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회사 vs 싱가폴 내에서 이직 vs 한국으로 컴백
8월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이 회사에서 일한지도 3개월이 됐다. 첫 달은 인턴 쩌리로, 두번 째 달부터는 수습으로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회사 생활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숨부터 내쉴 것이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취업에 대한 좀
더 깊은 숙고와 준비가 필요했던 걸까?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비록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서른살을 0원으로 맞이할테지만 20대의 끝자락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본 것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3가지다.
선택지 1.
현재 회사에 머무는 것
내가 일하는 곳은 광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이다. 주로 Marketing collaterals를 만든다. 예를 들면 Annual report, Newsletter, Brochure부터 시작해 infographic, facebook contents, Poster, EDM 등등. 결과물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지, 그 메시지를 비주얼로 어떻게 표현할지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한 업무들이다. 이러한 류의 업무는 PR 업무 할 때도 느꼈던 답답증을 고조 시킨다. 삐까뻔쩍한 결과물을 낸다고 해
도 그 결과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측정할 수 없는 것. 클라이언트와 보스의 피드백을 통해 최종 결과물이 나오지만 관리자의 관점이 아닌 타깃이 관점에서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얼마나 그들의 니즈를 만족시켰는지 그들이 어떻게, 얼마나 반응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업무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내가 얼마나 눈에 보이는 결과를 중시하는지 이 회사에서 페이스북을 운영하면서 깨달았다. 불행 중 다행히도 여기와서 가장 먼저 한 업무가 클라이언트의 페이스북을 관리,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Ad manager를 보며 Peace of Mind를 느꼈다. Ad manager에서는 우리 콘텐츠가 얼만큼 노출되고, 사람들이 얼만큼 클릭하고, 클릭당 비용이 어떻고 등등 내가 한 노력을 결과는 가시적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타깃들의 행동의 흐름을 보며 문제점과 잘된 점을 분석하고 분석결과를 다음 캠페인에 적용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거구나! 진로 고민에 작은 해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궁금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 부분들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이 회사에서 나의 입지는 무지 좁아서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부분 또한 적다. 누군가에게 배울 수도, 나의 생각을 적용시켜 나갈 수도 없는 상황. 내가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한 치밀한 분석없이 무작정 취업한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언어적인 문제도 한 몫한다.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업무를 하다보니 팀원들과 클라이언트와 discussion해야 할일이 잦은데, 아직 내 영어는 그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팀원들도 나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도 않아서 내 의견을 전달할 때 애를 먹는다. 나에 대해 nice하지 않은 사람들과 일을 하는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이 때문에 내 피부는 썩어 들어가고 있다.
솔직히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수명이 줄고 있는 느낌이라, 더 이상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업무에 대한 확신도 없고, 사람들이 좋은 것도 아니고, 페이는 한국에서 받았던 것보다 당연히 낮은 수준이다. 내가 더 이상 이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선택지 2.
싱가폴 내에서의 이직
싱가폴에 왔으니 여기서 뽕을 빼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여기 온 목표가 있으니 그것을 이루고 가고 싶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진로에 대한 방향성을 찾았으니 이직을 시도해 볼까?
싱가폴에서 3개월간 일하면서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 사람들과 일을 하고 그들 그리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가면서 일하는 것. 내가 여기서 과연 회사가, 내가 만족할 만한 퍼포먼스를 내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의 무기는 "한국어"이다. 한국인이라서 한국어를 잘 하는 것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하면서 실제로 커뮤니케이션 실력을 갈고 닦아왔다. 한국어 업무, 그리고 내가 원하는 디지털 마케팅 업무와 교집합인 잡 오프닝을 찾는다면 기꺼이 지원해 볼 생각이다. 내가 원하는 직무에 부합하지 않는데 무작정 Korean speaker만 뽑는 업무라면 패스! 싱가폴에서 살아 남는 것보다 탄탄한 커리어를 쌓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선택지 3.
한국에서 재취업
이 옵션은 처음에는 아예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요즘들어 가장 끌리는 옵션이다. 아직 커리어가 탄탄하지 않는 상황에서 커리어를 가장 빨리 build up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내 언어로 배우는 게 아무래도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처음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옵션을 꺼린 것은 "실패자"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도 못하고 지금 힘드니까, 결국에는 내 나라로 도피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 하지만 이 결정은 이전과 다르게 상당히 유의미하다. 직접 부딪혀보고, 깨달아 보고, 여러가지 옵션을 놓고 객관적으로 평가한 끝에 내린 결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1년동안 자리잡지 못 하고 방황하며 느낀 것이 상당히 많다. 벌써 4분기. 올해도 저물어 가고 있다. 미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지금 드는 생각과 느낌들을 잘 저장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