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이건 모로코 여행기
나에게 인도는 두려운 나라다. 이상하게 인도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도 여행에 대한 의지가 생기기도 전에 나이가 들어버린 탓이다. 차라리 20대 젊은 나이였다면 달랐을까.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는 더더욱 후순위로 밀렸다. 인도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안타까워할지도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안타까움이 내 몫은 아니다.
그런 인도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하며 머물렀던 사람이 나의 모로코 여행 동행자였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스페인과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다. 유럽 여행 코스를 짜며 스페인, 포르투갈을 가는 김에 가까운 모로코에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할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인터넷에서 동행을 구했다. 여자 넷이 모였다. 모두 나보다 6살 어린 동생들이었다. 동행들 가운데는 미대생 친구 두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동양화 전공자로 얼마 전까지 인도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온 친구였다.
우리는 각자 여행하다가 모로코 탕헤르 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나와 한 친구는 바르셀로나에서부터 함께였다. 탕헤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는데, 그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택시가 멈추기도 전에 사람들이 따라붙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서로 매표소를 알려주겠다며 달려들었다. 여행객들을 안내하고 돈을 받으려는 그들의 속셈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손사래를 쳤다. 스페인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하던 차에 미대생 친구들과 조우하며 모든 일행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려 할 때였다. 사람들이 또 달려들어 우리 짐을 굳이 버스에 실어주며 돈을 요구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어쩔 줄 몰라할 때, 인도에서 온 그녀는 그들에게 우리 짐을 다시 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직접 짐을 실을 수 있는데 멋대로 짐을 싣고 돈을 달라고 하냐며 다그쳤다. 그리고는 짐을 다시 뺐다가 직접 버스에 다시 실었다. 그녀를 필두로 우리가 저항하자 버스 기사님도 우리 편이 되어주었다. 삐끼들을 모두 물러나게 하고, 짐을 안전하게 실은 뒤 버스를 출발시켰다.
고작 공항에서 버스터미널을 거쳤을 뿐인데 반나절 만에 혼이 쏙 나가버렸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맛인가 음미하며 버스에서 한숨 돌렸다.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리는 반갑게 대화를 나누었다. 첫날부터 멋지게 한 방 날렸던 그녀는 인도에서는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분명 우리 중 가장 체구가 작은 귀여운 친구였는데, 그렇게 멋지고 당차 보일 수 없었다. 인도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 여행의 리더가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 이후로는 여러 도시를 거치는 동안 이렇다 할 큰 사건 없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모로코 사람들은 동양인에게 친절했다. 마을마다 색다른 매력을 뽐냈고, 모로코 음식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향신료에 취약한 나이기에 아프리카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딱 한 번, 고수가 들어갔던 볶음밥만 제외하면 모든 음식이 환상적이었다. 사하라 사막은 말해 무엇하랴. 뜨거웠고, 고요했고, 아름다웠던 그날의 사막, 새까만 사막의 밤 한가운데 평상에 드러누워 쏟아지는 별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모로코에서의 우리의 마지막 여정은 마라케시였다. 모로코의 수도는 아니지만 그동안 우리가 여행했던 곳들에 비하면 대도시에 가까웠다. 사하라 사막부터 꼬막 하루를 버스로 달려 마라케시에 도착한 그날, 저녁을 먹으며 모로코에서 가장 크게 분노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1인분씩 총 4인분을 시켰는데, 코딱지 만한 양을 가져오면서도 우리가 더 많은 양을 주문했다고 바가지를 씌운 것이었다. 조금 부족한 영어로나마 차근차근 항의하고 있을 때, 점원의 한 마디가 우리의 분노 버튼을 자극했다.
"너희 나라에서는 보통 이 정도 가격 내고 먹잖아."
한국에서 사 먹는 1인분 가격을 대충 알고 그만큼의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려 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라 모로코였다. 바가지를 씌우면서 우리를 오히려 사기꾼으로 몰아가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우리의 리더가 결국 외쳤다. "Call the police!" 우리를 진짜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찰을 부르면 될 일이었다. 고백하자면 사실 다들 감정이 격해질 때 나는 진짜 경찰이 오면 어쩌나 걱정했다. 생전 한국에서도 경험한 적 없는 철창신세를 모로코에서 지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종업원들이 경찰을 부를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녀는 우리가 주문한 양의 음식값을 낸 뒤 우리를 가게 밖으로 끌고 나왔다. 물론 경찰이 출동하는 일은 없었다.
"인도에서도 이런 시비가 붙으면 경찰 부르면 돼. 자기들이 잘못한 걸 아니까 경찰 부르자고 하면 아무 말도 못 해." 아, 이것이 험지에서 구르다 온 사람이 보여주는 기세였다. 그 어떤 상인들의 시비에도 그녀는 주눅 들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다니다 보니 나도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오렌지 주스 트럭에서 가격만 물어보고 사지 않은 나를 향해 주인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뒤돌아 나왔다. 물론 내 심장은 튀어나올 듯이 쿵쾅거렸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주 조금 강해졌다.
인도란 정말 어떤 나라일까. "정말 아프리카나 남미에서는 여기서 살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 근데 그런 생각이 정말 안 들었던 나라가 인도야." 세계 곳곳을 다녀온 나의 오빠의 후기다. 친구 경진이는 인도 여행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주는 재주가 있었는데, 칼을 든 강도를 만나서 맨손으로 칼을 막고 쌍욕을 날리며 도망쳤던 이야기, 앞에 가던 차가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지만 함께 버스에 탄 사람들 중에 놀란 사람은 자신 뿐이었다는 얘기, 시장에서 불건전한 신체 접촉을 당해 손짓 발짓해 가며 항의하니 근처 상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와 그 치한을 두들겨 팼다는 얘기 등을 배꼽 빠지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모로코에서 만난 강인한 그녀. 그 친구를 강하게 만든 인도라는 나라. 정말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지만 결단코 궁금하지 않은 나라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나는 아직도 모로코에서 그 친구가 한 얘기를 잊을 수가 없다. 쉐프샤우엔 시장에서 찌릉내에 내가 힘들어할 때 그녀가 말했다. "언니, 이 정도 냄새도 못 견디면, 인도 여행 절대 못해. 무조건 여기보다 두 배는 더 심하다고 생각하면 돼." 아, 인도란 도대체 어떤 곳인가. 가본 사람마다 내어놓는 엄청난 후기 탓에 인도 여행에 대한 의지가 생겨나다가도 꺾이고는 마는데, 신기한 건 그들 모두 인도를 다녀온 뒤 강해졌다는 것이다. 문득 나도 인도를 가면 더 강해져 돌아올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언젠가 내가 너무 나약해져 있을 때, 모로코에서 만난 그 친구처럼 강해지고 싶을 때, 그때쯤이면 마음을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때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