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중쉬어.

나무 막대기 같은 종아리를 가진 남학생

by 이동장

초등학교 6학년. 당시만 해도 월요일 아침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아침 조회를 했다. 흙먼지 이는 운동장에 반 별로 긴 줄을 서고, 아침체조를 하고, 교장선생님의 늘어지는 훈화 말씀을 들었다. 그렇게 길게 이어진 여자/남자/여자/남자 줄은 큰 운동장을 꽉 채우고도 모자랐다. 우리는 모두 '열중쉬어' 자세로 서있어야 했고,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세가 흐트러진 학생들에게 주의를 줬다.


그녀는 키가 작았던 모양이다. 6년을 성실하게 4~5번째 순서에 섰다. 그리고 옆반의 그 남학생은 항상 그녀의 2줄 옆, 2~3번째 앞에 있었다. 그 남학생은 반바지를 자주 입었는데, 그녀는 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아침 조회에서 들키지 않게, 최선을 다해, 대각선 앞에 서있는 그 남학생의 종아리를 훔쳐보았다.


그 남학생의 종아리는 신기했다. 굴곡 없이 쭉 뻗은 그 다리가 나무 막대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얼룩 하나 없이 진 갈색으로 탄 그 다리가 이 세상에는 없는 다리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그 다리가 사실은 나무 막대기라는 상상을 했다. 나무 막대기로 걸어 다니는 남학생.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는 누구 하나 좋아하지 않는 월요일 아침의 운동장 조회를 좋아하게 됐다.


교실에서 나와 운동장에 줄 설 때부터 그녀의 시선은 줄곧 그 남학생에게 향했다. 그녀는 그 남학생의 다리만 보다가 어느새 '열중쉬어'를 하고 있는 그 남학생의 손을 보게 됐다. 그리고는 그의 모든 자세를 따라 했다. 뒷짐 지고 있는 그가 깎지를 끼면 그녀도 따라 깎지를 끼었다. 오른발을 움직이면 똑같이 오른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시선을 그 남학생에게 고정한 채 그녀는 한 시간을 멍하니 그의 자세만 곧대로 따라 했다. 그리고 지루한 아침 조회가 끝이 나면 늘 아쉬웠다.


초등학교 6학년, 그게 사랑인 줄도 모를 나이였다. 1년을 꼬박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나간 순간부터 그녀의 시선은 그 남학생을 찾고, 훔쳐봤지만 그 남학생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나무 막대기 같은 종아리를 가진 그 남자애가 이상했고, 그 이상한 남학생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못할 뿐이었다. 왜인 줄도 몰랐다. 하지만 어쩌다 교내 복도에서 마주치면 이유모를 부끄러움에 그 남학생의 옷깃조차 쳐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졸업할 때 즈음이 되어서야 그 남학생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리고 2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그녀는 그 남자아이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무 막대기 같은 종아리를 가진 그 남자아이.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고, 이름을 불러 본 적도 없고, 그저 뒷모습만 20년이 다 되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 남자아이.


문득 떠오른 그 이름은 아직도 그녀를 부끄럽게 만든다. 더 부끄러울 게 없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의 이름 3자가 그녀를 다시 13살, 초등학교 6학년, 앞에서 4~5번째 줄에 우두커니 서있는 운동장 아침 조회의 순간으로 데려다준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그 남학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건 그 남학생 하나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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