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는 주인공이었다.

by 이동장

어릴 적 그녀의 책과 영화 감상 목록에는 늘 멋져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중학교 때 브리짓 존슨의 일기 책을 펼치고 처음 맛봤던 어른의 자유로움과 일하는 여자의 성숙한(당시는 그랬다) 삶에 대한 짜릿함. 비슷한 시절 12시가 넘어야 티비에서 볼 수 있는 섹스앤더시티를 몰래 보며 캐리의 삶을 동경했던 일. 또 그 비슷한 시절 금발이 너무해 속 주인공이 마침내 법대에 들어가 자신의 몫을 기어코 해내는 장면.


가난에 치여 공부는 물론 당장 내일의 급식비를 걱정해야만 했던 그녀가 봤던 서양의 여자들은 그녀가 닥친 내일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이었다. 자유분방했으며, 부자였으며, 번듯한 직업이 있었으며, 취미를 가졌으며, 사랑을 했으며, 역경을 해치며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그녀가 꿈꾸는 그녀의 미래도 그녀들을 닮아갔다.


커리어우먼이 될 것,
해외(반드시 서양)에서 살 것,
결혼은 하지 않을 것,
구두를 신을 것.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역시, 드라마와 책 속의 여자들은 잘 짜여진 허구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그 시절 그녀는 절대 주인공에 가깝지 않았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말을 수 없이 많이 들으면서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주인공의 근처에도 머물지 못했다. 그녀 스스로도 주인공이라 생각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주인공도 아닌 조연에게 따돌림을 받는, 구석에 박혀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을 엑스트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녀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연애.


한 남자의 삶의 중간 지점에 그녀가 위치한 느낌은 그녀에게 중독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의 빛나는 세상에 그녀의 구질구질한 삶이 편입된 느낌. 늘 엑스트라만 하던 그녀가 유일하게 누군가에게는 주인공처럼 보일 수 있는 순간. 연애는 그녀에게 위로였고, 안도감이었고, 소속감이었다. 대충 그걸 뭉뚱그려 사랑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빛나는 남자들을 보면서 평생 느낄 수 없는 권력감 또한 맛봤다. 줄듯 말 듯, 그녀가 학창 시절에 유일하게 배운 게 있다면 연애, 그것이었다.


그런 몇 번의 연애를 거친 그녀는 어느 정도의 자존감을 회복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생활은 대체로 순탄했다. 그녀는 그녀의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다니게 됐고, 그 사실만으로도 안도가 됐다.


연애도 쉬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자존감을 회복시켜준다는 이유로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연애를 했지만 대학 때는 연애가 즐거웠다. 심지어 주인공이 된 듯한 그 느낌에 심취해 여왕벌같이 행동하기도 했다. 그 착각은 대단히 무서운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대학생활에 푹 빠져 지냈고, 졸업은 뒷전이었다. 결국 6년을 다녀 겨우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 주인공 같은 느낌에서 밀려났다. 한참을 취업전선의 언저리에서 방황했다. 겨우 정신을 차려 들어간 회사는 엑스트라의 삶을 사는 그녀에게 걸맞은 곳이었다. 홍보를 대행해주는 중소기업. 그래도 취업은 했으니 조연급은 되지 않았으려나, 그녀는 합리화를 했다.


그렇게 취업을 했지만 어릴 적 몰래 보던 섹스앤더시티 속 캐리의 삶은 없었다. 커리어가 없는 우먼이었고, 해외는 커녕 영어 한마디 하기 어려웠고, 결혼은 안하는 것보다는 못하는 것에 가까웠으며, 신발장에 구두는 면접때 신었던 싸구려 검정 정장구두가 다였다.


그녀는 그저 허름한 회사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허름한 표정으로 허름한 일을 했다. 누구도 읽지 않는 카드뉴스를 썼으며, 대행해주는 일조차 늘 실수를 했다.


어쩌다 그녀가 일을 잘하면 그녀가 잘한 게 아닌, 그녀의 클라이언트들이 잘한 것이었다. 홍보대행사는 늘 주인공의 언저리에 머물러야 하는 자리란 걸 그녀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깨달았고, '넌 주인공이 될 수 없어'라는 생각을 아침부터 퇴근까지 복기당했다.


주인공을 향한 그녀의 눈물 나는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 연애를 했다면, 사회에서는 공부를 했다. 회사와 대학원을 병행했다. 적어도 그 중소기업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혹은 졸업한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자위는 다시 시작됐다. 캐리와 비교하던 삶에서, 주변과 비교해가며 부질없는 정신승리를 했다.


보이기 위한 학위를 준비하고, 보여지는 성격만을 다듬으며 적어도 그녀의 100m 내에서는 그녀가 주인공으로 보여지기 위해 살았다. 그녀의 30년 동안의 삶에 캐리는 없었지만, 캐리에게 구두를 파는 상점 직원 정도는 되려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적어도 TV에 나오지 않았냐며 사실은 구두 매장 직원이 본인이 주인공이라 합리화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살았다. 평생을 열등감과 자기혐오와 찌질함으로 살았다. 주인공에 집착하며 결핍되어온 관심에 대한 갈망에 스스로 괴롭혔고, 주변 사람들은 그만큼 더 괴롭혔다.


그리고 놓아주려 한다. 중학교 때 그녀의 로망이 되어주었던 브리짓과 캐리와, 엘 우즈를.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삶을 살으려 한다. 아마 실패하고 영영 주인공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에서, 그 울타리 내에서 엉망이 된 채 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책과 영화에서 벗어나 보잘것없어도 그녀로 편히 살지도 모른다. 무슨 결과든 시도하려 한다.


그리고 글은 이제 시작된다. 어떻게 펼쳐질지 모를 글. 그녀가 쓰는 글이 아닌 인생에 의해 쓰여지는 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