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작가 소개와 주요 작품 소개
현진건(玄鎭健). 1900~1943. 일제강점기 소설가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 2005년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이 추서(追敍)되었다.
※추서(追敍): 옛 일을 쫓아 기록함. 죽은 뒤에 훈장 등을 수여함.
현진건은 1900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5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증조부부터 할아버지까지 무관 출신으로 구한말에서 대한제국까지 관직을 역임했다. 아버지와 삼촌들 모두 개화파 지식인으로 관직생활을 했다. 그의 형제들도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유학을 마친 후 관직에 올랐다. 그중 셋째 형 현정건(玄鼎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원을 비롯해 여러 방면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3년여를 복역하였고, 출옥 후 후유증으로 반년 만에 사망했다. 형이 사망한 지 41일 만에 형수인 윤덕경(尹德卿)도 독을 마시고 자살했다. 그래서인지 현진건은 일제를 매우 증오했다고 한다. 이육사와 함께 대표적인 문인 출신 항일 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다.
1915년부터 1920년까지 도쿄와 상하이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1921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였다. 같은 해 ‘빈처(貧妻)’로 문단에 등단했고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1927년 조선일보를 퇴사하고 동아일보에 입사하였다. 그러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땄던 당시,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해 버린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년 간 옥살이를 했다. 출옥 후 동아일보를 퇴사하고 양계업을 하면서 역사소설 ‘무영탑’을 저술했다.
일제 말기 현진건의 삶은 매우 불우했다. 당시 일제를 위한 작품을 쓰지 않으면 취직이나 생계를 이어간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음에도 일절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나기 4년 전, 1939년 동아일보사에 복직되어 학예부 부장을 지내면서 장편소설 ‘흑치상지’를 연재했으나, 내용이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는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었고, 끝내 미완성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이 소설은 1932년 세상을 떠난 형 현정건을 추모하기 위한 작품이었는데 일제의 방해로 중단당하자 크게 상심했다고 한다. 평소 그는 과음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후 더욱 심하게 폭음을 하였고 그 덕에 지병이 악화되었다고 한다. 1943년 4월 25일 자택에서 지병인 폐결핵과 장결핵으로 별세했다.
일장기 삭제 사건 등에서 드러나듯 그는 작품 속에서도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일제 지배하 식민지 조선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많다. ‘빈처(貧妻)’, ‘술 권하는 사회’ 등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 모습을 본인을 모델 삼아 묘사한 소설이고, ‘운수 좋은 날’ 등은 도시 하층민들의 삶을 리얼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다. 후기에는 주로 역사장편소설을 썼다. 불국사 석가탑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을 소재로 한 ‘무영탑’과 백제 멸망 이후 백제의 재건을 위해 싸웠던 백제 장수 흑치상지의 이야기를 다룬 ‘흑치상지’ 등이 있다. 장편보다는 단편들이 더 많고, 단편 소설들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사적으로는, 최초의 근대식 문장과 사실주의적인(realism) 표현 기법을 한국문학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작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가난한 무명작가와 순하고 착한 그의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 자전적인 작품이다. 어느 비 오는 봄밤, 책을 뒤적거리는 남편 옆에서 아내가 전당 잡힐 물건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지식에 목말라 중국·일본을 방랑하다 돌아와 보니 아내의 이마에는 어느덧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이제 아무 희망도 가질 수 없을 만큼 막다른 지경에 이르게 되자 아내는 차차 가난을 원망하는 눈치였고, 그런 눈치를 챈 나는 역정을 내었다. 그러나 문득 아내가 가엾게 여겨져 나도 어서 출세하여 호강을 시켜 주고 싶다고 했다. 순간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기뻐하면서 나를 위로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눈시울을 적신다. 1920년대 단편소설의 본격적인 출발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작가의 초기 작으로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제에 타협하거나 부역하지 않으면 제대로 일자리조차 얻기 힘든 식민지 현실에서 절망한 지식인들의 좌절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밤 1시가 넘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결혼한 지 7~8년이 되었지만 같이 있어본 날은 1년도 채 못 되는 아내의 모습이 가엾게 부각된다. 일본 동경에 유학 간 남편이 그리워도 참아야 했다. 남편이 돌아오면 무엇이든 다 될 텐데 그까짓 비단옷이나 금반지가 무슨 문제냐고 자위했던 아내. 그러나 일본에서 돌아온 남편은 날마다 한숨만 쉬고 몸은 자꾸 쇠약해진다. 그것이 요즘에 와서는 더욱 발전하여 밤늦게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새벽 2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하여 돌아온 남편에게 “누가 이렇게 술을 권했는가?”하고 물었을 때 남편은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했다오!”라고 푸념하였다. 이처럼 남편은 ‘조선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했으나, 아내는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남편을 원망하며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라고 할 뿐이었다. 남편은 “아아, 답답해!”를 연발하며 붙드는 소매를 뿌리치고 또다시 밖으로 나간다. 아내는 멀어져 가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에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라며 절망을 되씹는다.
✔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운수 좋은 날' 줄거리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