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알람 소리에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6시 30분에 택시 예약을 해놔서 그전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야 했다. 6시에 아이까지 깨워서 다들 간단히 씻고, 옷 입고, 짐을 싸서 이틀 동안 묵었던 숙소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가니 택시가 기다리고 있어서 인사하고 탑승한 후 버스 터미널까지 갔다. 이른 아침이라 어두컴컴한 도로는 한산해서 금방 도착할 듯했다. 지나가는 길에 우리가 마드리드에 도착했던 아토차 역이 보였다. 아침이 오기 전의 마드리드 시내는 짙은 적막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바로 들어와서 승차 플랫폼을 확인했다. 그라나다 버스행 출발지는 23번이었는데 어딘지 안 보여서 바로 경찰에게 물어보고 찾아서 승강장으로 갔다. 6시 50분에 승강장이 열려서 예약 확인을 하고 탔는데 버스 안이 생각보다 커서 우리나라 버스보다 크고 길어 보였다. 그리고 내부에 화장실도 있어서 아이와 나는 바로 이용해 보았다. 승객이 우리 포함해서 12명이라 넉넉함을 느끼며 출발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바로 잠을 청해서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자다 깨다 하면서 갔는데 약한 빗줄기가 내리고 흐렸던 초반과는 다르게 2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휴게소 날씨는 매우 화창했다. 우리는 미리 싸 온 간식에 카페 콘 레체 2잔을 주문해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휴게소 내부는 우리나라 휴게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30분을 쉬고 다시 그라나다를 향해 남쪽으로 버스는 달렸다. 풍경이 우리나라와 매우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계속 가도 드넓은 평원 속에서 수많은 올리브 나무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걸 보니 과연 올리브 오일 생산 대국다웠다.2시간을 더 달려서 안달루시아의 태양이 푸른 하늘을 눈부시게 만드는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잠시 쉬어 간 고속도로 휴게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올리브 나무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면 가장 생각나는 투우, 플라멩코 등 태양 같은 정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스페인 남부지방으로 바로 아프리카를 맞닿아있어서 대서양과 지중해를 접하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남쪽 끝이지만 이슬람의 지배와 영향을 받아서 그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이색적인 지역이다. 711년에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여 1492년 나스르 왕조가 세운 그라나다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 문화가 스며든 지역으로 코르도바와 그라나다는 그 중심에 있었다.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왕과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 여왕이 혼인해 힘을 얻은 가톨릭 세력은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는데 박차를 가했다. 1492년은 가톨릭 세력의 국토회복운동인 레콘키스타가 성공적으로 끝난 해이면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로서 스페인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해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느껴보고자 그라나다에 왔다.
그라나다 버스 터미널
지나가는 길에 본 그라나라 투우 경기장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중심가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투우 경기장이 보여서 사진을 찍으니 기사님이 손가락으로 소 머리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호텔에 일단 짐을 맡기고 시내를 둘러보았다. 각종 향신료를 파는 노점이 많아서 거리에 풍기는 향이 진했다. 그라나다 대성당을 지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무덤이 있는 왕실 예배당을 갔다가 누에바 광장 쪽으로 나갔다. 누에바 광장 가는 길에 작은 광장인 이사벨 광장이 나왔는데 여기에는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의 산타페 협약을 묘사한 동상이 있었다. 여러모로 이사벨 여왕은 스페인의 전성기를 열게 된 지도자로 특히 그라나다에는 그녀에 관한 묘사가 많이 있는 듯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사벨 여왕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방안으로 콜럼버스를 등용해 카스티야가 신항로 개척의 열매를 얻길 원했고 실제로 그것이 시작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쌓아두고 파는 향신료들
왕실 예배당
산타페 협약을 묘사한 동상
날이 무척 좋아서 누에바 광장의 노천식당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판 콘 토마테, 하몬과 치즈를 끼운바게트, 추로스에다가 처음으로 클라라를 주문해서 먹었다. 클라라는 뭐든 섞어 마시는 걸 좋아하는 스페인에서 나온 음료로 맥주와 과일탄산을 넣은 가벼운 맥주였다. 한 모금 마시니 시원하고 달콤한 게 목으로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고 체크 인하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알함브라 궁전의 전망이 보이는 언덕 광장으로 갔다. 좁은 자갈 포장길을 따라가 본 궁전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내일 오전에 그 현장으로 갈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었다. 내려와서는 그라나다 대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누에바 광장에서 점심 식사
알함브라 궁전을 배경 삼아 아이와 나
바닥에 장식된 그라나다의 상징 석류
그라나다 대성당은 이슬람 사원인 메스키타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성당으로 1523년에 짓기 시작해 1703년에 완성되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는데 주변 도로가 넓지 않아서 옛 시대로 돌아간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었고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내부에는 무데하르 양식도 보였다. 유럽에 있는 성당은 여러 군데를 가보아서 감흥이 크지는 않았지만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던 이곳에서 최후의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수도 그라나다를 점령하고 세워진 성당이기에 그 당시 가톨릭이 지배하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얼마나 깊은 신앙심을 설파했을지 상상이 갔다.
대성당 앞에서 아내와 아이
화려한 성당 내부
대성당 관람을 마치고 바로 근처에 있는 호텔 체크 인을 했다. 그리고 머물 방으로 가니 테라스가 있는 매우 멋진 장소여서 마음에 들었다. 의자를 놓고 앉아있으면 가깝게는 시내 거리가 보이고 멀리 알함브라 궁전까지 보이는 전망이어서 오후의 한때를 보내기에 더없이 만족스러웠다.커피를 내리고 잠시 쉬다가. 호텔에 조리할 수 있게 주방이 있어서 저녁 식사 거리를 사러 근처 마트에 갔다. 조개, 새우, 관자. 파스타, 마늘, 화이트 와인, 레몬주스, 파파야, 달걀, 바게트, 복숭아 잼 등을 사서 저녁 식사와 다음날 아침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내일 9시에 알함브라 궁전 예약이어서 서둘러야 하는 게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장을 보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엘비라 문을 통과해 알바이신을 지나 산 니콜라스 전망대를 가기 위해서였다.
엘비라 문을 통과해 알바이신을 지나가기
알바이신 지구
엘비라 문은 11세기에 지어진 성문으로 아랍인들이 사는 도시의 주 출입문으로 지금 봐도 꽤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 안쪽에는 이슬람 인들이 예전에 거주했던 구역으로 지금은 관광 상품과 할랄 푸드 등을 팔고 있었다. 더 안쪽으로 올라가니 알바이신을 비롯한 그라나다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이 장관이었다. 서서히 일몰이 다가오고 있어서 열심히 걷고 또 걸어서 전망대에 도착하니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가장 유명한 전망대답게 그라나다의 여행객들은 다 온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온 인파를 뚫고 알함브라 궁전과 그라나다 시내를 두 눈에 담아보았다. 궁전 야경을 호젓하게 보기는 힘들어서 아까 갔었던 언덕 광장으로 갔다. 역시 여기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궁전을 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붉은 노을이 점점 사라지고 보랏빛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주변 풍경은 더없이 전설처럼 변해갔다.
알함브라 궁전과 노을
멋진 야경을 담고 나서 호텔로 돌아왔다.저녁 식사 메뉴는 알리오 올리오 베이스에 새우, 조개, 관자 등을 넣은 파스타를 준비했다. 먼저 마늘 두쪽을 까서 으깨고 올리브 오일에 볶은 다음 해산물을 넣고 볶고 화이트 와인으로 잡내를 제거했다. 팔팔 끓이며 소금, 후추로 간단히 맛을 내고 페퍼론치노로 알싸한 매콤함을 더했다. 아이는 너무 맛있어하며 아빠가 파스타 컵라면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면을 더 삶아주라고 해서 2그릇이나 먹었다. 창밖으로 살며시 보이는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을 보며 그라나다의 밤을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