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도시, 코린토스

2018년 1월 16일(10일째)-코린토스

by 오스칼

메테오라에서의 짧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아테네로 돌아와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다. 말처럼 정말 공중으로 붕 떠 있던 수도원에서의 기억은 강렬하게 뒷머리에 남아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화창한 아침을 오늘도 기차에서 맞이해야 했기에 아침 식사로 삶은 달걀, 요거트, 오렌지 등으로 배를 채우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터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유제품이 유명해서 건강한 요거트를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오늘은 코린토스를 가는 날이었기에 기차를 또 타야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를 잘못 나오는 바람에 조금 헤매다가 또 가까스로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계속 날씨가 따뜻해서 패딩은 벗어버리고 다들 가벼운 가을 날씨 차림으로 다녔다. 기차 안은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다리 뻗기 게임을 하며 아침을 즐겼다.


기차 안에서 다리 뻗기 놀이

이번 여행에서 어머니가 나이도 있으신데 우리 부부를 따라다니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본인은 말씀 없으셨지만 아무리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해도 젊은 사람들 걸음걸이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 어머니는 결혼 한 젊은 시절엔 가난하게 시작해 먹고살기 바빠 해외는커녕 국내 여행도 변변히 다닌 적이 없고 내가 대학 4학년이 되었을 때 같이 떠난 여행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나도 일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같이 여행을 다니게 되어 참 감사했다. 무엇보다 여행은 평소보다는 사진도 많이 찍고, 영상도 남기고, 또 이렇게 글로 남기기도 하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었다. 아이도 어머니와 함께 다니니 우리 부부가 길을 찾거나 논의를 할 때 붙어있을 수 있어서 아이 돌보기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계속 건강하게 다닐 수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나이가 드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우리도 언젠간 여행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 수 있으니 함께 할 수 있는 지금 이렇게 즐기고 남기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여행의 시간을 보내면 더없이 좋겠다.


새파란 하늘과 초록 풀밭에서 찾아낸 들꽃

칼람바카를 갈 때와는 다르게 정말 TV광고에 나올 듯 새파란 물감을 아낌없이 칠 한 하늘이 가득해 잡티 하나 없는 공기 그 자체를 느끼게 해주는 날씨였다. 이런 날씨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한 코린토스 역은 깔끔하지만 작은 역이었다. 그리고 주변이 다소 황량한 곳이라 세련된 역사가 우두커니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근처에 자동차 판매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우리나라 기업 브랜드도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코린토스 시내까지는 택시를 타고 가려고 잡아 탔다. 기사님에게 코린토스에 대해 듣고 싶어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는데 영어를 못하시는 분이라 경치 감상을 하면서 시내에 도착했다.


금방 도착한 코린토스는 사도 바울이 방문했던 도시 국가로 성경에 등장하는 고린도가 이 코린토스이다. 사도 바울은 신약 성경에 편지를 통해 글을 많이 남겼는데 서기 51년과 57년에 방문해 쓴 글이 고린도전서와 후서이다. 그리스에서 굉장히 부유했던 나라로 한때는 아테네를 위협하기도 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좁은 지협에 위치하여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 교통의 요지로 무역 활동하기에 편했는데 오면서 코린토스 운하가 잠깐 보였었다.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가 쇠퇴했던 헬레니즘 시대에도 번영을 구가했다. 나중에 기원전 146년 로마제국이 이 도시를 파괴하는데 카이사르의 명으로 기원전 44년에 다시 만들어져 이어지다가 후에 서기 6세기 지진으로 인해 점차 쇠퇴하게 된다. 일찍부터 번영을 누린 도시여서 기원전 7~6세기에는 코린트 도자기가 유명해 지중해 각지로 수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춘이 유명해서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천 명이 넘는 매춘부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코린토스 사람은 매춘부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이 도시의 수호여신이 아프로디테였고 신전에는 항상 많은 매춘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했던 이 도시는 크리스트교가 전파되기 어려웠다. 그에 따라 사도 바울은 코린토스에 있는 크리스트교도들에게 두 번의 편지를 썼고 이 편지들이 신약성경에서 고린도전서와 후서로 인정받고 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8장에 바울이 코린토스에 교회를 설립하고 고린도전서와 후서에는 코린토스의 문란함,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고대 미케네 문명에서 시작해 성경에 등장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도시는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고대 코린토스의 잔해는 남아 우리들이 걷는데 좋은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손에 꼽히는 화창한 날씨 덕분에 아이도 마음껏 뛰며 풀밭에 있는 꽃을 찾거나 했다. 아폴로 신전이나 아고라, 재판장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형태를 알아볼 수 있지만 이미 2,000년 전의 도시라 잔해로 남겨진 경우가 많아 언뜻 보면 그저 폐허가 남겨진 곳으로 생각될 수 있었다. 한가로이 거닐면서 이곳을 걸었을 코린토스 사람들을 생각하며 함께 걸어보고 어떤 건물 일지 상상해보았다. 고대 코린토스 유적 뒤로 거대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이 바로 유명한 시시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산이다. 코린토스의 왕으로 꾀가 많았던 시시포스는 제우스에게 화를 당해 저승에 갔는데 저승의 신인 하데스를 속이고 오랫동안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벌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고 다시 떨어지면 밀어 올리는 형벌을 영원히 받도록 했다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산 어디선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를 생각하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의 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우톨리코스를 속인 이야기이다. 아우톨리코스는 재주가 좋아서 소를 훔쳐 소의 빛깔, 모양을 마음대로 바꿔 못 찾게 했는데 시시포스가 자신의 소는 발굽에 이름을 새겨 두어 나중에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의 현장에 지금 와서 보니 문명사회에서 가지는 그리스의 위상이 크다는 게 느껴졌다. 유적을 둘러본 후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했다. 1932년에 지어진 박물관으로 그렇게 크지 않아 저번에 가봤던 에페소스 박물관보다 작게 느껴졌다. 야외에도 각종 조각상 유적이 있었고 내부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조각상,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디오니소스 머리가 장식된 모자이크가 유명한데 마침 볼 수 있었다.


코린토스 유적 관람을 끝내고 시내로 들어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작은 동네지만 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곳이라 그런지 식당이 제법 있었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 노천에서 밥을 먹었다. 그릭 샐러드와 그리스 꼬치구이인 수블라키, 오렌지 주스, 그리스에서만 판다는 커피 프라페를 주문했다. 커피 프라페는 그리스 여행 내내 많이 먹었는데 꼭 현지에서만 팔거나 유명한 음식이 있으면 먹어보는 스타일이라 많이 먹었다. 그리고 인스턴트커피 같은 달달한 맛과 시원한 맛이 있어서 이렇게 여행하면서 걷고 땀이 났을 때 보충으로 그만이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이번에는 코린토스 현재 시가지를 구경하기로 했다. 점심 지난 후이지만 문을 벌써 닫은 가게도 있어서 조금 놀라웠다. 우리나라는 밤늦게까지 영업하고 아니면 24시간 동안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작은 도시이긴 해도 영업시간이 짧다는 게 다소 신기하긴 했다. 저번에 아고라를 가지 못한 것도 개방 시간이 짧아서 그런 거였는데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습관이 부러웠다.


거리는 우리나라 소도시와 비교해서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차도 많지 않았지만 거리나 건물들이 잘 정비되어 있고 특히 보도블록이 반듯반듯한 돌로 맞추어져 있어서 정갈해 보였다. 여유롭게 햇살을 맞으며 거리를 걷고 있는데 바닷가 쪽에 있던 큰 분수에 페가수스 청동상이 있어서 궁금증이 일어나 찾아보았더니 페가수스가 코린토스 성벽에 있는 페이레네 샘을 좋아해 이곳에 와서 물을 마시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폭했던 페가수스를 벨레로폰이 여기서 고삐를 다는 일에 성공하고 페가수스를 타고 괴물 키마이라를 퇴치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코린토스는 신화와 성서의 중심 무대였다는 게 실감 났다. 바닷가까지 둘러본 후 시내에 있는 카페에 어른들은 커피 한 잔씩, 아이는 초콜릿 푸딩을 먹었다. 오전에 많이 걸어서 아이게 당 충전은 필수였다. 평온하고 깨끗했던 도시를 해질 녘까지 만끽하다가 아테네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역으로 왔다. 타는 사람도 별로 없고 기차 안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넉넉하게 갈 수 있었다.


푹 잠든 어머니와 아이

기차 타기 전부터 내 품에서 자던 아이는 기차에 타서도 내내 잠을 잤다. 어머니가 안고 아이는 그 품에서 단잠을 자고 역에 내려서 깼다. 다들 저녁은 무얼 먹을까 하다가 매콤한 국물이 생각나 아시아 음식점에서 먹기로 결정했다. 이곳까지 와서 아시아 음식점이라니 이상하겠지만 벌써 여행한 지 열흘째인데 계속 식사로 빵, 버터, 구운 고기, 샐러드 같은 음식만 먹으니 맵고 짠 음식이 생각나긴 했다. 한국 음식점도 아테네 시내에 있긴 했지만 평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고 여기까지 와서 한국 음식을 먹지는 않겠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아시아 음식으로 돌렸다. 아테네 역에 내려 아시아 누들 음식점에 갔는데 그리스 사람 외에 아시아인도 몇 명 있긴 했다. 이곳에 와서 먹는 음식이기에 그리 기대는 하지 않고 주문했는데 나온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국물을 한 번 떠먹어보고는 다들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첫 실패였다. 일단 면 음식은 면도 중요하지만 국물이 생명인데 맛이 우리 입맛에는 역하고 전혀 맞지 않았다. 거의 남긴 채로 나왔다. 역시 현지에서는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아이를 위해 주문한 새우볶음밥은 그래도 먹을만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배고픔을 남긴 식사를 마쳤다. 숙소로 돌아와서 전에 해놓은 빨래를 만져보니 다 말라있었다. 빨래를 개고 내일 가볼 곳을 정리했다. 내일은 온전히 아테네를 구경하는 날이라 다들 기대가 컸다.


고대 코린토스 아폴론 신전
페가수스 청동상
코린토스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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