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세 번째 날이 밝았다. 점점 시차 적응은 되어갔고 주변 풍경도 익숙해졌다. 어제와는 다르게 짙푸른 하늘이 맞이하는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9시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투어 예약이 되어 있어서 첫날 아침 식사를 했던 근처 카페에 가서 초콜릿이 뿌려진 카푸치노와 갓 짜낸 오렌지 주스, 빵으로 간단히 허기를 메우고 성당으로 갔다. 우리가 첫 타임 투어이어서인지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세계적인 명소답게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호텔이 이 근처라서 오다가다 보기만 했는데 제대로 탐방을 해볼 수 있어서 기대가 되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성가족 대성당으로도 불리며 1882년 3월 19일에 공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공사를 하고 있는 성당으로 살아있는 전설이 된 바르셀로나 최고의 명소이다. 가우디의 계산대로라면 2082년에 준공이지만, 현대 건축 기술의 발달과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에 맞춘다는 스페인 정부의 의지 때문에 속도가 나고 있다. 본래 유럽은 기부금만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고, 성당 건축에 있어서 100년 이상 걸렸던 성당이 즐비했다. 익히 아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나 바로 근처에 있는 바르셀로나 대성당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런 성당들은 이미 공사가 끝났고 어떤 의미로 현재까지 그런 방식을 고수하며 건축을 하는 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유일하므로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그래서 공사를 급하게 강행하는데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공사를 빨리 하기보다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힘으로 하나씩 완성되기를 바랐다. 이미 공사비를 충당하는 기부금은 충분하니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예수의 탄생 파사드에서 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여전히 공사가 활발히 진행 중
2010년 11월 7일에 지금은 선종한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축성한 이력이 있는데 본래 준공 후 하는 걸 생각하면 바티칸의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 알 수 있다. 이 축성으로 인해 성당의 격이 대성당에서 더 높은 대성전(Basilica) 급으로 올라갔으나 보통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별다른 구분을 하지 않고 말하기에 대성당으로 표현을 하겠다. 한국 천주교의 정식 명칭에 따르면 '속죄의 성가정 대성전'이 된다. 성가정은 예수, 성모 마리아, 나사렛의 성 요셉을 의미하며 3월 19일은 성 요셉의 축일이다. 처음 착공은 1882년이지만 본래 건축가는 교구의 건축가인 프란시스코 빌라르가 공사 과정에서 사임하게 되고 후임으로 1883년부터 가우디가 도맡아서 하게 되었다. 성당 수석건축가가 된 가우디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영광을 바치기 위해 이 공사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러나 가우디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 완성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과는 다르게 구체적인 설계도를 남기진 않았다. 그래서 생전 가우디가 만들어 놓은 탄생의 파사드 부분을 가지고 그 반대편을 만들고 나머지도 후대의 건축가들이 채우게 되었다. 본래 성당을 지을 때 미사를 볼 수 있는 부분을 맨 먼저 만든다. 그것은 미사를 통해 기부금을 모으고 이걸로 공사비를 충족하기 위함인데 가우디가 그렇게 짓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나 싶었다.
예수의 탄생 파사드에서 아이와 나
가우디 건축에서 빠지지 않은 것이 곡선이다. 성당 건축의 본류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넘어 고딕 양식이 주를 이뤘는데, 고딕 양식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잘 실현되지만 벽체가 약해서 드높은 첨탑을 지탱하기 어려워서 공중 부벽을 설치해야 했다. 이걸 해결하고자 안전성과 미학을 다 잡은 현수선 구조를 만들어 건축에 도입했다. 이는 실의 중간에 추를 매달아 휘어지는 것을 연결해 곡선으로 만든 구조체의 안정적인 모습을 찾아낸 것이었다. 파사드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중앙의 높은 첨탑과 4대 복음서의 성인 마태오, 루카, 마르코, 요한을 상징하는 4개의 첨탑이 있으며 12 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첨탑이 솟아 있다.
현재는 주 출입구이지만 성당 오른쪽 부분인 예수의 탄생은 완성되었고 왼쪽 부분인 예수의 수난은 거의 완성 직전이지만 정면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영광은 아직 진행 중에 있다. 북동쪽인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 생전에 완공되었고 유려한 곡선이 사람들을 맞이했다. 제일 대중 매체에 많이 소개된 구역이 아닐까 싶다. 예수 탄생 관련된 내용이 많으며 왼쪽은 요셉의 '희망의 문', 오른쪽은 성모 마리아의 '신앙의 문', 가운데는 예수의 '사랑의 문'으로 세 출입문이 있다. 지금 주 출입구의 반대쪽인 남서쪽의 수난의 파사드는 뒷부분과는 절제된 모습이 보인다. 1954년부터 수비라치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가우디의 구체적인 설계도가 없어서 그의 생각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탄생의 파사드와 느낌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떼어놓고 보면 전혀 다른 건축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우디의 생전 말처럼 공포와 경외심을 보이도록 뼈로 된 건축 같았다. 그리고 성당의 남동쪽인 영광의 파사드는 2002년부터 공사에 들어가서 완성되면 주 출입구가 될 구역이지만 한창 공사 중에 있었다. 전혀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모형이나 그림으로 제작된 것이 있어서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문제는 도로와 맞닿아 있어서 준공 이후 어떨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2011년에 완성된 성모 마리아 탑의 별이 빛나고 있었고 더 높게 예수 그리스도 탑이 세워지고 있었다.
성당 내부 출입문
성당 내부 제단과 출입문
한참을 탄생의 파사드 앞에서 감탄을 하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마치 숲 속에 있는 느낌을 갖게 했다. 석조로 된 숲 속으로 들어가서 거대한 나무 기둥들 사이로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고, 백미는 시간대에 따라서 내부 모습이 변한다는 것이었다. 동쪽에서 해가 뜰 때는 파란색, 초록색, 연두색 등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빛이 쏟아져 탄생의 푸른빛이 실내를 채우게 되며 서쪽으로 해가 질 때는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등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죽음을 담아내게 된다. 오전 시간이어서 햇빛을 받는 탄생의 파사드 쪽은 녹청색 빛을 뿌리고 있었고, 반대쪽 수난의 파사드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붉은빛을 쏟아내고 있어서 이런 공간에 내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정말이지 신이 만들어낸 자연의 모습을 담아낸 가우디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유럽의 여러 성당을 가보았던 나에게 라테라노 성당, 성 베드로 성당, 노트르담 성당, 세인트 폴 성당, 피렌체 두오모 등보다 더 놀랍고 경이로운 곳이 여기였다. 인간의 상상력과 천재성이 발휘된 유일무이의 성당이면서 기존의 개념을 탈피한 성당으로 특별하다는 것으로도 부족해 보였다. 수난의 파사드까지 구경을 하고 지하 전시 공간을 둘러보고 나와서는 주변을 돌면서 마음속으로 감동을 넘치도록 채워나갔다.
시시각각 변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
숲에 들어온 듯한 성당 내부
스페인의 보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2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서 점심 식사를 이 근처에서 하기로 했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하려고 했던 호텔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게 나을 듯싶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두 눈에 담으며 떠났다. 레스토랑 오픈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호텔에 들러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유난히 바람이 부는 날이라 화창한 날씨와 다르게 생각보다 쌀쌀했다. 레스토랑은 호텔 카운터 직원에게 추천받은 식당인데 인터넷 평점도 매우 높았다. 젊고 친절한 사장님은 세심하게 살펴줘서 기분 좋게 식사할 수 있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은 콜롬비아 출신이고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했다. 우리는 이베리코 목살 스테이크, 먹물 파에야, 달팽이 요리, 판 콘 토마테, 오믈렛(토르티야) 등을 주문해서 먹었다. 먹고 나서 한국전쟁 참전의 고마움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같이 사진 찍고 싶어서 찍자고 하니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미국인 할아버지가 다 같이 찍어주었다. 계산할 때 카드로 한다며 두 손가락으로 네모 제스처를 취하니 축구에서는 경고 표시라고 하며 한국 사람들이 하는 제스처가 특이해서 재미있다고 했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다음 목적지인 구엘 공원을 향해 걸었다.
판 콘 토마테, 오믈렛, 달팽이 요리
이베리코 목살 스테이크, 먹물 파에야
구엘 공원은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아내가 가장 고대하고 기대했던 공간으로 본인의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놓으며 여행을 준비했던 곳이기도 했다. 가우디의 부유한 후원자인 구엘 백작은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벗어나 전원주택단지를 조성해 그쪽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건설에 박차를 가했지만 당시 시내와 너무 떨어지고 치안 문제로 인해 구엘, 구엘 가문의 변호사 그리고 가우디만 이쪽에 살게 되었다. 60여 채의 건물을 세우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고 3채만 건설된 것이다. 경비실과 관리실을 짓게 된 이유가 바로 치안 때문이었다. 나중에 구엘 가문이 이 지역을 시에 기증하면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 공원에는 영어로 Park라고 적혀있어서 영국의 정원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다른 세상인 듯 한 구엘 공원
구엘 공원의 대표 건물들
구엘 공원에서 포토 타임
나름 언덕에 있는 곳이라서 거리보다 체감상 힘들게 올라갔다. 내리쬐는 햇볕에 더워져 점퍼를 벗고 반팔로 다녔다. 예약 확인을 하고 입장하니 아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봤던 사람들이 있어서 웃음이 터졌다. 가우디 특유의 건축물과 다리, 조경 등을 보러 온 사람들 속에서 우리도 이곳저곳 다니며 사진으로 순간을 담아냈다. 소원을 비는 작은 웅덩이 같은 곳이 있어서 아이에게 2센트 동전을 주어 던지게 했는데, 빗나가서 아이가 계속 아쉬워했다. 어제도 그렇지만 오늘도 가우디의 작품을 잔뜩 사진 폴더에 담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가우디의 작품이 있기에 바르셀로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도시가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답게 관람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벙커에 가는 길에는 '관광객은 집으로 가라'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당국은 도시세를 받고 있지만 관광객으로 인한 혼잡이나 땅값 상승 등으로 현지인에게는 세계적인 도시에 사는 일상의 불편함이 고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투어리즘의 도시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보이는 벙커에 가는 길은 동네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 대공포대가 있었던 벙커는 시내를 한눈에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바람이 나름 세찼지만 오르막 길 때문에 더워서 겉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올라갔다. 아이는 힘들다며 발목에 불이 난다고 했지만 끝까지 혼자 힘으로 올라왔다. 야경을 보러 많이 온다는데 우리는 시간이 오후 4시여서 오렌지 빛깔로 물든 도시를 보는데 만족했다. 온갖 그래비티 낙서와 부서진 콘크리트 벽 때문에 굉장히 힙한 공간이고 젊은이들, 특히 커플들이 많아서 조용한 데이트 공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5시가 되기 전까지 바르셀로나 전경을 바라보며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을 위안했다.
벙커에서 본 바르셀로나 전경
여기는 바르셀로나
좋은 곳에 왔으니 빠질 수 없는 점프
내려가는 길은 산 파우 병원을 가기 위해 올라왔던 곳과 다르게 갔다. 산 파우 병원은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몬타네르가 1902년 설계한 현대식 병원으로 가우디와 비슷하면서 다른 그만의 기하학적이고 감각적인 아르누보 양식을 선보이는 건물로 한번 방문할 가치가 있었다. 예술은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본 그의 신념에 맞추어 병원의 기능적인 측면만 부각된 현대의 인식과는 다르게 따뜻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가우디만이 아니라 몬타네르라는 건축가가 있다는 것을 카탈라나 음악당과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신념에 맡게 병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보이게끔 설계했다니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의 마지막 건축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산 파우 병원
저녁 식사는 내가 먹고 싶어 했던 칼솟을 위해 아내가 찾은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한 20분을 더 걸어가서 조용한 동네 모퉁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잔뜩 걸린 방문 사진들과는 다르게 한산해 보여서 예약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마지막 만찬이라 이번에도 넉넉히 골랐다. 먼저 대파구이요리 칼솟과 빠질 수 없는 감바스 알 아히요, 파에야, 판 콘 토마테를 주문했다. 나와 아내는 상그리아 대신 틴토 데 베라노, 아이는 어김없이 오렌지 주스를 시켰다. 판 콘 토마테는 직접 마늘과 토마토를 빵에 비벼야 해서 색달랐다. 칼솟은 손으로 대파의 구워진 겉면을 떼어 내고 익힌 속을 먹는 건데, 소스에 찍어먹는 게 내 입맛에 맞아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머지 요리들도 다 무난해서 스페인 요리가 한국인들에게 잘 어울린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감바스 알 아히요와 판 콘 토마테
칼솟과 파에야
드디어 칼솟 먹방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밤을 보고 가자고 했다. 걸어가는 이 길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 마지막일 수도 있다 생각하니 아쉽게 느껴졌다. 성당은 어두운 밤하늘을 병풍 삼아 빛나고 있었다. 드높게 솟아있는 첨탑을 보니 과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다웠다. 다들 하루종일 시내 전역을 걷고 걷느라 발바닥이 고생을 많이 해서 아내와 아이는 발바닥에 패치를 붙이고 피로를 풀었다. 두 사람이 잠든 한밤에 글을 마무리하며 가우디의 도시에서 갖는 마지막 밤을 매만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