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우리는 멍청하지 않다.
이 글을 작성하기에 앞서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 모든 일이 우리가 멍청한 사람들이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득바득 명확히 해두고 싶다.
경진이와 나는 몇 년 전 설 연휴를 맞아 베트남 여행을 계획했다. 호찌민을 중심으로 근교 무이네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여행지다. 나도 여러 번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베트남의 높은 화폐 단위에 긴장하게 된다. 인터넷에는 베트남 화폐 지갑을 따로 만드는 방법까지 소개되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나는 베트남을 이미 여러 번 다녀왔고 수학을 잘하니까 별로 크게 걱정은 안 되었다.(고 믿었다.)
호찌민의 여행자거리는 화려했다. 해피아워에 맞춰 마사지를 받고 흥겨운 거리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 있자니 행복 뭐 별거 있나 싶었다. 무이네에서의 일정도 순조로웠다. 계획한 대로 새벽에 일어나 지프 투어에 참여했다. 사막에서 일출을 보는 낭만까지 챙겼다. 2월의 무이네는 수영하기에는 추운 날씨이긴 했지만, 오들오들 떨면서 수영장 사진도 남겼다.
여행이 너무 순조롭게 흘러간 탓이었을까. 무이네에서 호찌민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 미터기에는 7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택시 기사에게 70만 동을 건넸다. 무이네에 대한 만족스러운 기억을 안고 호찌민으로 향하던 중 친구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야, 우리 택시비 잘못 냈어. 70만 동이 아니라 7만 동인데. 우리 10배나 낸 거야!”
베트남은 천 단위로 끊어 숫자를 셌어야 했는데,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만 단위로 계산을 해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한순간의 실수로 3만 원이 넘는 금액을 날려버렸다.
“어쩐지, 그 택시 기사님 돈 받고 부랴부랴 가시더라니. 난 아저씨가 되게 바쁜가 했지.”
“이번 주말 기사님 일 안 하셔도 되겠다. 우리가 휴가 보내드린 거야. 행복하시겠다!”
우울한 기분을 호찌민까지 들고 갈 수는 없었다. 여행은 이제 절반밖에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사님의 행복한 모습을 꾸역꾸역 상상하며 쓰린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호찌민으로 돌아와 호텔에 짐을 풀고 현금을 일부 챙겨서 여행자 거리로 나섰다. 저녁을 먹기 전 여행사에 들러 다음 날 계획된 구찌 터널 투어를 예약하기로 했다. 상담원은 투어비라며 계산기에 110을 두들겨 주었다. 그런데 돈이 부족했다.
“아, 나 110만 동 없는데? 너 좀 있어?”
“아니, 나도 부족한데, 숙소 다시 갔다 와야 되네.”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는 숙소까지 또 다녀올 생각에 짜증이 나려 할 때, 경진이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야, 이거 110만 동 아니야. 11만 동이야!”
“맞네. 아니, 아까 택시비도 잘못 내놓고 같은 실수를 또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자괴감에 빠진 채 투어비를 결제했다. 저녁을 먹으며 멍청했던 오늘의 하루를 곱씹었다. 한 번은 그러려니 해도 두 번 실수는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두 번째 실수는 저지르기 전에 깨달아서 참 다행이지 않냐며 서로를 다독이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이후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 별다른 실수 없이 여행을 마쳤다. 다만, 잘못 지불했던 택시비는 스노볼처럼 굴러 여행 마지막날 우리에게 돌아왔다.
밤 비행기 일정에 우리는 공항에 가기 전 저녁 식사로 시장 노점에서 껌땀이라 불리는 고기덮밥을 먹기로 했다. 마지막날 밤이라 여행 경비는 바닥을 보였다. 노점상에는 가격표가 따로 없었고, 부르는 대로 계산을 했다. 그런데 우리 옆에 한 서양인 중년 부부가 같은 메뉴를 먹는데 우리보다 만 동이 나 덜 지불한 것 같았다. 확실치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아지려던 찰나, 우리는 또 깨달았다.
“야, 만 동이면 500원이다. 바가지를 썼어도 500원이야.”
“그렇네. 와, 500원에 쪼잔해질 뻔했네. 그냥 먹자.”
"그래. 우리보다 500원 더 비싼 거 시켰겠지. 기분 좋게 먹자고."
“이게 다 그 택시 사건 때문이야.”
덤 앤 더머 같은 대사를 치며 조용히 식사를 했다. 500원에 여행 기분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근데 더워서 맥주 너무 당기는데. 맥주 얼마야?”
“200원 부족해. 우리 맥주 못 먹어.”
“으아악! 택시비만 제대로 냈어도!”
“서럽다. 순식간에 가난해졌어!”
나에게 여행지에서 마시는 맥주는 생명수나 다름 아니다. 다른 건 그러려니 해도 돈이 부족해 맥주를 못 마시는 건 재앙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3만 원에 큰 교훈을 얻었다. 여행지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데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필요할 때 맥주를 못 마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엔 분명 화가 날 법한 일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 3만 원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이유는 우리에게 유쾌한 추억을 남겼기 때문이다. 호찌민 여행을 떠올리면 이 기억으로 웃음 짓게 된다. 경진이와의 여행이 늘 즐거운 이유는 여행지에서 최대한 좋은 것을 보고, 느끼려 하는 태도가 닮았기 때문이다. 맛없는 식당에 가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고, 바가지를 쓰는 것도 경험이라는 마인드. 불평불만을 내뱉기보다는 설레는 말을 한마디라도 더 얹으려는 마음이 여행을 더욱 가치 있는 추억으로 만들고, 앞으로의 여행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래서 호찌민 여행이 즐거운 여행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이 글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우리는 결코 멍청하지 않다는 사실을 믿어달라 간곡히 호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