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일(월) 마이애미에서 멕시코시티
마이애미는 요트와 휴양의 도시로만 각인되어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조용히 깨뜨린 도시였다. 이곳은 경계인의 도시였다. 언어와 피부색, 국적과 기억이 겹겹이 포개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경험을 마음 한편에 접어 두고, 우리는 이제 다른 축의 세계로 이동하는 날을 맞았다. 도시를 떠나는 아침은 언제나 조금 일렀다. 익숙해질 즈음 헤어지는 것이 여행의 질서라는 듯,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눈이 떠졌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정리한 뒤,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공항까지는 아침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택시 운전사는 젊은 중국인이었다. 그동안 마주쳤던 히스패닉 운전자들보다 훨씬 또렷한 영어를 구사했다.
차창 밖으로 마이애미의 아침이 흘러갔다. 팜트리와 낮은 건물들 사이로 활주로에 접근하는 비행기들이 도로 위를 스치듯 날아갔다. 마이애미 국제공항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여행자에게는 편리함이었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일상의 소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사람들의 흐름이 빠르게 갈라졌다. 각자의 목적지는 달랐지만, 움직임의 속도는 비슷했다. 출국 심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딱히 줄을 설 필요도 없이 곧바로 면세 구역으로 들어섰다. 이 공항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국내선과 국제선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같은 터미널 안에서 한쪽 게이트는 샌디에이고를 향하고, 바로 옆 게이트는 브라질 상파울루를 향하고 있었다. 국경이라는 개념이 느슨해진 공간이었다.
마이애미 국제공항은 미주와 중남미를 잇는 관문으로서 독특한 위상을 지닌 곳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국제 허브 공항으로, 특히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을 오가는 항공 노선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공항은 도심과 가까운 위치에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며, 이로 인해 물류와 인적 이동이 활발하다. 다양한 언어가 동시에 들리고, 이민자와 여행자, 비즈니스맨이 뒤섞여 공항 특유의 활기를 만들어냈다. 마이애미 국제공항은 이 도시가 '경계의 도시'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다소 여유가 있기에 공항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쿠바노와 카페 콘 레체, 과일 컵, 쿠바노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쿠바노는 예상보다 훨씬 달았다. 진한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는 방식은 이 지역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쌉싸름한 커피를 떠올렸던 내 예상과 달리, 한 모금만으로도 혀가 먼저 반응했다. 카페 콘 레체는 우유의 부드러움이 더해져 한결 편안했다. 쿠바노 샌드위치는 간단했지만 든든했다. 마이애미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이 도시의 정체성을 닮아 있다는 점이 묘하게 어울렸다.
댈러스와 올랜도에서는 비행기 출발 하나에도 마음을 졸여야 했다. 결항과 지연이 반복되던 일정 속에서 출발 시간이 지켜진다는 사실은 작은 축복처럼 느껴졌다. 멕시코시티행 항공편은 정시에 탑승을 시작했고, 정시에 활주로를 떠났다.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맑았다. 그동안 날씨 때문에 겪었던 긴장이 조금씩 풀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비행기는 멕시코만 상공을 가로질렀다. 바다 위로 이어진 푸른 곡선은 국경과 이름을 초월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멕시코만은 오랜 시간 동안 지리적 명칭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기 일부 정치적 담론 속에서 '아메리카만'이라는 명칭이 거론되며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명칭 변경 시도는 공식적인 국제 합의에 따른 것은 아니었으며, 정치적 상징성을 강조하려는 발언 수준에 머물렀다. 멕시코만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명으로 남아 있으며, 미국과 멕시코, 쿠바 등 여러 국가가 공유하는 해역이었다.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지리와 역사는 정치적 구호만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인간들의 소요에는 관심 없다는 듯이 우리 밑에는 잔잔하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청명한 날씨 속에서 비행은 순조로웠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 때마다 마음속에 쌓였던 피로가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중남미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내 안내 방송에서 멕시코시티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멕시코의 통화는 페소인데, 대략 1페소가 80원 정도라서 얼마 할지 고민해 봤다. 카드도 있으니까 공항에서의 첫 환전은 소액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150달러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창밖으로 거대한 도시의 격자무늬가 드러났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건물과 도로는 지금까지 보아온 미국 도시들과는 또 다른 밀도를 지니고 있었다. 마이애미가 경계의 도시였다면, 이곳은 문명의 중심처럼 보였다. 히스패닉 문화와 아스테카 문명의 기억이 겹쳐진 거대한 무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비행기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습도와 온도, 그리고 공항 안을 채운 소음의 밀도가 미국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렇게 우리는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입국장은 백화점 안내소처럼 매우 간단하게 생겼는데, 호의적인 공항 직원의 대화 속에서 금방 입국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여권에 스탬프를 찍는 것도 색달랐다. 짐을 찾기 전에 일단 환전을 하고 짐을 찾아서, 시간이 다소 넉넉하니까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은 정식 명칭으로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Benito Juárez)이라 불리며, 멕시코의 관문이자 중남미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공항 중 하나였다. 오래된 터미널과 비교적 최근에 정비된 구역이 공존해 다소 혼잡한 인상을 주지만, 그만큼 살아 있는 공항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공항 시스템은 미국처럼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공항 밖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우리는 분명히 미국을 떠났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공항을 나서자 보이는 도시의 첫인상은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멕시코시티(Ciudad de México)는 아스테카 문명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 위에 세워진 도시로서,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건축과 근대 이후의 확장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곳이었다. 해발 2,200m가 넘는 고원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며, 인구와 문화, 계층과 역사가 한데 뒤엉켜 있다. 화려한 유적과 식민지 시대의 광장, 현대적인 빌딩과 빈민가가 한 도시 안에 공존했다.
원래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이동할 생각이었지만, 짐도 있었고, 막 도착한 도시에 대한 긴장감도 있어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리 풍경이 묘하게 스페인과 우즈베키스탄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이에게 그 생각을 말하자, 아이 역시 우즈베키스탄을 떠올렸다고 했다. 낡은 건물의 색감과 거리의 밀도, 사람들의 옷차림이 우리가 지나온 다른 여행지의 기억을 동시에 불러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거리 곳곳에 그려진 벽화였다. 멕시코에 거리 벽화가 많은 이유는 이 나라의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멕시코 혁명 이후, 정부와 예술가들은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역사와 정치, 민족 정체성을 전달하기 위해 벽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벽화 운동은 예술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공의 언어로 만들었다. 그래서 멕시코의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저항과 기억, 공동체의 목소리를 담은 시각적 기록이었다. 오늘날에도 거리 벽화는 사회 문제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친 뒤, 프런트 직원에게 근처 맛집을 물어보았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대화는 쉽지 않았고, 결국 번역 어플의 도움을 받았다. 이 어플은 이후 멕시코 여행 내내 나름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도구였다. 호텔을 나온 우리의 첫 행선지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Biblioteca Vasconcelos)이었다. 그러나 택시 기사가 주소를 잘못 전달받았는지, 전혀 다른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계획은 순식간에 흐트러졌지만, 오히려 히든 스테이지처럼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기회였다. 여행 가이드북에서 읽은 대로 지하철 카드를 사서 이동하기로 했다. 멕시코시티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의 1980년대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시설은 오래되었지만 사람들의 생활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놀라웠던 점은 경찰의 존재였다. 거의 모든 역에 경찰이 한두 명씩 상주하고 있었고, 이는 이 도시가 안고 있는 치안 문제를 은근히 드러내는 듯했다. 길을 물으면 경찰들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언어는 달라도 손짓과 표정으로 충분히 전달되었다. 환승 과정에서 내릴 역을 두 정거장이나 지나쳐 버려 다시 헤매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 도착했지만, 하필 이날이 멕시코 헌법 기념일이어서 도서관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우리만이 아니라,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아쉬움은 컸지만, 이 도시가 쉽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텔 프런트 직원이 추천해 준 멕시코 전통 요리 식당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데 30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혁명기념탑도 지나갔다. 그 사이 아이가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며 힘들어했다. 고산지대 특유의 고산병 증상 같았다. 공항에서 내릴 때부터 약간의 불편함을 호소했지만, 계속 이어지니 걱정이 되었다.
식당은 만석이었지만 회전이 빨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메뉴판은 전부 스페인어였고, 직원들도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번역 어플과 짧은 영어, 손짓을 섞어 주문을 마쳤다. 포솔레(Pozole) , 엔칠라다 (Enchiladas), 타코(Tacos), 볼리요(Bolillo)와 함께 음료로 오르차타(Horchata), 타마린도(Tamarindo), 그린 주스(Jugo verde)를 시켰다. 디저트로는 카페 데 오야(Café de olla), 플란 나폴리타노(Flan napolitano),
플란 데 라 아부엘라(Flan de la abuela)로 입가심을 했다. 음식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맛이었다. 향신료와 소스의 깊이가 인상적이었고, 우리가 알고 있던 멕시코 음식의 이미지보다 훨씬 복합적이었다. 중간중간에 종업원과 매니저가 와서 식사가 괜찮은지 계속 물어봐줬다. 식사 후에는 팁과 함께 여기가 멕시코 첫 식당이라고 하니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포솔레(Pozole)는 멕시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옥수수 알(hominy)을 오래 끓여 만든 국물은 걸쭉하고 담백한데, 여기에 닭이나 돼지고기를 넣고 양상추, 무, 양파, 라임을 곁들여 먹었다. 우리는 닭고기를 선택했다. 한국의 설날에 떡국을 먹듯, 멕시코에서는 독립기념일이나 가족 모임에 포솔레가 오르는 전통 음식이었다. 맛을 비교하자면 육개장과 비슷했다. 러시아와 헝가리에서 먹었던 굴라시도 떠올랐다.
엔칠라다(Enchiladas)는 '소스에 적신 또르띠야'라는 뜻으로 얇은 옥수수 토르티야 안에 닭고기를 넣고, 매콤한 빨간 소스나 상큼한 초록 소스를 부은 뒤 치즈와 크림을 더했다. 바삭함보다는 촉촉함, 강렬함보다는 균형이 특징으로, 포크로 잘라먹다 보면, 매운맛과 부드러움이 번갈아 입안을 지나갔다.
타코는 타코 데 까베사 데 세르도(Tacos de Cabeza de Cerdo)를 선택했는데, '돼지 머리고기’'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실제로는 가장 부드럽고 진한 부위였다. 오래 삶아낸 고기는 결이 풀어지듯 흩어지고, 기름이 녹진해서 조금 먹기 힘들긴 했다. 볼리요(Bolillo)는 멕시코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흰 빵으로 프랑스 바게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더 부드럽고 가벼웠다. 포솔레 국물에 찍어 먹기 위해 주문했다.
오르차타(Horchata)는 쌀을 갈아 만든 달콤한 음료로서 계피 향이 은은하게 감돌고, 우유보다 가벼웠다. 너무 유명해서 꼭 마셔보고 싶었는데, 꼭 진한 쌀뜨물에 설탕과 계피를 넣은 것 같았다. 타마린도(Tamarindo)는 열대 과일로 만든 음료로, 맛은 새콤달콤했다. 매실과 오미자를 섞은 듯한 느낌에 캐러멜 같은 깊이가 있다. 후고 베르데
(Jugo verde)는 그린 주스로서, 샐러리, 파인애플, 시금치, 선인장(nopal) 같은 재료가 들어갔다. 그래서 그런지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식사 후에 디저트로 주문한 카페 데 오야(Café de olla)는 커피를 냄비에 끓여서, 필론시요라고 불리는 흑설탕, 계피를 넣어 달콤하고 향긋했다. 플란 나폴리타노(Flan napolitano)는 부드러운 커스터드푸딩 위에 캐러멜이 얹힌 디저트로 익히 아는 그 모습이었다. 플란 데 라 아부엘라(Flan de la abuela)는 할머니의 푸딩이라는 이름답게, 더 전통적인 맛이었다. 캐러멜 대신 카헤타(염소젖 캐러멜)가 들어가 깊고 진했다.
식사를 마친 뒤 어둑해진 길을 걸어가 근처 마트에 들러 아침에 먹을 음식과 과일, 간식을 샀다. 확실히 멕시코의 특색이 진하게 느껴졌다. 장바구니를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하루가 비로소 끝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아이는 상태가 호전되어 괜찮다고 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하루였지만, 이 도시의 첫날로는 오히려 잘 어울렸다. 이렇게 멕시코시티의 첫 밤이 조용히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