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온지 2주가 되었다
다시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싱가폴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에서의 삶도 역시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백수 주제에...ㅋㅋㅋ 한국에 입국한 바로 다음날부터 이틀 연속으로 면접이 있었다. 입국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날 면접을 위해 과제를 했고, 오픽 시험을 봤다. 경유를 한데다가 밤 비행기를 타고와서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면접을 치루는 회사에서 내준 과제를 하느라고 밤 12시 넘어서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또 지난 주 일요일까지는 단기알바와 취준을 동시에 했다. 사실 보고 싶었던 친구를 왕창 만나고 편하게 지냈던 적은 며칠 안되는 것 같다. 내가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지, 그냥 이렇게 살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인건지... 이런 고된 삶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치든 이제는 좋게좋게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앞서 말한 회사말고도 몇 곳의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그런데 딱히 연락이 없는거보니 면접에서는 합격하지 못했나보다. 싱가폴에서도 생각한거지만 한국에서의 취업이 더 쉬울 것 같아서 이곳이 다시 돌아온 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류에서 떨어지고, 면접에서 떨어져도 타격이 그리 크지 않다. 무언가에 도전할 때, 쉽다고, 수월하다고 가정하는 건 위험한 것 같다. 예상대로 되지 않았을 때 멘탈이 깨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틀 전에 면접을 본 온라인 광고 대행사의 면접관이 이렇게 물었다. "주로 홍보 업무를 하셨는데, 이 커리어를 버리는 게 아깝지는 않으세요?" 나는 아깝지 않다고 답했다. 새롭게 도전하려는 디지털 마케팅, 광고 포지션에서도 기존에 길러왔던 업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 길을 거쳐오지 않았다면 현재 내린 결론에까지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를 어떻게 보든 나는 현재의 나 자신에 만족한다. 아니, 만족해야만 한다. 현재의 나를 부정하며, 과거를 후회하면서 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지금 이대로 좋을 것
한 곳에서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지는 못했지만, 20대에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다. 대행사도 경험해봤고, 코스닥 상장사인 인하우스도 경험해봤고, 스타트업에서도 일을 해봤고, 심지어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싱가폴의 회사에서 일을 해보기도 했다. 다양한 규모,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회사를 경험했고, 홍보/마케팅/광고 영역을 모두를 다뤄봤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의 문화, 일하는 방식, 업무적으로 뭐가 나에게 더 잘 맞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동안 거쳐갔던 회사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기 때문에 사람을 얻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배움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잡초같은 사람이라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한 회사에서 5-6년동안 쭈욱 일을 했어도 물론 많은 것을 얻었겠지만, 그런 안정적인 행보를 했더라면 겪지 못했을 많은 것을 경험했다. 지금으로써는 내 손에 있는 경험과 깨달음이 다른 누구의 무엇보다 값지다.
'사람은 변한다는 말'은 거짓, '사람은 성숙해진다'는 말은 진실
아마도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는 않았겠지만, 싱가폴에서 반년간 살면서 성숙해진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지금 이 순간을 건강하게 견디지 못하고 무지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연말인데 남자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잡도 없으니, 취업이라도 빨리 하려고 아둥바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마음은 너무나도 평온한 것. 상황이 내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고 나를 괴롭히고 쥐어짜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만 괴롭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안녕'을 바란다. 평온한 마음을 갖는 것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닌, 마음을 다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에 행복한 일만 일어나길 바라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럴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에 집착하고 싶지 않다. 다만 폭풍의 핵 속에서도 '단단한 정신상태'로 인해 덜 괴롭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