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팩 더블 32)

Original

by Kalsavina

32. 함세복




엉망진창이 된 몸을 수습하는 데는 깨끗한 속옷과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을 추스르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나로서도 모를 일이었다.

오복이를 타고 나는 신갈로 향하는 가장 빠른 국도를 탄 후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렇게 내가 침착해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수연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내 신경은 잘 벼린 사시미칼처럼 바짝 날이 선 상태였다.

늘 하던 대로 스피드에 몸을 맡긴 후, 나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 전 내게 일어난 일들을 싸그리 머릿속에서 지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영민이 녀석으로부터 수연이 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 무슨 대가든 치러야 할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하지만, 녀석이 내게 요구한 것은 너무나도 하찮고 형편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쉽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낼 줄은 정말 몰랐다.

치졸한 자식.

많은 얘기를 들어왔고, 각오는 되어 있었다. 단지 상대가 영민이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번은 겪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까 냉정해져야 했다.

사실, 그 일 자체에 대해서는 냉정할 수 있었다. 이미 수연에게 모든 걸 빼앗긴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사랑해.

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런 말 따위 하지 않고도 녀석이 나를 가질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둔 것이다. 지금까지 잘 지켜줬던 것이다.

그날 아침, 집을 나설 때 분명히 잠가두었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영민이가 새벽에 들어왔다가 나갔다는 걸 알았다. 뭔가는, 못 보일 꼴을 보였고 그게 녀석을 자극했을 거라는 것도 짐작이 간다.

이렇게 모든 게 다 꼬여버린 지금에 와서, 그 모든 걸 하나하나 되짚어본들 무슨 소용인가. 내게 분명한 사실은 단 한 가지였다.

박영민은, 그 개자식은 더 이상 나 함세복의 친구가 아니다.

이제 그는 내게 있어 그 무엇도 아니다.

그가 이제까지 나와 보낸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 보낼 시간들을 모두 내 인생에서 없애버릴 터였다.

그가 내게 한 짓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가 내게 강태석의 존재를 숨기지만 않았어도, 수연이 그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숨기고 수연을 빼돌리지만 않았어도 여전히 그는 내게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남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몸을 빼앗겼다 해도.....

더 이상 박영민과 뭔가를 함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유수연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내가 잃어서는 안될 모든 사람을 잃었다. 오로지 수연에게는 나만이, 그리고 내게는 수연만이 잃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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