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팩 더블 13)

Original

by Kalsavina

13. 박영민




유수연의 동생 유진기는 누나를 닮아 꽤 잘생긴 녀석이었다. 처음에는 친남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복 남매였다.

세복이 대신 녀석을 데리러 학교에 간 건 고작 서너 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녀석의 친구들은 나보다는 내가 탄 바이크를 보고 더 감탄하는 눈치였다. 반면 세복이와 함께 갔을 때 녀석들은 오복이(세복의 바이크)보다는 세복이 녀석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너네 누나 대단하다. 남자친구가 둘씩이나 있는 거야?”

“너도 알잖아. 얘네 누나 진짜 예쁜 거. 그래서 남자친구가 둘이나 있는 거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양다리는 걸치면 안 된다고 했어.”

제멋대로 떠드는 녀석들의 대화에 내가 웃음을 참는 동안, 진기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세복의 뒷자리에 올라타곤 했다.

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왜 세복이가 유수연 남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지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세복이는 이들 남매가 주는 일상의 평온으로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다. 적어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을 테지. 고아로 자랐고, 친척들로부터 외면당했고, 나를 제외하면 마음을 터놓을 사람 하나 없는 녀석의 빌어먹을 현실을.

“네 차례야.”‘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큐를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세복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당구대 너머로부터 ‘웬일이냐?’는 질문을 눈짓으로 보내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따라 내가 치는 공은 번번이 빗나갔다. 반대로 세복이는 ‘당구의 신’이라는 별명답게 절정의 기량을 뽐내는 중이었다.

“다음에 할까? 별로 컨디션 안 좋아 보이네.”

“아니야.”

사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강태석 때문이었다.

삼촌의 몇몇 카지노 거래 내역이 담긴 USB가 강태석의 손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삼촌도, 상덕아재도 그 USB는 포기하라고 했다. 어차피 내역만 가지고는 강태석이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면서.

내 생각은 달랐다. 그 USB의 내부 정보가 강태석에 의해 경찰이나 검찰 쪽으로 유출되는 거야 막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USB는 되찾아야 했다. USB안에는 세복의 할아버지인 함칠성이 죽은 아버지와 삼촌 형제에게 남긴 유산이 있다.

그게 바로 엄마가 나를 세복이와 결혼시키려는 이유였다.

-그래, 좀 더 솔직히 말하자. 세복이 외할아버지는, 일찌감치 널 자기 손녀사위로 점찍어 놓으셨나 보더라. 네 아버지 형제가 자기 가문에 충실했으니까, 세복이 지참금으로 주는 거라면서 죽은 네 아버지께 뭘 맡겼다고 했어. 네 아버지가 그걸 네 삼촌에게 넘겼고. 혹시 네 삼촌이 아무 말 안 하디?

그게 바로 문제의 USB였던 것이다. 그깟 카지노 거래 내역 따위는 껍데기 중의 껍데기에 불과한 삼류기밀이었고.

대체 어떻게 해야 강태석을 옴죽달싹 못하게 할 수 있을까.

머리를 식히려고 모처럼 세복이와 온 당구장이건만, 생각보다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차라리 피씨 방을 가서 롤(리그 오브 레전드)이라도 했어야 했나. 세복이는 롤을 할 줄은 알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게임을 포기하고 마시다 만 필스너우르켈 병을 집어들었을 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우리 조직원 중 하나가 들어왔다. 곧장 내게 다가온 그는 낮은 귀엣말로 강태석의 출현을 알렸다. 나는 일단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필스너우르켈 병을 싹 비웠다. 그와 동시에 세복이가 큐를 내던졌다 .

“시시해. 나 갈래. ”

“오늘은 수연이 안 만나?”

돌아서던 세복이가 슬쩍 나를 되돌아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쏘아보는 표정이 못마땅해 보였다. 일부러 나를 위해 자리를 비키려는 거였다.

“저기, 우리 엄마가 오늘 너 좀 데리고 오라는데. 같이 갈래?”

“어머니가 왜?”

“너 어디 가서 밥이나 제대로 먹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고. 몸보신 좀 시켜야겠다는데? 너 좋아하는 해물 순두부찌개 끓여주신댔어.”

“어머니가 부르시면 가야지.”

그 말만 남기고 세복이는 당구장을 나갔다. 잠시 후, 강태석이 들어왔을 때 내 머릿속에 그가 세복이와 마주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언뜻 머릿속을 스쳤다. 강태석이 세복이의 존재를 알게 되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그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정확하게 뱀의 눈과 혀를 가진 그는 입가에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눈꼬리가 길고 눈매가 가늘어서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누가 봐도 요령이 좋은 꾀보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잔인하기까지 했다. 체격은 평균 정도였지만 빠짝 말라서인지 실제보다 왜소해 보였다.

“제가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최대한 그를 정중하게 대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인사했다.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쳐 보였다.

“벨소리를. 나이가 어려도 엄연히 중해방 오야봉인데, 죄송은 무슨 죄송? ”

처음부터 그를 이리로 부를 작정은 아니었다. 며칠 시간을 두고 적당한 때와 장소를 물색중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건 아마 상대가 방심한 때를 노린 것이 분명했다.

“당구 한 게임 하시겠어요?”

“하이고 내사 마 이제는 나이가 있어갖꼬. ”

뭔가 용건이 있음은 분명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뜻 말을 꺼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쪽에서 먼저 내 용건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 어느 쪽이든,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하는 쪽이 지고 들어가는 자리였다. 마침내 강태석은 낡은 패딩 잠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사진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사진을 본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눈썹이 덮이는 앞머리에 구불구불한 파마머리를 하고, 무척이나 청순한 얼굴에 화장을 잔뜩 칠한 얼굴을 슬쩍 옆으로 돌려 카메라를 보는 사진이었다. 누가 봐도 노래방 도우미라고 볼 법한 사진 속의 얼굴은 꽤나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 속의 그 여자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예쁘네요.”

“그 가시나 좀 찾아돌라고 왔지 내가. 그 가시나만 찾아주면, 내 오야봉이 원하는 거 하나는 확실히 들어 줄라고.”

그는 하얀 이를 슬그머니 드러내 보이며 씨익 웃었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어떤 여자라도, 이런 자와는 함께 하거나 침대에 눕고 싶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누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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