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버 여행기의 시작

희귀성으로 대한민국 살아가기

by 갈리버

나는 갈 씨다. 대한민국에 2천 명 정도밖에 없는 희귀 성씨다. "살면서 갈 씨 처음 봐요!" 갈 씨가 처음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정작 나는 40여 년째 쉬지 않고 듣고 있다. 어렸을 때는 내 성이 싫었다. 남들처럼 흔하디 흔한 김이박최 씨면 얼마나 좋을까. 독특하기 짝이 없는 갈 씨는 어린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초등학생들이 짓는 별명이라 봤자 기껏 ‘갈매기’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또 당하는 입장도 초등학생인지라 친구들의 "끼룩끼룩" 소리에 눈물, 콧물을 쏟았더랬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한 남자아이가 매일같이 내 성을 가지고 놀려댔다. 집에 돌아가 울며불며 하소연했다. "내 성 바꿔줘! 나도 엄마처럼 서 씨할래!"하며 엉엉 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빠는 그 친구의 이름을 듣더니 "걔 이름에 석이 들어간다고? 걔한테 '너 그거 돌 석 자지? 너는 돌머리구나!'라고 해." 라고 조언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다음날 바로 써먹었는데, 방법이 잘 통했는지 그 친구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는데 통쾌할 줄 알았던 마음이 오히려 불쾌해졌다. 내 이름으로 그리 놀려대더니 돌머리 한 마디에 이렇게 운다고? 100번 당하고 한 번 돌려줬을 뿐인데 되려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억울한 마음에 나는 더 이상 그 친구를 돌머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그깟 성을 가지고 놀리는 친구들은 없었다. 과연 전쟁도 막아준다는 대한민국 사춘기 친구들은 성숙했다. 놀림이 사라진 나의 성은 그냥 나의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내 이름을 부르는 대신 "갈!"하고 성을 불렀다. 전교에 갈 씨는 나 하나뿐이니 혼란스러울 것도 없었다. 대학생이 되자 특이성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더 잘 기억하게 만드는 무기가 되었다. 연세 지긋하신 원로 교수님도 나를 친근하게 "갈!"이라고 부르시며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시곤 했다. 교사가 되어서는 학생들이 친근하게 "갈쌤!"하며 불렀다. 어느새 이름보다도 성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희귀한 성으로 살아가는 건 흔한 성의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될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뉴스에 절대 나오면 안 된다고 말하고는 한다. "경기도에 사는 갈 모씨(몇 세, 여성)"라고 언급되는 순간 내 신상은 전국에 공개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길' 씨로 오해하는 상황은 식상할 정도다. 예약하고 찾아간 한 식당의 테이블 위에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발** 님"이라 적혀 있기도 했다. 그래. 갈 씨도 있는데 발 씨도 있을 수 있지. 암 그렇고 말고. 근데,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도 발 씨는 조금 심하지 않았나?


어쨌든 희귀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장단점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하는 중이다. 특히 요즘 나의 sns 계정을 지배하고 있는 '갈리버'라는 닉네임 말이다. 이건 내가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날 때 남편이 써준 편지에 적어준 이름이다. '갈리버 여행기'라니.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는 너무 찰떡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갈리버라는 닉네임을 이용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블로그도, 브런치 필명도 모두 갈리버다. 얼마 전 구매한 원목 북스탠드에 각인되어 있는 'Kalliver'를 보더니, 남편은 아무래도 이름 지어준 값을 받아야 되겠다며 일정 수준의 수고비를 요구했다. 흥, 어림없지.


이제 나는 갈리버 외의 다른 닉네임은 상상하기 힘들다. 살면서 나를 잘 드러내는 별명 혹은 필명을 만나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대학생 시절 함께 놀던 동기들 가운데 한 명만 별명이 없어 서운함을 내비쳤던 친구가 있었다. 억지로 별명을 지어내려 하니 영 어색해져서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나는 희귀성이기 때문에 별명도 쉽게 얻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친근하게 부를 수 있었다. 곱씹을수록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욱 많은 것 같아 감사하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나의 (희)귀한 성과 남편이 만들어준 나의 닉네임 모두 소중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름을 내걸고 하는 모든 일이 부끄럽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 그것이 나에게 이름을 물려준 이들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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