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보 식집사의 이야기
초보 식집사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집을 파릇파릇하게 물들일 꿈 말이다. 원목으로 구성된 가구들에 푸른 잎으로 포인트를 주는 인스타그램에서나 볼 법한 그런 집을 상상했다. 지나가다 본 듯한데, 그런 집을 '자연주의 인테리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래, 우리 집의 콘셉트는 자연주의다! 그렇게 식집사의 꿈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사실 처음부터 꿈이 컸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키우기 쉽다던 선인장마저 죽여버리는 식물계의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물을 너무 자주 줘서 과습으로 죽인 것 같아 물을 안 줬더니 말라죽었다. 중간이 없었던 초보 식집사의 무지함에 얼마나 많은 식물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죄책감에 몸서리치면서도 식물을 키워보겠다는 결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겨울에는 화초를 실내에 들여다 놓기도 하고, 분갈이도 해주고, 인터넷에 검색도 해가며 돌보기 시작했다. 이런 어쭙잖은 노력이 가상하기라도 했던 걸까. 드디어 식물들이 응답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엔 비쩍 마른 스투키들이 있다. 분명 오동통 윤기가 가득한 채로 왔던 아이들인데, 햇빛을 제대로 못 보고 물 관리도 안 되어 점점 말라갔다. 이 거대한 스투키마저 죽이게 된다면 나는 식물을 키울 자격이 없다 생각했다. 원래 남편의 서재에 있던 스투키를 안방 베란다로 옮겨와 직접 관리해 주기 시작했다. 한번 가늘어진 스투키의 살을 찌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야리야리한 상태이지만, 자꾸 새끼를 친다. 몇 개의 화분에 나누어 옮겨 심었는지 모른다. 몇몇 자식들은 친정으로 분양을 보내기도 했다. 아주 느긋하기는 해도 점점 살이 오르는 것이 느껴지고 있다. 식집사의 꿈은 스투키를 살찌우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본격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어버이날에 아이들과 카네이션을 사러 갔다가, 아이들의 성화에 파리지옥 화분 하나를 분양해 왔다. 불행하게도 집에 파리가 없어 파리지옥들은 벌레를 잡아먹지 못했지만, 햇빛과 수분만으로도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그리고 꽃을 피웠다. 직접 꽃을 피워본 사람은 꽃이 피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를 안다. 서정주 시인도 노래하지 않았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고 말이다. 파리지옥의 꽃을 피운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식집사로 거듭난 것 같았다. 일단 집에서 파리지옥을 키우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은데, 나는 꽃까지 피웠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파리지옥 꽃이 선사한 지나친 자신감은 무모함으로 이어졌다. 집에 싸구려 빈 화분이 있었다. 빈 화분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다이소에서 씨앗을 하나 구매했다. 루꼴라 씨앗이었다. 루꼴라를 키워서 요리해 먹는 상상을 하며 씨앗을 심었다. 싹이 튼 것들 가운데 무럭무럭 하나가 자라기 시작했다. 제법 루꼴라 향이 났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뜯어먹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몇 개월이 지나 먹었다는 글이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 기다리다 보니 잎이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렇게 루꼴라는 망해버렸다. 싱싱할 때 따서 먹었어야 했는데, 인터넷에 또 당해버렸다. 시들시들해진 루꼴라를 먹었다가는 나까지 시들시들해질 것 같았다. 먹지도 못하는 루꼴라가 다 무슨 소용이냐 싶은데, 또 키우기 시작한 것을 내가 손수 뿌리를 뽑아 버리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물만 주기 시작했다.
루꼴라는 잎이 쪼그라들어갔지만 끈질겼다. 생명을 이어가는 가운데 점점 키가 커져갔다. 저것이 겨울이라 일조량이 부족해 키만 커가는구나 싶었다. 어디까지 가나 싶어 그냥 지켜보며 물만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루꼴라 꼭대기에 봉오리 같은 것이 몽글몽글 올라와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녀석이 해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꽃을 피우려 꽃대를 세웠다는 것을. 먹지도 못할 것 그냥 버릴까 말까 고민만 하던 식집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새하얗고 청초한 꽃을 피운 것이다.
왜 나는 루꼴라가 먹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버릴 생각부터 했던 것일까. 루꼴라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루꼴라는 나의 오만한 생각을 꾸짖기라도 하는 듯 온 힘을 다해 꽃대를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는 오직 먹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꽃을 피워 알렸다. 나는 아마 평생 초보 식집사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자만해져 갈 때마다 식물들이 가르침을 줄 테니 말이다. 루꼴라 꽃의 찬란함에 식집사는 또 하루 겸손해져 간다. 나의 루꼴라는 결코 망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뜻대로 꽃을 피우고 생명을 이어나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