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운수 좋은 날' 줄거리
1920년대, 1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반면, 열강들과 자본에 의한 수탈과 착취 또한 혹독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때였다. 김첨지는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심장 경성에서 인력거꾼으로 일해 먹고 살고 있었다. 평생 글 한 줄 읽어 본 적도 없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최하층 도시 노동자에게 첨지란 벼슬이 웬 말인가? 그저 나이만 먹을 대로 먹은 보잘것없는 남정네에 대한 웃픈 호칭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꽤나 나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가는 늦게 들어 하나 있는 아들 개똥이는 아직 젖도 못 뗀 어린 아기다. 아내의 몸 상태도 심상치 않다. 아파 누운 지 한 달이 넘도록 계속 기침만 쿨룩대면서 몸도 제대로 옆으로 돌리지 못할 정도다. 게다가 열흘 전, 벌이가 없어 한동안 굶다가 오랜만에 돈을 벌어 조를 사다 주었다. 그런데 아내는 허겁지겁 조밥을 해 먹고 체했는지 눈을 뒤집고 경련을 일으켰다. 속상하고 다급한 마음에 화가 치민 김첨지가 환자의 뺨을 후려갈기자 다행히 제정신으로 돌아는 왔다. 하지만 가난과 질병이 가져온 그 슬픔과 비참함은, 앓고 있는 환자에게나 맘 편히 의사에게 보이지도 못하는 김첨지에게나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어쨌든 당장의 문제는 재수가 옴 붙은 탓인지 근 열흘 동안 한 푼도 벌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마침 진눈깨비 날리는 추운 날씨라 오늘은 인력거 탈 사람이 있을까 싶어 일을 나서는데, 아내는 오늘따라 안 좋은 예감이 드는지 집에 있어 달라고 애걸했다. 김첨지는 한 푼이라도 벌어볼 요량에다 왠지 모를 불안도 떨칠 겸 무시하고 일을 나섰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시작부터 손님이 이어져 오전에 벌써 80 전이나 벌었다. 아내가 사흘 전부터 그렇게 먹고 싶다던 설렁탕도 사줄 수 있고, 어미젖이 나오지 않아 굶다시피 하고 있는 아들 개똥이에게 죽도 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한 손님이 다급하게 남대문 정거장까지 가자고 하였다. 하지만 김첨지는 갑자기 주저했다. 날씨도 안 좋은 데다 먼 거리고, 갔다가 빈 차로 올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오늘은 나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런 날 이렇게 운이 좋다니!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생각과 아내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에 갈등하던 김첨지는, 아니면 그만이란 심정으로 배포 있게 1원 50전이라는 큰돈을 불렀다. 손님은 어지간히 급했던지 그 가격에 합의했다. 갑자기 큰돈을 벌게 되어 횡재했다는 기쁨에 아내에 대한 걱정도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신나게 달리다가 집 근처를 지나게 되자 다시 아내 생각에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라도 김첨지는 더욱더 열심히 다리를 놀렸다.
정거장에 손님을 내려주고 나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달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인 데다 빈 차로 돌아갈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김첨지는 오늘의 운을 믿고 정거장 구역 인력거꾼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레 호객을 했다. 신여성처럼 보이는 젊은 아가씨에게 무안하게 거절당하기는 했으나, 다행히 집 근처까지 손님 하나를 태우고 올 수 있게 되었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더욱 미친 듯이 달렸다. 그래야 환자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날이 저물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자, 오히려 초조함은 사라지고 이미 늦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끔찍한 불행이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의 희한하게 좋은 운수는 그 불운의 암시 같기도 했다.
어차피 그럴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오래 오늘의 기적 같은 벌이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이때 마침 선술집에서 나오는 친구 치삼이를 만났다. 치삼이의 외양은 김첨지와는 정반대로 뚱뚱했고 혈색이 붉고 수염도 가득했다. 김첨지는 구원자를 만난 듯 반기며 호기롭게 술을 사겠다고 나섰다. 빈대떡에 추어탕에 막걸리까지 넉 잔씩 마시고 나자 술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미 취한 김첨지가 더 마시려고 하자 주머니 사정을 알고 있던 치삼이가 말렸다. 그러자 김첨지는 화를 내며 돈을 꺼내 던졌다. 치삼이 얼른 주워주었지만, 그 돈을 받은 김첨지는 가난에 맺힌 울분이라도 풀려는 듯 돈에게 욕을 하며 다시 패대기를 쳤다. 그렇게 주정을 부리며 술을 마시던 김첨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삼에게 자기 아내는 이미 죽었을 거라며, 그런 마당에 술이나 마시고 있는 자신은 죽일 놈이라며 욕을 하는 것이었다. 술이 취하자 마음속의 불안감과 죄책감이 올라온 것이었다. 걱정하는 치삼이를 농담이었다고 안심시키고 김첨지는 술에 취한 채 집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아내에게 줄 설렁탕 한 그릇은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집 대문에 들어서자 환자의 기침소리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죽음과도 같은 적막 속에 개똥이의 빈 젖 빠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불길한 침묵을 떨치려는 듯 욕을 해대며 방문을 열고 누운 아내의 다리를 세게 찼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미 죽은 뒤였다. 김첨지는 회한과 비탄 속에 울음을 터트리며 아내를 부둥켜안았다.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