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에 전기장판이라니요.
언젠가부터 엄마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늘 챙기는 물건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기장판이다. 자고로 여행이란 가볍게 다니는 것이라는 나의 개똥철학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마는 베개 만한 크기의 작은 전기장판을 짐 속에 슬그머니 넣곤 했다.
처음 엄마가 전기장판을 챙기기 시작한 건 내가 퍼스에서 어학연수 중일 때 호주로 날 만나기 위해 왔던 여행 이후부터다. 당시에 엄마를 위해 잡아드린 호텔이 너무 추웠다고 했다. 밤마다 덜덜 떨며 잠을 청해야 했는데, 그게 너무 괴로웠단다. 12월의 호주는 여름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도 '뼈가 시리다'는 기분을 호주에서 처음 느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호되게 떨었던 기억 탓인지, 그 후로 엄마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등이라도 지지겠다며 전기장판을 꼭 챙기기 시작했다.
한 달 일정으로 계획된 유럽 여행에도 엄마는 전기장판을 챙겨 왔다. 일주일에도 서너 번씩 숙소를 옮겨야 할 때도 있었기에 나는 번거롭게 무슨 전기장판이냐며 타박했다. 더군다나 꽃이 피고도 남을 5월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딸의 면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난방도 안 되는 외국에서 등이라도 뜨뜻해야 한다며, 옮기는 숙소마다 전기장판을 펼쳤다. 나는 그런 엄마가 영 못마땅했다.
그해가 유독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의 환절기 날씨는 참 변덕스러웠다. 화창한 날에는 반팔을 꺼내 입다가도 조금이라도 구름이 끼는 날에는 긴팔 외투에 머플러까지 칭칭 감아야 했다. 런던에 도착해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추위에 뽀글이 털점퍼를 하나 구매했다. 그 옷을 걸친 나는 영락없는 북극곰 한 마리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냥 옷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구호물품 같은 것이었다.
런던 여행 중 내가 가장 기대했던 장소는 코츠월드였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들이 모여 있는 곳.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에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그 마을을 직접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껏 들떴다. 사진을 예쁘게 남기겠다며 원피스도 꺼내 입고, 가죽 재킷도 챙겨 입었다.
"춥지 않겠어?"
엄마는 내가 너무 얇게 입은 것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이날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동화 같은 마을에 북극곰이 된 채로 돌아다니는 것은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다만 혹시 추울 것을 대비해 우비와 머플러를 챙겼다.
처음 도착한 마을은 기대만큼 예뻤다. 아주 맑은 날씨가 아니어서 새파란 하늘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을 자체가 예뻤기 때문에 마냥 기분이 좋았다. 작은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사진도 실컷 찍은 뒤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투둑, 투둑, 투두두두둑'
창밖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고개를 들렸다. 하얀 덩어리들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우박이었다. 우산을 챙기긴 했지만 우박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 얄궂은 날씨! 얼마나 기대했던 코츠월드인데!' 여행하는 동안 비와 바람을 심심치 않게 만났지만 이날의 우박은 유난히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버스에서 내릴 땐 우박이 그치긴 했지만, 이미 마음의 여유 따위는 사라져 버린 뒤였다. 우리는 언제 다시 우박이 떨어질지 모른다며 서둘러 사진을 수백 장 찍어댔다.
세 번째 마을로 이동하는 버스에 올라타자 다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 두 개라도 즐겼으니 다행이라며 위로했지만, 스산한 날씨의 코츠월드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그날 엄마는 너무 얇게 입은 나를 걱정했다. 나는 엄마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춥진 않았어."라고 허세를 부렸다. ‘어차피 날씨가 안 좋아 사진도 예쁘게 안 나올 텐데 털옷이나 입고 올걸 그랬나.‘하는 후회는 속으로만 삼켰다.
궂은 날씨에 마을 세 개를 돌고 나니 온몸이 기진맥진했다. 숙소에 도착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뒤, 나는 두더지처럼 엄마의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좁디좁은 싱글침대에 엄마와 꼭 붙어 누웠다. 이불속 엄마의 전기장판이 내뿜는 온기는 하루동안 추위에 떨었던 몸뿐만 아니라 허세로 가득했던 마음까지 녹여내는 듯했다.
"오늘 진짜 추웠다, 그렇지?"
"옷 너무 얇게 입었더라. 이것 봐. 엄마가 전기장판 가져오길 잘했지?"
"응, 너무 좋네."
그날 이후, 나는 엄마의 전기장판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여행에서도 우박을 또 만나고, 비바람도 여러 번 마주했음에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채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건 팔 할이 엄마의 전기장판 덕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여전히 전기장판을 챙긴다. 당신을 위해 수고스럽게 챙기는 물건이지만, 막상 여행지에서는 딸에게, 손주들에게 망설임 없이 내어 놓는다. 무겁게 이런 건 왜 챙겨 왔냐며 면박 주기에 바빴던 모진 딸내미에게도 코딱지 만한 전기장판 반쪽을 기꺼이 내어주던 엄마의 마음은 과연 장판보다 따뜻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