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알함브라 궁전 투어의 날이 왔다. 오전 9시 예약이라서 일찍 일어난 우리는 아침 식사로 커피를 내리고 복숭아 잼을 바른 바게트, 스크램블 에그를 해 먹었다. 냉동실이 없는 냉장고라서 레몬 아이스크림은 물컹한 상태가 되어 포기해야만 했다. 호텔 카운터에 짐을 맡기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어서 결국 캐리어를 가진 채로 택시를 타고 알함브라 궁전으로 갔다. 친절한 택시 기사님 덕분에 짐 맡기는 곳을 안내받았다. 캐리어를 맡기고 나스르 궁전까지는 여유 있게 갈 줄 알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티켓 확인을 했고 처음 입장할 때는 여권까지 확인했다.
알함브라 궁전 입구
알함브라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 마지막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초대 군주인 무함마드 1세의 치세 때 건설이 계획되어 그라나다 왕국의 수도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궁전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스르 왕조를 알아야 하는데, 그라나다를 수도로 해서 그라나다 왕국이라고 불리는 나스르 왕조는 무함마드 1세의 할아버지인 나스르에게 이름을 따왔으며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에게 정복당한 마지막 통치자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궁을 떠나 북아프리카로 가면서 궁전을 떠나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나스르 궁전 가는 길
레콘키스타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그라나다 점령으로 완연한 가톨릭 국가 스페인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은 지금 봐도 묘한 느낌인데 마치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 같은 위치 같았다. 아야 소피아는 현재 박물관에서 이슬람 모스크가 되었는데, 알함브라 궁전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카를로스 5세)가 왕궁으로 쓰려고 자신의 이름을 딴 궁전을 지었다가 이후 사용되지 않고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며 황폐해졌다. 그러다가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 1829년 알함브라 궁전 방문 이후 이야기를 쓰면서 유명해졌고 복원에 힘썼으며 1984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도 복원 중이라서 훼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우리에겐 스페인 낭만주의 음악가이자 기타리스트인 프란치스코 타레가가 작곡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귓가에 이미 기억되고 있다.
알카사바에서 바라본 그라나다 전경
궁전은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무함마드 1세가 로마 시대 성채를 정비하고 확장해서 만든 알카사바가 있다. 여기에서 그라나다 시내와 멀리 만년설이 쌓여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까지 조망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나스르 궁전이 있다. 나스르 궁전은 입장 시간에 맞춰 들어가지 않으면 제한되는 구역으로 이슬람 건축의 정수가 담겨있는 곳이다. 세 번째는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지은 궁전으로 이슬람 궁전 안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가톨릭 왕의 궁전이 흥미로웠다. 마지막은 헤네랄리페로서 14세기 초 정비된 나스르 왕조의 여름 별궁이다. 주목할 것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흐른 물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분수와 정원으로 무어 인들의 정성이 잘 드러났다.
나스르 궁전 내부
가는 곳마다 멈춰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나스르 궁전은 이스탄불에 있는 톱카프 궁전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나스르 궁전을 보고 나니 어느덧 2시간이 지나있었다. 카를 5세의 궁전을 지나 알카사바에서는 그라나다 시내 전경이 조망되어 멋진 배경을 만들어주었다.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며 잠시 감상에 빠져보았다. 근처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온 듯 현지 아이들이 단체로 많이 왔다. 마지막으로 헤네랄리페를 끝으로 알함브라 궁전을 추억 속으로 남길 수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이곳은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명소인데 가톨릭 국가이면서 레콘키스타까지 한 나라의 명소가 이슬람 왕조의 유적이라니 아이러니했다.
카를 5세 궁전
알카사바
헤네랄리페
궁전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아이가 새들에게 빵 조각을 나눠주고 싶대서 시내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누에바 광장까지는 내려오는 길이 생각보다 험하지 않아서 캐리어 2개를 끌고 가면서도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아이와 나는 광장에서 남은 빵과 감자튀김을 비둘기들에게 선사하면서 풍족한 식사를 제공했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그라나다 버스 터미널로 갔다. 오후 3시 30분 출발이라 여유 있게 도착해서 기다리다가 버스에 탔다. 그라나다에 올 때는 거의 텅 빈 버스였는데 세비야에 가는 버스 안은 거의 만석으로 출발했다.
궁전 맞은 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
'알함브라의 전설'을 쓴 워싱턴 어빙 동상 앞에서 아이
세비야는 고대 페니키아 사람들이 과달키비르 강 하류에 지었던 내륙 항구도시로서 스페인에서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 이어서 4번째에 해당하는 도시이다. 과거에는 항구도시로서 명성이 커서 레콘키스타 이후 신항로 개척 시대에 콜럼버스와 마젤란 등 익히 아는 항해사들의 출발지로도 유명하고,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에도 등장하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배가 작고 과달키비르 강의 수량도 풍부해서 그 당시 항구도시로서 명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내륙 도시 이미지이다. 음악 쪽에서는 세비야의 이발사, 카르멘, 피가로의 결혼 등 수많은 오페라의 배경지가 되기도 했다. 유럽 도시이면서 익히 알려진 도시이며 이슬람 문화가 남아있는 이국적인 도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비야에 도착
메트로폴 파라솔
3시간을 쉬는 시간도 없이 버스는 세비야까지 내달렸다. 이 정도 거리면 우리나라에서는 응당 휴게소를 들리기 마련인데 이런 면에서는 참을성이 있어 보였다. 노을이 질 때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보석이자 정열을 상징하는 세비야에 도착했다. 버스 안이 점점 더워져 내릴 땐 후끈한 열기가 감싸고 있을 때 내린 세비야의 공기는 그라나다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호텔 가는 길에 지나갔던 세비야의 명물인 메트로폴 파라솔 주변은 인파로 넘쳐났다. 터미널에서 호텔까지 1.6km여서 택시 탈까 하다가 걸어갔는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괜찮았다. 호텔에서 체크 인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세비야에서 첫 저녁 식사
아내가 찾은 식당은 밤 8시 30분부터 저녁 식사 장사를 한다고 해서 근처 다른 타파스 식당을 갔지만 거기는 좁고 만석이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바로 건너편 식당 속에 빈 테이블이 보이길래 과감하게 들어갔다. 때론 인터넷 평점이나 후기보다는 감이 필요한 때가 있다. 자리에 앉아서 클라라와 틴토 데 베라노, 파인애플 주스를 시키고 요리는 소꼬리 찜, 생선 튀김을 주문했다. 친절한 종업원들의 응대와 맛있는 음식 덕분에 만족스러웠고 식사 도중에 둘러보니 여기도 만석이었다. 생선 튀김은 잔 가시가 있어서 보통이었으나 소꼬리 찜은 세비야의 명물답게 입맛에 딱 맞고 푹 익어서 간이 배어 있는 고기를 씹는 맛이 좋았다. 세비야가 우리 이번 여행의 중반이었는데 탁월한 선택으로 좋은 전환점을 자축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 들러 물, 피클, 하몬 등을 샀다. 하몬은 방목해서 도토리를 먹고 자란 최고 등급인 이베리코 베요타 100% 등급으로 사서 특별하게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