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취준생이었다. 28살쯤 되니 어떤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괜찮다는 심정이었다. 그저 내 집이 아닌 집에 얹혀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취업할 나이가 되니 평생을 산 집은 더 이상 그녀의 집이 아니라 부모의 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나이가 되면 '집'보다는 '본집'이라던가, '고향'이라던가, '본가'라든가 하는 말이 훨씬 입에 붙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집'이라고 부를 곳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아르바이트 따위가 아니었다. 정규직으로 고정 수익을 얻고, 적금을 하고, 집을 얻을 수 있는 '잡'이 필요했다.
취업 2개월 전에는 부모의 집에서도 나와 대전의 친구 집에서 얹혀살았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 할지라도 같이 사는 게 아닌 얹혀사는 관계는 미묘하게 눈치가 오갔다. 친구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대해줬음에도 그녀는 빨리 나가야 한다고 조급증을 내었다. 그래서 대전에 넣을 만한 회사에는 모두 지원을 했다. 서울도 가리지 않았다. 회사를 선택하는 일에 고향이 아닐 것, 정규직일 것 이 두 가지 말고 다른 옵션은 없었다.
공부를 더 해 더 번지르르한 회사에 가는 것은 그녀의 의지로는 불가능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주 길을 잃었고, 길을 찾기 위해 기어가야 한대도 상관없었다. 단지 뭐라도 붙잡아야만 했다. 당시 그녀는 무능력했고, 깜깜한 내일을 맞이 하는 상황은 그녀를 너무도 자주, 깊이 무력화시켰다.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대체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중소기업들이었다. 공채를 기다릴 여력이 없는 취준생의 사람인 페이지에는 그런 곳만 잘도 알아서 골라준다.
공채를 진행하지 않는 회사, 수시로 인력을 충원하는 회사는 대체로 퇴직률이 높고, 그건 급여가 낮거나, 복지가 낮거나, 좆소거나, 사람이 별 로거나 중에 적어도 하나라도 속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친구 집에 얹혀사는 동안 그녀가 낼 수 있는 안간힘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고, 수많은 탈락의 고베를 마셨고, 겨우 대전의 한 회사에서 그녀를 반겼다.
입사 첫날, 둘러본 회사는 경악할 수준의 환경이었다. 거주용 빌라 꼭대기 층, 복층으로 된 '집'을 회사로 쓰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고, 옛날 가정집에서나 볼 법한 낡은 원목 서랍장에 회사 중요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었고, 오픈형 주방이 있었고, 베란다는 직원들의 흡연실로 쓰였다. '집'을 얻고 싶어 들어간 회사는 정말 '집'이었다. 그녀는 어쨌든 목적을 달성했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생겼고, 무엇보다 '집'이 생겼으니.
다행히 그녀는 1층의 일반 사무실처럼 생긴 곳에서 업무를 했다. 그것이 아니었으면 그 집같은 회사를 숱하게 거쳐간 다른 신입들처럼 회사가 쪽팔려 금세 그만두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회사를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그 누구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성실하게 회사를 다녔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 나은 직장을 찾는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서류탈락과 면접 탈락에 이미 충분히 많은 겁을 먹은 터였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회사생활은 그저 근태 좋고, '할 일이 더 없냐'는 단 한마디면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일은 잘 못하는데, 애는 착해'의 표본으로 회사를 다닌지 어느새 1년. 그쯤되니 '집'같은 회사에도 소속감을 느끼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는 동안 회사는 5층짜리 건물을 사서 이사를 가게 됐다.
회사는 종종 월급이 밀렸지만 그래도 안정되어 갔다. 퇴사가 하도 잦아 사람들의 이름을 외울 필요조차 없던 회사에서 이름은 물론 나이를 외우는 것이 중요해질 만큼 인력도 안정되어갔다. 그때 그녀는 첫 번째 승진을 했다. 주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