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느긋한 시간에 몸이 맞춰지는지 우리의 생체 리듬도 다소 늦게 작동하기 시작했다.부스스하게 일어나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한국에서 가져온 누룽지와 김 그리고 어제 마트에서 산 오이 피클로 해결했다.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여서 조금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다. 먼저 호텔 근처에 살바도르 성당이 있어서 자세히 볼까 했지만 아이가 계속된 성당 투어에 질려하고 어차피 세비야 대성당을 가야 해서 간단히 넘어가기로 했다. 아침에 노천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여유가 느껴졌다. 몇 분 더 걸어가니 세비야 시청과 스페인 은행이 나오고 대성당보다 히랄다 탑의 윗부분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니 분수가 있는 널찍한 광장이 나오고 마차가 다니고 있는 옛 시대가 펼쳐졌다.
여유로운 살바도르 성당 앞 광장
마차가 다니는 풍경
광장에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해외 단체 관광객도 많아 보였다. 세비야 대성당으로 입장하기 위해 미리 티켓 예약을 안 해서 현장 발권으로 들어갔다. 매표소 앞에는 풍향계 역할을 하는 여신상 복제품이 있었다. 이곳은 본래 이슬람 사원을 부수고 그 자리에 세운 성당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크고, 유럽에서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 이은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성당이라고 한다. 건설에는 백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국왕 알폰소 10세의 무덤이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과거 스페인 지역의 4개 왕국인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나바라를 의미하는 4명의 인물이 들고 있는 콜럼버스의 관이었다. 관 속에는 실제 콜럼버스의 유골이 담겨 있으며 뒤에 관을 짊어지고 있는 두 왕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히랄다 탑에서 풍향계 역할을 하는 여신상 복제품
콜럼버스의 관
관이 공중에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콜럼버스는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함대를 꾸려서 새로운 인도 항로 개척을 나서게 되었다. 이는 레콘키스타를 끝내고 새롭게 항로를 찾아 유럽의 강대국이 되고자 한 카스티야 왕국의 뜻이 맞아서 가능해진 것인데, 당시 신항로 개척이나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부 주도로 공식적인 탐험보다는 이렇게 개인이나 사설이 먼저 나서서 하고 왕실이나 정부에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우리가 아는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본인이 알게 된 지역이 인도인줄 알았고, 한 때는 잘 나갔지만 이사벨 여왕 사후에는 굉장히 고달픈 삶을 살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 스페인 땅을 밟고 싶지 않다고 했기에 그의 무덤이 이런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누군가에겐 탐험가, 개척자이지만 누군가에겐 학살자였던 콜럼버스의 끝이 여기에 있었다.
황금 제단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성당이어서 각종 성물, 제단, 제실 등이 볼만했는데 그중 성경에 등장하는 내용들을 황금으로 새긴 예배당의 나무 제단은 세계 최대 규모로 화려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성당에서 바로 연결된 히랄다 탑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계단이 아니고 경사면으로 되어 있어서 편하게 전망대까지 갔다. 98m 높이의 세비야 랜드마크인 히랄다 탑은 이곳이 과거 이슬람의 영토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12세기에는 모스크의 첨탑이었지만 16세기 이후 모스크는 사라지고 첨탑은 남겨진 것이다. 종탑은 후대에 추가되었고 꼭대기에는 청동 여신상을 설치했다. 이 여신상이 풍향계 역할을 해서 풍향계를 뜻하는 히랄다로 불리게 되었다.
히랄다 탑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세비야
세비야의 보물, 히랄다 탑을 배경으로 점프
한참 성당 구경을 하고 히랄다 탑을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은 후 바로 옆에 있는 인디아스문서관으로 갔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건물 안에 과거 신항로 개척의 전성기를 지냈던 스페인 제국의 문서들을 보관했는데 지금은 문서관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고 전시 공간으로도 쓰인다고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땐 전시가 없어서 특유의 분위기만 느낄 수 있었다. 1층에는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맺은 분할 조약인 토르데시야스 조약과 1492년 콜럼버스와 스페인 정부 간에 맺은 산타페 협약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인디아스 문서관 내부
토르데시야스 조약과 산타페 협약 문서
문서관 옆으로 알카사르가 있어서 스페인 광장을 가는 길에 지나갔다. 알카사르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이슬람 유적이다. 그러나 12세기 후반의 이슬람 지배 시기의 모습보다는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은 14세기 중반 이후 페드로 1세 때 지은 것이라고 했다. 당시의 성벽으로 성채로서 기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주변은 마차가 계속 지나다니고 있어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알카사르 사자의 문(Puerta del León)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서 스페인 광장 쪽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화창한 토요일이라 그런지 거리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다들 와인, 맥주, 콜라, 주스 등을 앞에 두고 세비야의 한낮을 즐겼다. 숲이 우거진 공원을 지날 때 야외 레스토랑이 있어서 동화 같은 분위기가 났다. 스페인 광장을 지나 근처 노천 식당에서 참치 토마토 샐러드, 송로 버섯이 올라간 메추리알 프라이 초밥, 이베리코 돼지 구이, 화덕 피자 등을 주문해서 먹었다. 아내와 나는 클라라, 아이는 복숭아 주스를 마셨다. 클라라가 맛있어서 2잔이나 마셨는데 여기는 매 끼마다 술을 마시게 되어 위험해 보였다. 디저트까지 먹고 힘을 내서 스페인 광장으로 왔다.
숲의 레스토랑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을 위한 전투 식량
에스파냐 광장, 우리가 스페인 광장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예전에 LG 핸드폰 광고에 나와서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진 곳으로 세비야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이다.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칸 박람회를 위해서 스페인 건축가 아니발 곤잘레스가 이 아름다운 광장을 설계했는데, 아내는 이를 위해 원피스까지 챙겨 와서 순간을 더 아름답게 남기고자 했다. 광장은 위에서 보면 반달 모양으로 주위에 박물관, 관공서, 마리아 루이사 공원 등이 있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에서 나부 행성의 도시 장면을 찍은 촬영지여서 더욱 관심이 갔다. 나는 아내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도 참 많이 찍었다. 배경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다른 사진이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햇살도 좋아서 사진 찍기 더없이 좋았다. 이런 날씨가 겨울이라니 우리나라의 초가을 같은 날씨였다. 플라멩코 공연도 하길래 구경하고 이곳에서 한참 머물다가 황금의 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각기 다른 세 포즈
황금의 탑은 세비야의 젖줄이었던 과달키비르 강변에 있는 탑으로 13세기에 이슬람 지배 시기에 세워졌다. 본래 적의 침입을 감시할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탑의 윗부분이 황금색으로 꾸며져 있어서 황금의 탑이라고 불렸다. 강 건너편에는 은의 탑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두 개의 탑은 서로 쇠사슬로 연결되어 불분명한 배가 올라올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세계 일주를 시작했던 마젤란이 출항했다고 하는데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길고 긴 항해의 시작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이 안 갔다. 지금은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강변 명소가 되었다.
황금의 탑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세비야 투우장에 들렀다. 스페인의 정열적인 문화라면 플라멩코와 투우를 들 수 있다. 투우를 스포츠가 아닌 문화로 다루는 스페인의 모습에서 그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라나다 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 투우장을 보았는데 이곳 세비야에도 투우장이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투우장은 현재 카탈루냐 지역이 투우 금지라서 실제로 사용 안되지만, 안달루시아 지역은 투우를 하고 있어서 투우장이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투우는 투우사와 소의 냉혹하고 아름다운 결투라고 보지만, 동물 보호 차원에서 반대 여론이 스페인 안에서도 심해서 투우 관람이 관광객이나 노년층 위주라고 한다. 유명한 투우사의 동상도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세비야의 투우장은 1761년에 지어져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서 유서 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투우장 앞에서 한 컷
거리의 타파스 바, 카페에는 사람들의 대화와 손짓이 가득했고 걸어 다니는 인파에 거리마다 활기가 넘쳤다. 세비야 대성당을 지나서 알카사르가 있는 산타 크루즈 지역의 유대인 구역을 지나갔다.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이어졌는데 과거 유대인들이 살았던 지구로 치안이 다소 불안정하다고 했다. 예전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듯해서 운치 있는 거리였다. 거리를 걷고 나오니 다시 세비야 대성당의 히랄다 탑이 보였고 걷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스페인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옛 유대인 구역
아내가 찾은 레스토랑은 저녁 8시에 오픈이어서 그에 맞춰서 잠깐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예약을 안 했기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리가 없을까 염려되었지만 다행히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마지막 식사라서 좋은 곳에서 식사하게 되니 모두 기대가 되었다. 먼저 익숙하게 음료부터 주문했다. 모히토가 없어서 상그리아 2잔, 복숭아 주스 1잔에 이어서 세비야 명물인 크로켓과 새우 볶음, 문어 구이, 이베리코 돼지 바비큐를 시켰다. 서로 여행 전반기를 마친 소감을 이야기하고 여행의 재미를 느낀 아이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한 상차림에 익숙한 식사에서 벗어나 천천히 음미하며 분위기를 즐겼다. 디저트는 오렌지 케이크와 염소젖 아이스크림, 초콜릿 케이크와 솔티 캐러멜 등을 골랐는데 살짝 우리 입맛과는 안 맞아서 다 먹는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식사가 끝났을 때가 밤 10시였는데 식당은 만석이고 한창 식사 중인 테이블이 대부분이었다. 주말이라 그런가 저녁 식사를 밤 9시부터 많이 하는 듯했다. 호텔로 가는 길에 뭔가 아쉬움이 있어서 다른 바에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그래서 어디로 정해놓지 않고 길에 이끌려 약간 외진 곳에 있는 바에 갔다. 외지인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노천 테이블에 서서 마시는데 나는 틴토 데 베라노, 아내는 클라라, 아이는 또 복숭아 주스를 마셨다. 이젠 아이 혼자 능숙하게 주문했다. 새우 타파스 재료가 소진돼서 결국 기본 안주에 술만 홀짝 거리다가 들어왔다. 이렇게 술잔 부딪히는 소리, 대화 소리를 거리에 담고 스페인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