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팩 더블 31)

Original

by Kalsavina

31. 유수연




악몽을 꾸었다.

뭐가 뭔지 분명하지 않은, 몹시 습기로 가득찬 사우나에서 벌어지는 듯한 질척거리는 꿈이었다. 주위는 잿빛이었고, 어딘가에서 세복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꿈 속에서, 차마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그애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온몸을 적신 물과도 같은 땀 한가운데 누워 있던 나는, 얼마만에 되찾았는지 모를 맑은 정신으로 눈을 떴다.

제정신이 아니었다가 제정신을 찾은 사람마냥, 그 동안 내가 뭘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머릿속을 찔렀다. 내가 바보였다. 멍청하게, 박영민의 말만 믿고 이렇게 세복이를 떠났었다니. 내가 대체 뭘 두려워했단 말인가.

나는 강태석을 알고 있다.

새삼스럽게 강태석에게 끌려갈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설령 그 자의 발걸음이 바로 내 코 앞에 와 있다고 해도, 그 자가 새삼스럽게 내게 가할 수 있는 위해는 죽음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죽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강태석이 노리는 게 세복이가 아니라 나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강태석에게 순순히 끌려가는 게 오히려 세복이가 안전해지는 길이다. 그러나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세복이를 다시 만나야 했다.

만나서 사랑한다고, 휴대폰 문자도 음성녹음도 아닌 내 입으로 직접 그 애의 귀에 대고 그애의 눈을 보며 사랑한다고 말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휴대폰을 켜고 세복이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예상했던 대로, 세복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고 음성 사서함을 남겨달라는 귀에 익은 멘트가 들려왔다. 음성 따위는 남기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새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세복이를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세복아. 나야. 말없이 도망가서 미안해. 나, 지금 너한테 갈 거야. 많이 보고 싶어. 꼭 할 말이 있어. 기다려 줘.”

녹음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확인하지 않고 휴대폰을 끈 나는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가방 안에 있던, 박영민이 준 총을 꺼내 가슴에 품었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정도로 작은 소형 권총이라 충분히 브래지어 속에 숨기는 게 가능했다. 왼쪽 브라캡 안쪽에 덧댄 패드를 빼고 대신 권총을 넣었다.

밖으로 뛰쳐나온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햇살에 온 몸을 찔렸다. 똑바로 걷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술주정뱅이처럼 비틀거려야 했다.

발 밑에서 거대한 씽크홀이 나를 집어삼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오래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않은 탓에 몸이 심하게 쇠약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몸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는 것처럼 어지러워 결국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기증이 완전히 가라앉았을 때, 저만치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강태석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는 나를 향해 천천히, 아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왜소한 남자 하나가, 온 몸에 피를 덕지덕지 묻힌 채로 강태석을 쫓아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름아닌 나를 감시하던 박영민의 끄나풀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묻지 않아도 너무나 뻔했다.

박영민의 끄나풀은 힘겹게 이어오던 걸음을 멈추더니, 결국 바닥에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강태석만이 여전히 느긋하게 여유롭게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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