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살 아이와 단둘이 블라디보스토크(1)

2019년 9월 9일(1일째)-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시가지

by 오스칼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도착

비행기 시간은 새벽에 떠나서 아침에 도착하는 황금 같은 시간대를 가지고 있었다. 집에서 인천공항까지는 리무진 버스로 3시간 이상 걸리니 다들 밤을 새우고 새벽에 내가 아내 차를 운전해서 리무진 터미널로 왔다. 깜깜하고 적막만 흐르는 월요일 새벽의 밤거리는 우리를 곧게 뻗은 도로를 달릴 수 있게 준비해주었다.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 터미널에서 다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아이는 집 떠날 때까지만 괜찮다가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우리 가족의 이별 아닌 이별이 3박 4일간 시작됨을 느꼈다. 눈물을 뚝뚝 흐르는 아이를 달래고 아내와 작별 인사를 한 다음 버스에 짐을 싣고 우린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되자 우리를 태운 버스는 또 새벽길을 훔치며 인천 국제공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훌쩍이던 아이는 새벽까지 깨있던 것이 피곤했는지 이내 깊은 잠에 빠져 소리 없이 잠만 잤다. 3시간여를 달린 버스가 멈추고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월요일이지만 휴가를 낸 사람들이 있는지 생각보단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평소 휴가철보다는 훨씬 적어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출국 수속을 할 수 있었다. 탑승 시간까지 많이 여유롭지는 않아서 셀프 체크인으로 티켓 발권을 하고 잠이 덜 깬 아이를 안고 수속을 마쳤다. 짐을 수화물로 부치지 않는 저렴한 티켓이어서 딱히 수속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아이는 깨고 난 다음 피곤해하면서 칭얼대고 엄마를 몇 번 찾았지만 이내 여행에 적응해서 출국장에 들어와서는 같이 음식점에 가서 곰탕 한 그릇 나눠서 밥도 먹고 양치도 하고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 그전에 동생이 준 면세점 상품권으로 아이에게 줄 치즈맛 소시지를 20개나 샀다. 아이의 소울푸드인 이 소시지가 여행 내내 큰 힘을 발휘했다. 비행기를 보니 아이도 신났는지 다소 흥분된 모습으로 씩씩하게 비행기에 탔다.

레닌 동상 앞에서

비행기에서도 내내 졸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서 겨우 비몽사몽 아이는 깨어났다. 오전 10시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미세먼지 하나 없이 정말 맑고 좋았다. 이때 태풍이 온다는 소식 때문에 출발하기 전부터 비행기가 잘 뜰 수 있을까 염려했었는데 이미 태풍은 전날 지나갔는지 푸른 연해주의 하늘을 보이고 있었다.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무뚝뚝하다는 러시아 사람들 모두 아이의 스파시바(감사합니다)하는 말에 미소를 지어 보냈다. 입국 수속이 다소 늦어져서 공항을 빠져나오니 우리가 타려고 계획한 시내까지 들어가는 공항 철도 기차 출발 시간까지 20여분 남았다. 러시아 돈인 루블이 1원도 없는 상황이라 환전을 해야 해서 먼저 공항 환전소에 들렀는데 줄도 꽤 길고 인터넷 후기를 읽어보니 환전하는데 조금 깐깐하다 하여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 해 시간상 별 수 없이 환전하지 않은 채로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카드로 기차표를 발권하는데 아이는 나이가 만 5살이라 안내도 될 줄 알고 내 것만 하고 들어가려는데 역무원이 어린이 요금을 내야 한다고 해서 다시 발권했다. 그런데 그때 내 것도 다시 발권해줘 매표소 직원에게 말했더니 쿨하게 현금으로 내 표 값을 바로 줬다. 한 시간이 안되게 기차를 타자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도시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수영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굉장히 화창해 초여름 같았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아이는 소시지를 2개나 먹었다. 나오니 햇살이 정말 강렬하고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먼저 근처에 있어서 찍어놓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 기념비, 레닌 동상을 차례로 본 후 아르바트 거리의 환전소를 향해 걸었다. 레닌 동상을 보니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후예라는 게 실감 났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처음이자 끝인 도시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내렸던 역 옆에 횡단 열차를 타는 역이 있어 진정한 여행객들이 발걸음을 오가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데 단 3시간 만에 만나는 유럽이라는 홍보 문구 때문인지 유럽의 느낌은 났다. 러시아가 유럽이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유럽풍 건물 외에도 소련 시절에 지어진 건물도 많아 투박하면서 각이 잡혀 있는 소비에트 분위기도 많이 났다. 다소 덥게 느껴지는 강렬한 햇빛 아래 아이도 완전히 잠에서 깨고 소시지로 에너지를 충전해 씩씩하게 잘 다녔다. 환전 300달러를 하고 바로 밥 먹으러 생각해놓은 식당으로 갔는데 인터넷 지도에는 왔다고 되었는데 없는 것이었다. 계속 두리번거리다가 혹시 해서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니 그 가게가 맞았다. 러시아어로만 적혀있어서 긴가민가하고 일단 내려갔는데 운 좋게 찾을 수 있었다. 자리를 안내받고 어떻게 음식을 시킬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림이 있는 메뉴판을 줘서 알아보기 쉬웠다. 그리고 관광객이 많이 오나 영어로도 적혀있어서 보는데 무리가 없었다. 잘 모르지만 일단 샐러드, 요거트, 감자요리, 호박 팬케이크, 으깬 고기 등 먹을만한 것으로 시켜보니 나쁘지 않고 만족스러웠는데 그 가게가 그랬을 수도 있지만 러시아 음식이 전체적으로 짰다. 그래도 아이와 나는 배고프기도 하고 식재료가 건강한 식단으로 짜여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숙소에 가기 전 물을 사야 할 것 같아 슈퍼에서 물을 샀는데 알고 보니 스파클링이었다. 러시아어를 읽지 못해 그저 물인 줄 알고 샀는데 탄산수였던 것이다. 나도 먹고 황당했지만 탄산수를 먹지 못하는 아이는 한 입 먹고는 질색을 했다. 그 탄산을 뺀다고 몇 번 흔들었다가 뚜껑을 풀었다를 반복했지만 탄산의 미묘한 맛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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