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아테네 시내를 걷는 날이라 다들 급하지 않게 아침에 눈을 뜨고 준비했다. 여전히 아침은 과일과 요거트, 빵, 삶은 달걀이었다. 숙소에 드립으로 커피 내리는 것도 있어서 커피도 한 잔씩 했다. 호텔이 아닌 이런 집에서 숙박을 하다 보니 일정도 자유롭고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편한 것이 있었다. 물론 침대 시트나 수건 교환이 되지 않는 등의 불편함은 있었다. 아테네는 말 그대로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여서 패딩은 벗고 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아테네에서는 초가을 날씨처럼 날이 좋아 겨울이라는 것이 전혀 실감 나질 않았다. 첫 번째로 방문할 곳은 올림픽 경기장이었다. 고대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제1회 올림픽 경기장은 눈부신 대리석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주경기장이라고 한다.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데 고대 그리스의 양식을 따르면서 멋지게 지어진 경기장이었다. 최근에도 사용되며 우리에게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양궁 경기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장에서 어머니와 아이
이곳은 예전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올림픽의 역사를 배우면서 보았던 그 장소였다. 알다시피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에서 유래된 국제 이벤트이다. 올림피아 제전은 기원전 776년부터 해서 4년에 1번씩 총 293번이 개최된 굉장히 유래가 오래된 그리스인들의 화합 축제였다. 고대 그리스에는 각 지역에 신을 찬양하기 위한 제전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것이 올림피아 제전으로 이는 제우스에게 바치는 종교행사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는 이 당시 도시국가인 폴리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리스인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했다. 당시 풍습이 그랬겠지만 여성은 선수 참가는 물론 관람도 할 수 없었다. 이는 여성 인권이 낮은 것도 있지만 남성들이 발가벗은 채로 운동 경기를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박물관에서 도자기를 볼 때 옷을 벗고 달리기 하거나 창을 던지는 모습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운동을 했었다. 대회 기간은 처음은 1일이나 나중에는 5일로 연장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지중해에 있는 식민지까지 참가가 확대되었다. 경기는 처음 단거리 달리기 단일 종목이었으나 나중에 중거리, 장거리, 5종, 레슬링, 권투, 전차 경기 등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 종목들 중에 특이한 것도 있는데 판크라티온이라는 경기가 있다. 지금으로 보면 이종격투기 같은 경기라고 생각될 수 있는데 레슬링과 복싱을 합쳐 물어뜯기, 눈 찌르기 등을 제외하고 모든 공격이 허용된 운동 경기였다. 잔혹한 경기로 유명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7회 대회부터 올리브 가지로 만든 관을 머리에 씌어줬는데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역사가 깊은 올림피아 제전이 중단되게 된 이유는 로마 제국 치하에 있으면서 올림픽 정신의 쇠퇴, 그리스 인구 감소도 있지만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392년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이단을 금지시키자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1896년 프랑스 쿠베르탱에 의해 부활하여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하계, 동계 올림픽이 따로 있지만 처음에는 하계만 있었고 지금도 올림픽 하면 하계 올림픽을 많이 떠오르게 한다. 올림픽은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4번마다 세계 최고 실력의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고 스포츠인이라면 언젠가 메달을 목에 걸고 보고 싶은 세계 최고의 경기일 것이다. 지금 올림픽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 4년씩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개최를 하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경기에서는 13개 나라, 311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종목은 10개였으며, 우리나라도 1988년 제24회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다.
서울 올림픽 포스터 앞에서
걷다 보니 다소 덥게까지 느껴지는 날씨 속에서 트랙을 달려보기도 하고 대리석 관람석에 앉아 전체를 바라보기도 했다. 트랙을 달리면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이 곳을 달렸을 예전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회에 젖었다. 아이는 내가 사진을 찍자 빌린 오디오북을 사진기 삼아 본인도 찍는 시늉을 했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엄마 쭈그려봐. 대박." 하면서 부르거나 행동하는 것도 나를 따라 하려는 게 보인단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우리가 전세 낸 것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놀았다. 맨 위에 올라가서 전체를 담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올림픽 전시실이 있어서 그곳에도 가보았다. 올림픽 전시실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역대 근대 올림픽 개최지의 포스터와 성화봉이 전시되어 있어서 당연히 우리나라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찾아보았다. 많은 나라들 속에 우리나라 포스터와 성화봉이 있으니 뭉클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포스터도 당시 정서를 잘 반영하면서 역동적인 분위기가 잘 드러나 최고의 포스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니 근처에 계시던 아주머니 두 분이 한국 사람인가 보다고 말을 건네셨다. 이 먼 곳에 같은 곳을 보러 온 한국 아주머니들이셨다. 건물 밖으로 나오는 길에는 한국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걸 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장엄한 올림픽 경기장 구경을 끝낸 우리는 아고라를 향해 걸었다.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아고라는 배우길 시민 토론의 장이라고 배운다. 넓은 광장에 이것저것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말을 하고 그 말들이 오가며 토론이 되고 여론을 형성한다. 광장이기에 중심에 있어야 하고 그 주변에는 각종 신전, 공공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가려는 곳은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로 그전에 봤던 에페소스, 코린토스처럼 잔해만 남아 있는 형태였지만 그래도 건물이 좀 남아 있는 부분이 있었고 관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은 아테네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 곳으로 고대의 영화가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이 아고라에서 올려다보면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보였다. 지금은 헤파이토스 신전이 그나마 보존이 되어 있어서 그 주변으로 둘러보면서 크기를 짐작해보았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수많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침을 튀어가며 열띤 이야기를 벌였을 장소에 함께 있으니 이 역시 기분이 묘했다. 복원되지 않은 유적은 복원된 유적과는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몇 천 년 전에 몇 백 년 전에 이 자리에 서서 일상을 보냈을 그들이 지금은 흙 속에 잠겨 사라지고 없지만 그 잔해가 남아 만지작 거리면 손 끝에 전해지는 그 차가운 돌덩이일지라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깨끗하고 세련되게 복원이 된 건물은 시각적으로 무엇인지 보기도 쉽고 느낌이 직각적으로 오지만 이런 잔해들은 유추해보고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쉴 때는 만화 영상이 최고
아이는 왜 돌덩이를 사람들이 보는지 모르겠다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풀밭의 꽃, 곤충의 움직임에 신기해하고 빠져들었다. 신전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거북이가 있어서 그것을 또 한참 바라보았다. 아고라까지 즐긴 다음 카페에 가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했다. 카페라테, 에스프레소, 커피 프라페,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고 파니니 샌드위치와 구운 식빵을 주문해서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스 유적들을 바라보며 오후의 한 때를 즐겼다. 노천카페가 많아서 흔히 생각하는 유럽 거리 풍경에 우리가 앉아 있으니 이것 또한 좋았다. 카페에 나와 걷는데 아이가 졸려하길래 안고 다니기가 조금 힘들어 편법을 썼다. 바로 아이스크림으로 유혹해서 잠을 깨웠다. 돌아다닐 때 자버리면 내가 안고 걷는데 물건을 들고 있거나 짐이 있으면 상황이 더 힘들어지니 최대한 낮에는 안 재우고 간식으로 잠을 깨게 했다. 반 아기 반 어린이인 아이에게 재미도 없는 곳을 보고 걷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래서 밥 먹을 때는 좋아하는 만화를 보여주거나 최대한 쉴 수 있도록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잠깐 시간이 나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그리스이기 때문에 올리브 오일, 올리브 비누 등을 사고 나는 가죽 샌들을 샀다. 여름에 신으려고 샀는데 아직까지 1번도 신어보질 못했다. 저녁은 어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검색을 해서 중국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곳에서 짬뽕과 볶음밥, 탕수육을 주문해 먹었는데 이건 나름 성공이었다. 일단 어머니와 아내는 살짝 매콤하면서 국물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고 볶음밥도 아이 입맛에 딱 맞았다. 마지막 아테네의 밤이 아쉬워 숙소로 바로 가지 않고 카페에 가서 지나가는 아테네의 밤을 잡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