생각이 딱히 또 틀린 것도 아닌 것이, 우리 아기는 정말이지 도전정신이 부족하다. 한두 번 해보고 안될 것 같으면 매우 맘 편하게 포기한다. 예를 들면 두 번 정도 배밀이를 하면 가져갈 수 있는 장난감이 눈앞에 있어도 한 두 번 낑낑대다 포기하고 홱 돌아서는 식이다.



서 있는 것마저 무서운 우리 쫄보


그래서 호기심이 든 아빠는 아기를 소파 앞에 세워봤다. 두 손으로 소파를 잡은 걸 확인한 다음에 슬며시 겨드랑이를 잡았던 손을 빼 보았다. 오,, 그런데 제법 잘 서 있는 것이 아닌가? 1초, 2초, 3초,, 10초 정도도 거뜬했다. ‘역시 아빠의 감이 틀리지 않았군’이라며 스스로 대견해 한 뒤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그래야 빨리 들어올 것 같아서(이래서 엄마들이 하루 종일 아빠한테 아기 사진을 보내는구나).


더 웃긴 것은 혼자 서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아기가 금세 울상이 됐다는 것. 아빠한테 가고 싶은데 걸을 수가 없으니 가뜩이나 처진 눈이 더 쳐진다. 입이 삐죽 대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안아줘야 했다. 역시 세상 쫄보 다운 반응.


어쨌든, 장난기가 발견한 아기의 잠재력(?). 그래 너는 조금 쫄보일 뿐이었구나. 언제 그랬나 싶게 잘 걷고 뛰어다니겠지. 다만 남들보다 조금 (많이) 신중할 뿐이구나. 그래, 엄마랑 아빠는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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