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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굥 Dec 12. 2018

착한남자의 두 얼굴

서른 살, 똥차에게 얻은 교훈

이렇게 또 한 번 연애의 종지부를 찍었다. 30대의 첫 연애에서 20대 때 만나 보지도 못한 핵폭탄급 똥차를 만나다니. 30대의 연애 스토리도 꽤나 파라만장할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착한 사람인줄로만 알았다. 속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 듯 말이다. 대학교 때부터 스펙을 그렇게 따져 가면서 만났던 내가 학벌, 직업, 집안이 좋지 않던 그를 만난 이유는 착하고, 다른 남자들에 비해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아낌없이 표현하고, 알뜰살뜰 돈을 모으는 넉넉치 않은 형편이었지만 나한테 맛있는 걸 사주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할애했으며, 내가 무엇을 하든 응원해주었다. 따뜻한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았지만 그에게 확신을 가졌던 건 아니다. 좋기는 했지만 거기서 그쳤다. 그와 함께하는 미래가 밝게 그려지지 않았다. 데이트 통장을 하자고 할 만큼 경제 관념이 투철하고, 과거와 달리 조금은 여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모험은 기피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적당한 만족을 느끼며 야망과 포부 같은 거창한 것은 없는, 남자와 여자가 공평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어딘가 모르게 찌질했던 모습들... 이것들이 그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가로 막았던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을 두고 '가치관'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연애 중에는 그와 나의 '다름'이 '어긋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운 부족한 곳을 메워주는 '긍정적인 시너지'를 뜻한다고 믿었다. 그가 "너는 나와 달라서 좋아"라고 줄기차게 해왔던 말을 믿었다.


내가 착하고, 순수하고, 믿음직스럽다고 믿었던 모습은 거짓이었다. 내가 아는 지인과 데이트를 즐겼으며, 내가 모르는, 여자가 반인 모임에 솔로인 척 하고 나갔다. 물론 이 사실은 헤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게다가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도 못했다. 차였다는 뜻이다. 그 당시에는 내가 알바를 여러 개 하면서 올해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헤어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충 생각만 하고 있었지 진지하게 고민할 틈 조차 없었다. 그러는 사이 그는 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마음 먹었고, 새벽 5시반에 카톡 메시지 달랑 하나로 이별을 고했다. 우리는 30대이지 않은가? 사귄 기간이 길지는 않더라도, 내가 그렇게 꼴 보기 싫었다고 하더라도, 카톡 메세지 하나로 이별을 말하다니. 헤어지는 방식조차 실망스럽다.


정말 슬픈 것은 '내가 조금만 더 그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는 날 떠나지 않았을텐데'라는 자책 섞인 생각마저 무가치 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는 좋은 사람이었어. 내가 이 관계를 망친거야!'라고 생각하며 맘편히 우리가 행복했던 모습을 그리워 하고 싶다. 그런데 이게 뭐람? 그는 명백히 '스쳐가야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 그를 깊이 사랑했더라면 그의 양면적인 모습을 알고 상처만 커졌을 것이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를 연 상황에서, 그의 거짓말이 모두 탄로난 상황에서 생각해본다. 과연 내가 그의 거짓말을 모르는 게 나았을까?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고 온 거였으면서, 늦은 밤 야근하고 온 척 우리집 앞에 와서 깜짝 선물을 주고 가고, 명절에 친척집에 간 척, 동성친구 만난 척 하면서 모임에 차 끌고 나가서 사람들이랑 놀고... 그 모임 사람들한테 외롭다고 누구 소개시켜달라고 하고... 대체 왜 그런 사람이 나한테는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했던 걸까. 정말 역겹다. 사람은 낯선 상황에 맞닥 들이면 그 상황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분석하자면 대부분이 '가정 환경' 때문이다. 한창 뻘짓하면서 놀 때 돈 없어서 못 놀고, 가정에서 지원을 못 받아서 생긴 열등감과 애정결핍을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출했던 것 같다.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겠지만 헤어질 때 조차 제대로된 변명 또는 설명을 듣지 못 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추측 뿐인 것 같다.


나는 아직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걸까? 아니, 지금와서 나의 사람 보는 눈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마음 먹고 그렇게 완벽하게 속이면 과연 누가 속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걸리는 게 있다면 덮어두고 만나는 것 아닌 것 같다. 확실히 내가 만나고 싶는 사람의 기준을 정하고 그 선에 미치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않든가, 여차저차해서 시작을 했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그 알량한 좋아하고 설레고 상대방에게 사랑 받는 기분이 잠깐은 모든 사고를 마비시키고 우리를 취하게 만들지만, 그 사람의 약점이라고, 나의 가치관과 다르다고 여겨지는 부분까지는 커버해주진 못하더라. 하지만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모호하다. 도대체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이 확고하지 않으니 쉽사리 일렁이는 감정에 흔들린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사람이 동반자이길 원하는가.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은 소개팅을 하고, 모임에 나가고 단순히 이성을 만나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보다 나 자신과 친해져 나에 대해 더욱 깊게 알아가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눈을 기르는 게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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