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는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가장 사랑한다'는 뜻이다. 보통 아이돌그룹 팬들 사이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그룹 멤버 중 가장 애정하는 사람을 '최애'라고 한다. 이 최애에 관해서 재미있는 말이 있는데, '최애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정해준다'라는 말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최애를 내가 골라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덕질을 하다 보면 내 이상형도 아니고 취향도 아닌데 이상하게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경우가 있다. 그 마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 그가 내 최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입덕 멤버(처음 좋아했던 멤버)와 최애 멤버가 달라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애를 최종적으로 점지받기 전, 자신이 그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음을 부정하는 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입덕부정기'라고 한다. 이미 그 사람에게 스며들고 있지만,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불안정한 시기다. 하지만 결말은 늘 한 곳으로 흐른다. 그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 내 마음을 인정하고 나면 입덕부정기는 끝이 나고, 결국 그 사람이 내 최애가 된다.
불행하게도 신이 끝까지 최애를 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 지난해 아이돌 그룹인 '세븐틴'에 빠져 있었는데, 세븐틴은 무려 멤버가 13명이나 된다. 그 많은 멤버들 중 누구랄 것 없이 매력이 넘쳐 도무지 최애를 한 명만 고를 수가 없었다. 이 친구를 보면 이 친구가 좋고, 저 친구를 보면 저 친구가 좋았다. 뭔가 더 눈길이 가는 멤버들이 있긴 했지만 최애라고 하기엔 나의 팬심이 그곳까지 닿지 못한 채로 관심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최애를 점지받는다는 건 본격적으로 덕질이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금메달을 따면서다. 그때 감독이 두산베어스의 김경문 감독이었고, 관심이 갔던 선수가 두산의 고영민과 이종욱 선수였다. 두산베어스 팬이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2009년에는 소소하게 두산을 응원했다. 그러다 2010년 두산에 새 안방마님 양의지 선수가 등장하게 되면서 나는 제대로 덕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덕통사고란 교통사고처럼 예고도 없이 갑자기 덕질이 시작되는 것을 뜻한다. 둥글둥글한 외모에 부드러운 스윙,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면서도 홈런을 스무 개나 쳤던 중고 신인. 그해 신인상을 받을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양의지 선수를 응원하게 되면서 더욱 열심히 응원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사지 않았던 유니폼을 구매했다. 당연히 등에는 25번, 양의지 선수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이었다.
야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다. 그런데 나는 양의지 선수가 좋았다. 포수라는 포지션도 매력적이었다.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만큼 영리하게 경기했다. 부드럽게 쳐서 안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 부드럽게 친 공이 담장을 넘어갈 때는 그렇게 짜릿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양의지 선수가 내 최애가 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영리하게 플레이하는 선수, 타율이 더 높은 선수, 홈런을 더 많이 때려내는 선수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양의지 선수를 가장 응원하게 된 데는 역시 신이 점지해 줬다는 걸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을까.
사실 양의지 선수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지만,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얼마 전 내가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글을 쓴 바 있다. 페이커가 알고리즘에 뜨길래 몇 번 영상을 시청했던 것이 본격적으로 롤이라 불리는 리그오브레전드 게임 경기를 챙겨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페이커가 속한 팀인 T1을 응원했다. 그러니까 페이커 선수는 내 입덕 멤버다.
페이커 선수는 게임 실력뿐 아니라, 커리어, 인성, 영향력 등 많은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나 역시도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응원하고 있다. 그런데 신은 페이커를 나의 최애로 점지해 주지 않으려나 보다. 어느새 다른 선수의 방송을 보고, 영상을 찾아보고 있다. 내가 왜 이러지 싶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선수를 가장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아직은 그 선수가 누군지 확실히 밝히기 싫은 입덕부정기이다. 글을 쓰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하다. 다음 시즌이 진행될 때쯤이면 나의 최애 선수에 대해 밝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려나 모르겠다. 제 최애는 누가 되나요. 신이시여, 시원하게 딱 집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