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처음 같이 떠났던 홍콩과 마카오 여행 이후로 일본 오키나와, 그다음은 중국 상하이, 항저우, 난징 등을 다녀왔다. 오키나와를 갈 때에는 렌트를 해서 편하게 다닐 수 있었고, 중국에서도 크게 무리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활용하면서 소소한 여행을 즐겼다. 이러한 여행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고 같은 동아시아에 문화적인 차이도 크지 않았으며 음식도 큰 차이가 없어서 입맛에 그렇게 안 맞거나 하는 경우가 없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도 높았던 곳들이기에 여행 다닐 때 국내 여행만큼은 아니어도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아이도 커서 돌이 지나 걷고 뛰고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나이가 되었다. 물론 여행을 갈 때 같이 준비하거나 아는 나이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몇 번 가까운 곳을 여행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매월 저축하여 만든 여행 통장에도 어느 정도 돈이 쌓여서 여유 자금이 조금 생기기도 해서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그래서 우리 가족 최초로 장기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그 첫 번째 장소로 터키와 그리스를 골랐다. 터키와 그리스를 고른 이유는 무엇보다 나의 의견이 가장 컸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 터키는 동서양의 문화를 가로지르는 중심에 있었으며 과거 비잔틴 제국의 쇠락과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 함께하는 나라이면서 현재는 이슬람 문화 국가로 물가도 그리 비싸지 않아 여행하기 좋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두말하면 잔소리인 서양 문명의 근원으로서 수많은 신전, 석상이 즐비한 나라이기에 인접한 두 나라를 묶어서 여행을 떠나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었다. 아내는 그곳보다는 잘 알려진 서유럽을 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되었다. 기간은 15박 16일로 우리 가족 여행 역사상 가장 긴 여행 기간을 자랑했다. 가는 인원은 나와 아내, 어머니 그리고 아이까지 4명이었다.
그에 따라 준비하는 기간도 길어졌는데 먼저 한국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왕복 항공권을 결제하고 숙박은 기본적인 루트가 정해지면 예약을 했다. 터키 이스탄불로 입국하고 그리스 아테네로 출국하고 싶었지만 아테네에서 우리나라에 오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이스탄불을 마지막에 들려서 오기로 했다. 그렇게 항공권을 결제하자 루트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서 카파도키아의 벌룬 투어가 있는 괴레메, 에페소스가 있는 셀축을 돌고 이즈미르로 간 다음 그리스 아테네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스에서는 아테네, 코린토스, 메테오라, 산토리니를 돌고 다시 아테네, 터키 이스탄불로 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총 8개의 도시를 거치는 16일간의 일정이라 여행 숙소 잡는 것에 있어서 세탁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그전까지는 굳이 세탁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2주가 넘는 일정이라 세탁을 꼭 해야만 했다. 이때는 코인 세탁소를 이용할 줄 몰랐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요리도 할 겸 에어비엔비를 잡아서 묵기로 했다. 그래서 숙소를 잡을 때 조리 기구도 있어야 하지만 세탁기가 있는지도 살펴서 예약을 했다. 물론 아이도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인지도 고려해야 했다.
사전 준비를 위해서 충분히 그 나라들에 대해 공부도 했지만 먼저 소아과에 들러 아이 약을 처방받았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긴 여행으로 인해 염려가 되어 저번처럼 소화제와 감기 해열제 등을 가져갔다. 의사 선생님은 혹시 아프면 꼭 여행지 병원에 가보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우린 소화제, 감기 해열제, 가루 기침약, 연고 등을 챙겨서 준비했다. 그리고 항공권, 숙박 예약서 등도 꼼꼼하게 챙겨갔다. 아이는 어느덧 5살이 되어 더 이상 아기띠를 할 수 없었다. 잘 뛸 수 있는 나이는 되었지만 오래 걷는 것은 힘들어하기 때문에 길을 걸을 때에는 안거나 목마 태우고 다니기로 했다. 아내와 나의 여행 스타일이 휴양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보면서 찾아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진정 여행자로서 아이도 함께 따라가야 했다.
캐리어는 나의 놀이터
1월 7일 오후 2시 15분 비행기였는데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아침 7시 20분에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침 햇살을 가르고 버스는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탑승 수속을 마친 다음에 오후 2시 15분이 되자 이스탄불을 향해 비행기는 이륙했다. 11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화면이 있는 좌석에 앉아보았다. 승무원께서 아이에게 작은 선물도 주고, 헤드폰도 챙겨주셔서 아이는 신나는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아직 우리가 어디 가는지도 확실히 모르고 그저 비행기 타고 어디 멀리 간다는 것만 인지했다. 그리고 어린이집을 안 간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했다. 아이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컨트롤러를 만지작 거리며 만화 영화를 보기고 하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게임이야 조작을 못하니 그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그러다가 기내식이 나오면 먹고 또 놀다가 잠을 자기도 하고 그랬다. 아이보다 적응을 못한 것은 어른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이렇게 장거리가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친구분들 모임에서 유럽을 다녀오신 적이 있기에 나름 적응하셨지만 그래서 긴 비행시간은 견디기 힘들었다. 좌석에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가 다리가 붓는 것 같아서 일어나 통로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잠시 잠을 청해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견뎠다. 하지만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 건지 기내식 2번과 간식을 먹고 잠을 뒤척이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겨우 도착했다. 아이는 세상모르고 쌕쌕 자다가 일어났다.
만 3살의 큰 아기
시차 때문인지 저녁 8시 15분에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은 이미 밤 12시가 넘은 상황에서 12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터키는 입국 수속부터 이색적인 모습을 물씬 풍겼다. 우리와 생김새도 다른 사람들이 가득 있었고 글씨, 언어, 공기 모두 색달랐다. 새로운 곳을 접할 때 느끼는 첫인상은 나에게 있어서 글자인데 영어 알파벳으로 적히긴 했지만 다른 언어를 보고 터키에 왔음을 실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탄불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이라 1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겨우 이스탄불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미리 예약해놓은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택시를 타고 이스탄불의 밤거리를 가로질렀다.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이 우리를 지나치면서 머나먼 동방에서 온 이방인을 환영해주었다. 이 사람들도 서양,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동방이었는데 우리는 이들에게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30분 넘게 도로를 달려 도착한 이스탄불의 숙소는 호텔이 아닌 일반 집이었다. 이 또한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꿀잠
현지인이 사는 공간에서 직접 지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 깊은 여행의 밀도를 자랑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직접 주인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여행을 여러 번 한 후에야 이 주인아저씨가 정말 친절한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당시에는 다들 피곤하기도 했고 처음이기에 다들 이러나 싶었다. 멋진 콧수염을 기르고 웃음을 보였던 이스탄불 아저씨는 우리를 환영한다면서 터키 귤 한 꾸러미를 건네며 인사했다. 이어서 집 구조와 사용 시설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가셨다. 우리도 이런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은 처음이기에 한국에서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건넸다. 그건 누룽지맛 사탕이었다. 이걸 몇 봉지 사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이고 다들 장시간 비행기를 타서 서둘러 씻고 난 다음 잠을 청했다. 그런데 내가 자려했던 작은 방의 라디에이터가 고장이 나서 어머니, 아내, 아이는 큰 방에서 잠을 자고 나는 거실 소파에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