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 아침은 시간에 추를 매단 것처럼 정신없이 지나갔다. 호텔을 나가기 전에 개인적 업무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한국으로부터 받아서 그것을 수습하느라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몇 차례 통화를 마치고 서둘러 준비한 다음에 체크 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우버 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도저히 기차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거 같아서 호텔 카운터에 물어본 대로 도로변에 있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다행히 바로 택시가 나타나서 천사가 강림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늦지 않게 역으로 갈 수 있었다. 우리는 마드리드로 고속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날이기 때문에 바르셀로나 산츠 역으로 향했다. 산츠 역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역으로 스페인 각지를 철도로 연결하고 있다. 9시 마드리드행인데 8시 40분을 넘겨 도착했기 때문에 나는 잠깐 커피 하나 살까 했지만 짐 검색도 있어서 불안한 아내는 바로 들어가자고 했다.
바르셀로나 산츠 역
짐 검색을 마치고 우리가 탑승할 5번 플랫폼에 내려오니 아이가 소변이 마렵다고 했다. 택시 안에서부터 조금 마렵다고 했는데 역에 도착해 보인 화장실이 마침 공사 중이라 5번 플랫폼으로 바로 왔다가 화장실을 못 찾은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아이와 중앙 로비로 올라갔는데 짐 검색대와 표 검사를 다시 통과해야 하는 걸 알았다. 시간이 10분도 안 남은 상황이라 당황스러웠고 부리나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표를 전송해 달라고 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플랫폼으로 정신없이 뛰어서 다시 오니 이미 기차는 오고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도착지를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일단 아내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어서 마음이 타들어갔는데 아이가 우리 좌석이 6번 차량이라는 걸 기억해서 6번으로 탔다. 거기서 두리번거리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내는 안 보이고 전화는 안 돼서 초조하게 있다가 통화가 되었다. 아내가 6번 차량 내부에 안 보여서 미리 탔으면 있을 텐데 계속 안 보이니 우리가 잘못 탔나 싶었지만 아내가 이쪽으로 온다고 해서 끊고 무사히 만났다. 그때 이미 기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캐리어를 짐 칸에 싣고 자리에 앉으니 그때서야 마음이 조금씩 놓였다. 아이와 아내는 8C, D좌석이고 나는 뒷좌석에서 스페인 할아버지와 함께 타고 갔다. 아이는 기차 화장실에서 참았던 소변을 보고 왔다. 겨우 기차 타는 일정만 있었는데 불덩이를 먹은 듯한 아침이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르셀로나 교외 풍경이 그때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기차 안에서 간식, 커피 등을 파는 카트가 지나갔다. 우리나라는 사라진 옛 풍경이어서 그런지 반가웠다.
고속철 내부에서 본 간식 판매 카트
스페인의 두 번째로 방문하는 도시이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는 익히 알고 있지만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와 경쟁 관계에 있는 도시이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유럽의 거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카를 5세의 아들 펠리페 2세는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상속받고 아버지와는 다르게 스페인에서 상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수도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고 귀족들의 입김이 강했던바야돌리드, 톨레도 등 카스티야의 예전 중심지를 벗어나 1561년 왕궁을 옮기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신항로 개척 이후 대서양이 상업 중심지가 되었던 세비야 등 남부 항구도시와 수도 마드리드는 거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이후 산업혁명으로 연결 짓는데 실패하고 소비도시인 마드리드로 모든 게 집중된 나머지 그 주변지역이 쇠퇴하게 되었는데 역설적으로 지중해 무역으로 번성하고 후에 산업적으로 성공했던 바르셀로나와 대비되는 곳이기도 했다.
도착한 마드리드 아토차 역
사라고사를 지나 11시 45분에 마드리드 아토차 역에 도착했다.이 도시에서는 호텔이 아닌 개인 숙박업소를 이용하기로 해서마드리드 현지 분위기를 더 느껴보고자 했다. 역 밖으로 나와서 캐리어를 끌고 10여 분을 걸어가자 숙소가 있는 거리가 나왔다. 아직 체크 인 전이어서 짐만 놓고 다시 나가기로 했다. 벨을 누르니 청소 중인 아주머니가 대답하고 문을 열어줬다. 프랑스 파리의 현지 숙소가 생각나는 구조였다. 짐을 놓고 나와서 솔 광장을 향해 갔다. 좁은 도로 거리에는 현지인들이 사는 듯한 모습이 펼쳐졌다.
0km 지점에 모인 3명
솔 광장은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즉, 태양의 문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그건 예전 중세 시대에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이고, 수많은 여행객이 찾는 장소라고 생각되는데 그건 광장 시계탑 쪽에 0km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곳을 밟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근처에마드리드의 상징인 나무를 잡고 서있는 우람한 곰 동상이 있었다.우리가 사진을 찍는데 3명의 아이들과 여행 중인 오스트리아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어달래서 찍어주니 매우 만족해했다. 이곳에는 얼마 전인 12월 31일에 마드리드 사람들이 청포도 12알을 먹으며 자정을 축하하는 노체 비에하 행사가 있었다. 그건 1895년 포도 농사 풍년으로 국왕이 포도를 나눠줬는데 1909년에 포도 판매 증진을 위해 농민들이 기획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마드리드의 상징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해서 아내가 찾은 하몬 전문 레스토랑을 찾았다. 1시에 오픈이어서 잠시 기다리고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1층은 바 형태로 간단히 맥주와 하몬 샌드위치 등을 먹을 수 있었고 2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오늘의 요리 중에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하몬 콘 멜론과 닭다리 구이와 돼지 갈매기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먼저 하몬 콘 멜론은 기대 이하여서 먹기가 조금 힘들었다. 아무래도 등급이 낮은 하몬을 쓰지 않았나 싶었는데 멜론의 수분으로 인해 다소 물컹해진 하몬의 식감이 참기 어려웠다. 하긴 우리가 바르셀로나에서 사 먹은 하몬의 한 컵 가격을 생각하면 이 레스토랑의 하몬은 등급이 낮을 듯했다. 다음에 레스토랑에서 먹는다면 어느 등급인지를 미리 물어보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대신에 멜론은 맛있어서 따로 먹고 하몬도 조각내어 바게트에 끼워서 먹었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뭔가 삐걱거리는 날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첫 식사
식사를 마치고 근처 마요르 광장으로 향했다. 날이 쾌청해서 걷는 재미가 있었고 바르셀로나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요르 광장은 솔 광장과 왕궁 사이에 있는 널찍한 광장으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광장이기도 했다. 한가운데는 전성기를 이끈 펠리페 3세의 청동기마상이 우뚝 서있다. 1619년에 완성된 이 광장은 펠리페 2세가 왕궁을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광장 공사 계획이 시작되었다. 펠리페 3세까지 이어지며 그의 명령으로 건축가 후안 고메스 데모라가 설계했는데 중앙광장으로서 여러 종교 재판, 처형, 무도회, 대관식, 투우 경기가 열렸던 곳으로 마드리드의 역사가 담겨있다.지금은 매년 마드리드 수호성인 성 이시도르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꽤 드넓었지만 아내는 다른 유럽 도시에서 많이 봐서 별다른 감흥은 없다고 했다.
마요르 광장에서 나와 아이
스페인 광장으로 가는 길에 알무데나 대성당과 마드리드 왕궁이 있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탁 트인 아르메리아 광장을 사이에 두고 대성당과 왕궁은 마주 보고 있었다. 바로크 양식의 알무데나 대성당은 상당히 거대했지만 전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압도되었던 우리에게는 지나가는 대성당의 느낌이었다. 왕궁은 1931년까지 국왕 알폰소 13세가 살았던 곳으로 현재는 왕실 행사가 있을 때만 활용된다고 한다. 건너편 왕궁과 대성당을 배경 삼아 순간을 남기고 다시 스페인 광장을 향해 걸었다. 스페인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놀이터가 많아서 공원 같았다. 마드리드 최대 번화가인 그랑비아 거리의 시작으로 광장 중심에는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이자 돈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 기념비와 돈키호테, 산초의 청동상이 있었다. 아이는 여기서 1유로 동전 2개와 2유로 동전 1개를 주워서 뛸 듯이 기뻐했다.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대성당과 왕궁
돈키호테와 산초 그리고 세르반테스
광장을 나와 근처 카페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처음 먹어본 코르타도는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로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설탕을 첨가하니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카페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둘러볼 데보드 신전은 이집트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특별히 방문했다. 몬타냐 공원 안에 있는 이집트 사원은 기원전 2세기에 지어졌는데 아스완댐 공사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이전부터 이집트 문화유산원조를 하던 스페인이 이집트 정부로부터 선물 받아서 1968년에 지금 자리로 이전하고 1971년에 보수 끝에 공개되었다. 이 신전은 당시 최고신인 아몬 레와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신전으로 마드리드의 또 하나의 명소가 되었다.신전 안에 입장하기에는 긴 줄을 기다리고 들어가야 해서 스페인 광장의 놀이터에서 아이와 그네도 타고 노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산 미구엘 시장을 들리기로 해서 가는 길에 왕궁과 대성당 사이 광장에서 잠시 지는 석양을 보며 마드리드 전경을 감상해 보았다. 거리의 아코디언 악사가 공기를 타고 음표를 보내 귓가를 두드리듯 멋진 음악을 연이어 들려주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아이가 지루해해서 보다가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코르타도 커피
데보드 신전에서 아내와 아이
마드리드의 석양
산 미구엘 시장은 보케리아 시장과는 다르게 거대한 건물 안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시장으로 1853년에 시작되어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시장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치즈, 튀김, 하몬, 토르티야 등을 팔고 있었고 여행객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현지인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많은 사람이 한 손에는 와인잔이나 맥주잔을 들고 있고 한 손에는 간단한 안주를 들고 거닐고 있었다. 우리는 초리조 샌드위치를 사서 먹으며 그 활기찬 분위기에 물들어 갔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어 숙소로 돌아올 때쯤엔 주위가 어둑해졌다.
시장 내부와 초리조 샌드위치
숙소에는 온수 문제로 인부 2명이 작업 중이어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나와서 마트에 갔다. 이틀 치 저녁 식사와 간식거리 등을 사기 위해서였는데 확실히 이렇게 장을 봐야 진짜 이 도시의 삶을 보는 듯했다. 돼지고기 등심과 삼겹, 닭고기 다리부위, 달걀, 가스파초 수프, 파스타, 소금, 후추, 마늘, 버섯, 새우, 샐러드, 주스, 요거트, 탄산, 초콜릿, 과자, 물 등을 사니 큰 봉지로 3개나 나와서 꽉 채운 봉지들을 양손에 쥐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메뉴로 돼지 등심 구이, 삼겹살 구이, 버섯볶음, 감바스 알 아히요, 샐러드, 토마토 파스타 등을 만들어 내놓았다. 다소 늦었지만 여유 있게 식사하고, 빨래까지 해서 널어서 부산스러웠던 아침과는 다르게 그나마 평온하게 마무리될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