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서 당당하게 살아봅시다
주변에 30대 또는 그 이상의 싱글 여성들을 보고 있노라면 명치가 턱 막힌 것처럼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진다. 31살, 여전히 30대의 초입에 서있지만 그들의 삶에 나를 투영해보며 그들이 나의 미래인 양 상상해보면 과연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답을 내릴 수 없다.
싱글로 혼자 사는 사람을 보는 일은 이제 너무나도 흔한 일이 됐으며 나아가 아예 비혼을 선언하며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린 사람도 상당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꼭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48.1%로 과반수 이상이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고 여긴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싱글족이 대세이고 결혼이 필수인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디어 속의 풍경들과는 다르게 피부로 느끼는 바, 결혼이라는 통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으레 통과해야 하는 관례적인 절차로서 의미보다는 한 단계 성숙한 인간으로 도약, 스스로 꾸려나가는 가정이라는 버팀목을 만든다는 점에서 피할 이유가 없다.
또래 친구들이 남편의 품으로 떠났다
20대 후반을 지나 30대 초반에 다다르며 친한 친구의 절반 정도가 결혼을 했다. 2017년 기준 여성의 초혼 연령이 30.2세인데 친구들은 결혼 적령기에 맞춰 결혼을 한 것이다. 확실히 결혼을 한 친구들이 늘어나니 그들과 만나는 기회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남편과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환경적인 변화를 시작으로 관심사와 고민거리의 종류가 달라지며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대화의 영역이 한정된다. 싱글과 기혼 친구들 사이의 간극은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으레 말하는 평범한 삶과 가까워져 가정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정립해 나가는 자들과 여전히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의 공기 속에서는 부유하는 자들.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언니들
87년생 동갑내기 언니들 4명을 알고 있다. 4명 중 2명은 이미 결혼을 했고, 3번째 언니의 결혼식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2명의 언니는 더 이상 남자 친구가 아닌 남편과 결혼식에 참석했다. 오늘의 신부인 3번 언니는 버진로드를 걷고 있다. 싱글인 4번 언니는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혼자 왔다. 친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밝은 모습 뒤에 가리어져 있는 그늘을 봤다면 이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2명의 유부녀 언니는 나란히 임신을 해서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식장을 떠났고, 언니는 홀로 버스를 탄다며 자리를 떴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였는데, 또 언제 따로 볼지 모르는데 커피나 한잔 마시자고 할 걸 그랬다. 안부도 물을 겸.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미혼이신 40대 부장님에게 들은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차피 죽어서 썩을 몸 기회 될 때 원나잇이라도 하면서 젊음을 즐기세요." 회사에서, 그것도 직급이 높은 상사에게, 원나잇을 지향하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녀에 말에 따르면 이렇다. 자기는 20~30대 때 치열하게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커리어에 집중된 삶을 살았다고. 남자나 연애는 우선순위가 아니어서 그에 관한 세포는 도태되었다고. 나는 그녀에게 또래가 모이는 모임이나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기회를 만들라고 조언했지만 그녀는 연애나 결혼에 대해 체념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동안 본인이 닦아온 길, 살아온 방식에 대한 회의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같은 길을 가길 바라지 않는 것만은 확실했다.
50대 싱글이신 우리 작은 이모. 최근에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으셨다. 이모에 관해 최근에 들었던 소식은 남자 친구와 헤어져서 친구와 유럽 여행을 갔다는 것뿐이었는데, 어쨌든 슬픈 소식의 연속이다. 이모가 다니는 대학병원이 부모님 댁 근처라 이모는 현재 우리 부모님과 함께 지내신다. 몇 주 전에 집에 다녀왔는데 암 환자 앞에서 안타까워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몰라 무덤덤하고 어색하게 있다 왔다. 물론 언니와 형부의 케어를 받으며 함께 지내는 것도 좋지만 이모가 결혼을 해서 남편과 함께였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와 관련해서 당사자와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서 가늠하기 힘들지만 오로지 조카의 관점에서 본다면 뜨겁게 사랑하고, 그런 상대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복작복작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아프기까지 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예전에는 엄마도 "능력만 되면 골드미스로 혼자 살아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싱글의 이모를 케어하면서 이제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이든 육아든, 뭐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친척과의 모임에서 그동안은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이가 벌써 31살이냐며, 만나는 사람은 없냐는 것. '네 없습니다 없구요' 쉬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다다랐다고 해서 연애하고 결혼을 쫓는 삶이 정상, 그렇지 못한 삶이 어딘가 결핍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이에 따른 인생 설계도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30대 싱글에게 관대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 따스하지 못 한 말로 그리고 눈초리로 자아를 성찰하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싱글라이프를 누려야 할까. 극단적으로 봤을 때 두 가지인 것 같은데, 하나는 영원히 싱글로 살 수도 있으니 혼자 살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노후를 준비해 나가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짝을 찾아 나서는 것. 하지만 대부분 나와 같이 중간 지점일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기도 하고,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혹은 나는 맘에 드는 데 상대방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서 좌절하고,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겠지 하며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내는 것.
그렇다.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영혼의 짝을 만나 하나둘씩 떠나는 미혼 친구들을 보면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크고 (저 대단한 걸 해내다니!), 30대가 훌쩍 넘을 때까지 미혼인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긴 싫은 데하며 울적해지니 말이다. 그렇다고 당장에 결혼할 생각도 없다. 아직 한 사람을,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을 품으려는 준비도 안 됐으며 이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내적 성숙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금전적인 여유 없음도 한몫을 차지한다. 나 자신에게, 또 나와 같이 불안한 30대의 싱글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제발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 불안하고 조급함은 결국 나 자신을 좀 먹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잃게 한다. 비록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우리가 무언가 행동함으로써 획기적으로,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때가 되면 될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온전히 잘 살아내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