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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플 Sep 04. 2023

쓰지 않고 살수 있을까

글쓰는 이유

 나는 말이 어눌하다. 차분하고 재미있게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말이 머릿속을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거니와 말을 하면 할수록 전달하고 싶었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에 답답함이 짙어진다. 그래서, 글을 통해서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과 감정, 생각을 꺼내는 것으로 돌파구를 삼았다. 이렇게 대화에 서툴게 된 데에는 자라온 배경이 큰 몫을 했다. 우리 가족들은 말수가 무척 적은 편이다. 지금도 가족끼리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때면 단 한 마디 말을 뱉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이한 점은, 우리 가족은 그 순간에 답답하게 느끼지 않는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어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 침묵에 대해 불편해 하거나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말 없이 지내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말을 위한 말은 하지 않는 편이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 결론이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과도하게 죄책감이 든다. 가족끼리라면 사심 없이 의논할 수도 있고 속상한 것을 토로할 수도 있으련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맞벌이를 하셨고 아침부터 저녁 아니, 밤까지 일하셔야 했다. 따라서, 사소한 일들에 대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눌 여유가 없었다. 학교 끝내고 돌아온 빈 집에서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일이든지 가능한 스스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훈련 되어졌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책을 읽는 것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엄마를 기다리며 할 수 있는 일은 책이나 티비 둘 중 하나였다. 따라서, 티비가 시작되기 전에는 책을 읽었다. 책에 그려진 세계가 열릴 때마다 머릿 속이 개운하게 진화하는 착각에 빠졌다. 특히,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이나 불편을 정확히 짚어 해석하는 책을 만날 때에는 경이로운 통찰력에 매료되었다. 책을 읽으며 그 작가가 된 듯 한 착각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우리 가족이 말수가 적은 가운데에서도 데면데면하지 않은 데에는 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에 부모님은 손글씨로 적은 편지를 주셨다. '우리 딸, 나의 보배, 고마워' 라는 몇 자가 나의 중심에 잘 살고 있어, 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래서,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편지 속 한 글자, 한 글자에는 백만퍼센트의 진심이 들어 있었고 우등생은 아니지만 모범생이었던 나를 더 열심히 살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어른이 되면서는 읽기는 잦아들었고 쓰기가 더 심화 되었다. 더 많은 책을 읽어도 해독되지 않는 현실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스드메는 어디가 좋은가요, 올 여름 핫한 휴양지는 어디일까요, 라는 식의 즉문 즉답을 원했던 건 아니다. 그냥, 내 안에 묵혀둔 답답함들을 풀어 주기를 바랬다. 누군가 표현되지 못한 불편함과 반감에 공감해 주길 원했다. 이 세상을 종과 횡으로 가르고 나타난 작가 한명이 말이다. 네가 느끼는 그것이 하나라도 잘못 된 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 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런 책은 없었다. 나의 삶은 타인의 이야기로 해결할 수 없는 부류의 다름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내야 했다.

 끄적이던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지금 맞닥뜨린 현실에 대한 똑똑한 정리와 올바른 해석이 필요했다. 마음에 쏙 드는 글을 만났을 때의 반가운 청량감을 나에게 주고 싶었다. 때로는, 훌륭한 작가라도 된 냥, 나를 위한 기록에 더해 조금은 타인을 위한 기록을 뒤죽박죽 얼버무리기도 하였다. 페이스북,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까지 이어지는 SNS 열풍에 휩쓸려 누군가에게 칭송 받고 싶어졌다. 와, 너 정말 좋은 글을 썼더라, 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 구구절절 안 붙여도 좋을 사족들을 덧붙였다. 지금에 와서야, 휘갈겨 놓은 글들을 반추해 본다. 그 글이 정말 맞을까, 거짓은 없을까, 옳다는 정의에 비추어 봤을 때에도 참일까.

 습관적으로 많은 글을 썼고 그 글에 내가 있겠지만 아직 이렇다 할 글에 이르지 못했다. 누군가의 고백처럼 처절할 정도로 한글자 한글자 어루만지지 못했던 것도 같다. 재능이 부족하였고 노력이 부족하였던가. 열화와 같은 호응이 없어 좌절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하는 일이 맞나라고 의구심이 들때면 내가 쓰지 않고 살수 있을까 라고 반문한다. 근본적으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왜 쓰냐 하면 나에게 글은 부모님이 내게 주신 편지처럼 커다란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속상 할 때마다 펼쳐 볼 수 있는 친구처럼 든든하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를 위해 쓴다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말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생각하는 것, 표현하고 발산하고 싶은 것을 글로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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