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둠이 다 걷히지 않아 어스름이 낀 이른 아침 아테네의 중심인 신타그마 광장에서 아테네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출근 길이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그렇게 붐비지 않는 안에서 앉아 가다가 여유 있게 아테네 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아테네 역은 크지 않았다. 공항도 그렇게 크지 않아서 궁금해 아테네 인구를 찾아보니 300만 명이 넘는 정도로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이나 인천에 비견되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리스 인구가 천만 명 정도라서 약 1/3의 사람들이 수도에 사는 것이었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예전에 잘못 예약한 기차표를 환불하는 일이었다. 날짜를 잘못 생각해서 예매한 걸 취소해야 했는데 환불은 안되고 바우처로 준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혹시 데스크 직원의 대답을 우리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어봐도 똑같았다. 우리는 그리스 사람도 아니고 기차를 몇 번 타는 사람도 아닌데 바우처라니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날짜가 지난 것도 아니니 당연히 표 산 것을 수수료가 있더라도 취소가 되고 이를 환불해주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고 해도 안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해줬다는 사람이 있어서 믿고 온 건데 우리 정보가 틀렸는가 싶었다. 기차 역무원과 다른 직원까지 불러서 환불이 불가능한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계속 규정이 안된다고 하여 안타까웠다. 억울하기도 하고 우리가 동양에서 온 외국인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 혼자만의 상상을 폈는데 계속 항의하기에도 기차 시간이 다 되어 결국 2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결국 환불 못 받고 바우처로 바꾼 다음 급하게 칼람바카행 기차에 올랐다.
잠든 아내와 속 편하게 만화 보는 아이
기차 안에서도 계속 바우처 생각에 그리스 북쪽으로 올라가며 바뀌는 주변 풍경을 둘러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 이 큰돈을 환불이 안되고 단순히 바우처로만 주는 건지, 그러면 우리 같은 여행객은 결국 날짜 변경했다는 이유로 막대한 손해를 보아야만 하는 구조인가 싶어 화가 조금 나기도 했다. 아침도 안 먹고 도착할 때까지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기차 안 승객이 먹다 남기고 간 콜라를 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는 칼람바카에 도착할 때까지 기차 안에서 막대사탕 2개, 초콜릿, 김 2봉지를 먹었다.
칼람바카라는 지명은 생소하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메테오라가 있는 곳이다. 먼저 예약했던 작은 호텔에 도착해 짐을 푼 후 점심을 먹기로 했다. 주인 할머니께서 굉장히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마음이 편해졌다. 호텔 방으로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전 영화에서 나오는 문을 여기 전에 철제문을 열고 닫고 하는 구조가 신기했다. 그분에게 식당 추천을 받아서 2차선 도로가 도심의 전부일 것 같은 작은 읍내로 나가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빵, 고기, 토마토, 치즈 등으로 이루어진 소박하면서 정갈한 그리스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다들 원기 회복하고 나왔다. 그때 시간이 이미 오후 3시를 넘었기에 그 이후까지 개방을 하는 유일한 곳인 성 스테파노 수녀원에 갔다. 가기 위해서 택시를 이용했다. 비가 온 후 안개가 짙게 껴서 그런지 주변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우리 가족 중 영어에 가장 능통했기에 택시 기사님에게 나의 질문을 받아 통역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아내를 보고 아이는 이야기하지 못하게 아내 입을 계속 손으로 막는 시늉을 했다.
수녀원 앞에서 아이와 어머니
메테오라(Meteora)는 처음에 운석이나 뭔가 우주적인 것이 떠올랐는데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직접 와서 보니 그 말 그대로 좁게 솟아 오른 바위 산 정상에 수도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 바위들은 높이가 평균 300m 정도인데 그리스 중북부 지방에 세워진 수도원들이나 이곳을 메테오라라고 부른다. 예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수도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뇌고 기도와 수행으로 이루어진 곳이기에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고 과거에는 교통시설이 전무해 계단이 없었고 물건이나 사람은 밧줄과 도르래를 이용해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수도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4세가 되어서라고 한다. 성 아나타시우스가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고 이후 16세기에는 20여 곳이 되는 수도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현재는 수도원 5곳과 수녀원 1곳이 남아있어서 우리가 가려는 곳은 그 수녀원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곳은 대 메테오라 수도원, 로사노 수도원, 성 니콜라스 수도원, 발람 수도원, 트리니티 수도원, 성 스테파노 수녀원이다. 지금은 방문객들이 편하게 올라올 수 있도록 도로와 계단을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을 때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지금은 그리스와 정교회를 대표하는 장소로 오랜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수녀원은 다행히 문을 열고 있어서 방문이 가능했다. 좁은 문을 지나 경건한 분위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아이는 의자에 새겨진 갈기가 뾰족뾰족한 동물 입 안에다가 손을 짚어 넣고 소리를 지르는 시늉을 하고, 성경 책이 놓인 책상에 달린 마이크에다가는 노래를 부르려고 했다. 이곳 분위기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는지 자꾸 장난을 치려 해서 잡고 있느라 약간 진땀을 뺐다. 산 위에 있어서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안에서만 본다면 이곳이 산 위에 있는 수녀원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 정도였다. 아쉽지만 시간상 둘러본 후 다시 칼람바카 시내로 택시를 타고 나왔다.
아이를 유독 좋아했던 호텔 주인 할머니
그 택시 기사님께서 이곳을 둘러보려면 투어를 하는 게 좋다고 자신이 가이드를 해 줄 수 있는데 할 거냐고 물어보셨다. 어차피 이곳을 보는 것은 도보로는 불가능하고 비용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듯하여 흔쾌히 수락했다. 시내로 와서는 다들 아침부터 진을 뺏기에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하고 숙소로 가는 길에 보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닭고기와 양고기, 샐러드를 시켜 먹고 숙소로 돌아갔다. 호텔에 들어가 아내는 기차 바우처를 확인하기 위해 잠시 주인 할머니에게 로비에 있는 컴퓨터를 쓸 수 있는지 여쭈어 허락을 받고 그리스 철도청에서 검색해 약관을 한참 읽어봤다. 아이는 주인 할머니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간식을 얻어먹었다. 주인 할머니께서도 손녀가 있는데 아이를 보니까 손녀 생각도 나고 귀여웠나 보다. 30분 정도 컴퓨터를 하고 난 뒤 아내는 역무원 말이 맞았다면서 바우처로만 교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약관이 그러니 그러려니 했지만 그렇게 큰돈을 취소하여 환불받지 못하면 우리 같은 여행객은 그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구조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내도 이것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 쓰였을 텐데 여행하면서 겪는 또 하나의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돌발상황이 많은 여행에서 이런 실수와 손해 보는 것은 경험의 기회비용이다. 푸근하고 친절한 주인 할머니가 계시는 호텔 방에서 칼람바카의 첫날이자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