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명의 뿌리, 아테네 걷기

2018년 1월 13일(7일째)-아테네 구시가지

by 오스칼

다소 따뜻했던 아테네의 밤이 지나 아침이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 어머니는 킹 사이즈 침대에서 자고 나는 소파에서 잠을 잤는데 잘 정리되고 청결한 숙소에서 꼼꼼한 주인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아침은 어제 레스토랑 식사를 마치고 들린 유기농 마트에서 구매한 요거트, 사과, 달걀, 빵, 주스, 우유 등을 준비해서 먹었다. 더울 듯해서 패딩을 입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날씨는 따뜻했다. 다들 패딩은 벗고 나가기로 했다. 나갈 때가 되니 내리던 비도 그쳐서 하얀 구름이 듬성듬성 박힌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숙소가 시내에 있어서 다니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이스탄불과 마찬가지로 위치로는 최적합한 숙소였다.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아네테 시가지의 건물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천카페, 식당이 많아서인지 도로변의 테이블이며 의자가 인상적이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유적들은 터키에서도 많이 본 터라 새롭지는 않았지만 거리를 청결하게 청소하며 아침을 여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거리의 풍경이 처음으로 보는 유럽 건물이라 오히려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먼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향해 걸었는데 비에 젖은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는 걷는 기분을 업그레이드시켜주었다. 제우스 신전을 지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 현대적인 건물 앞에는 유적 발굴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인지 알 수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건물은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건물로 2007년에 건축된 건물 자체만으로도 멋진 장소이다. 기하학적인 유리 면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그 안에 잠든 유물들을 감싸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부터 로마 제국 시기에 걸친 유물이 가득 찬 박물관 안에는 서양 문명의 뿌리를 느끼기 위해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고작 1시간 비행거리에 있는 나라인데 터키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일단 시각적으로 터키에는 우리가 흔히 서양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백인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테네에는 많은 백인들이 유적을 보러 왔다.


로마가 서양 문명의 기둥이라면 그 뿌리가 바로 이곳 그리스 아테네이기 때문에 견학이나 여행으로 많은 서양인들이 오고 있음이 실감 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유물들이기에 천천히 관람을 했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돌덩이에 불과한 것들이라 흥미를 잃고 지루해했다. 그래서 아내가 데리고 다니며 앉아있거나 쉬거나 했다. 다 보고 나왔을 때에 아이는 아크로폴리스를 재현해 놓은 레고에 빠져 한참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 손을 잡고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설명하며 흥미로워했다. 박물관을 알게 되는 나이는 언제쯤 오게 되는 건지 우리 여행에 있어서 필수 코스인데 이 점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우리에게 있어서 항상 숙제가 되었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파르테논 신전을 향해 걸었다. 가는 곳에도 각종 유적들이 즐비했다. 석재 유적이 많이 있기에 보존에 있어서 흔적이 잘 남아 있는 게 우리와는 대비되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올리브 나무들도 흥미로워서 어느 하나 눈에 놓치지 않기 위해 담아가며 길을 재촉했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서 아크로폴리스라고 불리는 곳에 있었다. 높은 곳에 있는 도시를 뜻하는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에 있어서 평소에는 신전과 다양한 시설이 있는 곳이지만 전쟁에 대비한 방어 시설이 있는 요새이기도 했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는 그 변천 과정에 따른 건물, 구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어디서든 잘 보일 것 같은 위치에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의 상징, 서양문명의 상징과 같은 파르테논 신전은 겨울이었지만 따뜻한 날씨 속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었다. 아이도 올라가는 내내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돌들 사이로 가는 게 재미있는지 잘 따라다녔다. 신전은 페르시아 인이 파괴한 옛 신전 터에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가 페르시아에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아테네 인들이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에게 기원전 438년에 바친 것이다. 파르테논이라는 뜻은 아테나의 무녀들이 살았던 처녀의 집이다. 1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는데 그 규모는 직접 두 눈으로 보았을 때 고대인의 신앙심과 건축술에 놀라게 된다. 전부 최고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열주는 도리아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밑으로 내려올수록 안정감을 위해 다소 두텁게 만들었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형태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시각적 이유로 실제보다 크고 예술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은 지금까지도 서양에서는 고대 건축의 전형으로 일컬어져 많은 건물에서 차용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첫 번째 유적이고 유네스코 상징 마크로도 알려져 있다. 화창해진 하늘과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기분 좋게 신전까지 올라갔다. 한쪽은 공사 중이었고 지붕은 일부만 남아있다. 신전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은 많은 수가 현재 루브르 박물관 및 영국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특히 19세기 초 영국의 엘긴 경은 약탈을 통해 많은 유물을 가져왔고 이는 엘긴 마블스라고 하여 보관되고 있다. 이런 풍화의 세월을 겪은 신전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돌아보았다.


신전 앞에서 아내와 아이

직접 가까이 본 신전과 그 주변은 거대한 대리석으로 온통 뒤덮여있어서 그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아쉽게도 아테나 조각상은 소실되어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바라본 아테네 시가지는 장관이었다. 높은 건물이 없는 도시이다 보니 이곳에 올라 바라봤을 때 도시 전체가 조망되었다. 시원한 바람에 문득 2000년 전에도 이런 바람이 불어오고 그때 아테네 사람들은 이러한 바람을 맞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대한 유적지 속을 거닐다 보면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 속에서 걸었을 수많은 옛사람들이 생각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파르테논 신전을 구경하고 내려와서 점심 식사를 했다. 국제적인 관광지이다 보니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였다. 그리고 우리 같은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지나갈 때면 꼭 중국어로 인사를 했다. 이건 인종차별로 봐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웃으면서 인사하는데 우리 눈에 서양 인하면 미국인, 영어인 것처럼 서양인 눈에 동양 인하면 중국인, 중국어가 스테레오 타입처럼 우리를 졸졸 따라다녔다. 들어간 그리스 식당에서는 출출했지만 전날 레스토랑에서의 기억 때문에 많이 시키지 않고 모둠 음식과 2가지 정도 더 시켰다. 아이를 위해 아이스크림도 주문하고 어른들은 커피를 주문했다. 어머니 품에서 자고 있던 아이는 음식이 나오자 잠에서 깼다. 파르테논 신전으로 오가는 것이 힘들었는지 막판에는 졸려했었다. 음식이 나왔는데 아뿔싸 역시 많았다. 특히 모둠 음식만으로 3명이 먹기에 충분했다. 해산물 튀김 모둠을 주문했는데 그 안에 꽁치 같은 물고기와 새우, 오징어, 샐러드 등이 거대한 탑을 쌓고 있어서 점심은 맛있었지만 먹고 나서는 배가 너무 불렀다.


아이스크림으로 피로야 가라

든든한 배를 부여안고 아고라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인근에 많은 유적지가 함께 있어서 보기 편했는데 아고라에 도착하니 3시면 문을 닫는다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이때 이미 2시가 넘어 있어서 들어가도 별로 보지 못하고 나와야 했기에 화요일에 다시 와서 보기로 했다. 찾아보니 아테네의 유적은 대체적으로 오후 3시면 모두 문을 닫았다. 돌이켜보면 그리스 사람들 생활 패턴이 그랬었다.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고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이른 오후에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개인 시간을 갖는 듯했다. 아테네의 중심가는 그러지 않지만 대개 도시의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았다. 그리스는 경제 위기도 있고 나라가 어렵다는 말도 들려왔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여유를 잃지 않고 있는 듯했다. 결국 아고라는 보지 못하고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도로변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을 우연히 발견해 들어가게 되었다. 개신교 교회나 가톨릭 성당은 많이 가봤지만 정교회 성당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성상 대신 벽을 가득 채운 성화가 친절하고 장엄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시내에 있으면서 여행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다니는 성당인지 사진 찍는 것에 대해서도 곤란함 없이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뒤로 많은 성당을 보았지만 그래서인지 인상 깊은 성당이었다. 내일은 일찍 메테오라에 가야 하기에 일정을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숙소에서 편하게 쉬기로 했다. 저녁은 고향의 맛이 그리워 가져온 한국 컵라면으로 대신했다. 이제 컵라면 다 먹어서 없다.


깨끗한 아테네 거리
파르테논 신전
우리를 놀라게 한 해물 튀김 모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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