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응원한다는 것
덕질의 목적은 개인의 행복에 있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을 동반한다. 덕질의 대상이 승승장구하고 잘 되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불행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내 덕질의 대상이 늘 최정상의 자리에 위치하는 환상적인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으면 그해 연말 가요대전에서 누가 상을 받든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내가 한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왕이면 내가 응원하는 가수가 상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챙겨보지 않던 시상식을 기다리고, 투표를 하고, 마음을 졸인다. 팬덤 간의 신경전과 내 가수에게 던져지는 악플들에 괜히 내가 상처를 입는다.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연말 갑자기 나의 알고리즘이 페이커로 떠들썩해지면서 e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첫 시즌이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게임 대회가 열리든지 말든지, 선수들이 욕을 먹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었는데 덕질이 시작되면서 이 어지러운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게임 대회를 시청했다. 그 기분이 마치 처음으로 야구 경기장에 갔을 때 같았다. 야구장에 입장해 게이트를 지나면 거대한 야구장 필드가 펼쳐지고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자리에 앉아 다양한 먹거리와 맥주를 꺼낸다. 그런데 너무 긴장돼 체할 것 같아 막상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는 야구장에 가도 그다지 긴장하지 않는다. 일 년에 치러지는 야구 경기는 많고, 매번 이길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이기면 좋겠지만 언제든지 질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그저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간다. 야구팬으로서 이렇게 승리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반복되는 희로애락에 속이 썩어 문드러져 가면서 얻은 마음의 평화이다. 물론 이 마음의 평화는 포스트시즌으로 가면 갈수록 산산이 깨지게 되지만, 어차피 1등은 한 팀일 뿐, 나머지 9개 팀의 팬은 속이 쓰릴 수밖에 없기에 내년을 기약하자며 마음을 다스린다.
야구에 입문하고 15년 동안 갈고닦은 마음의 평화가 e스포츠로 다시 깨져버렸다. 긴장감이 다시 솟구쳐 오른다. 오랜만에 경기를 보며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했다. 세트가 이기면 기뻐했다가 지면 화가 났다가 슬펐다가 오락가락하는 마음 상태를 오랜만에 경험해 보니 이거 발을 잘못들인 건 아닌가 잠시 후회가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는 행복하려고 덕질을 하는 건데, 발을 들여보니 감정 소모가 대단하다. 이것이 덕질의 부작용인가. 그런데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것, 그게 또 덕질의 맛이다. 가만히 앉아서도 심장 마사지가 되는 느낌. 궁금하다면, 입덕하라. 스포츠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