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30. 박영민
결국, 세복이에게 수연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나는 철저하게 어리석었고, 또 어리석어야만 했다.
세복이의 몸 안에서 나는 빠르게 불타올랐고, 끝까지 갔다고 느낀 순간의 황홀감을 기점으로 빠르게 싸늘해져 갔다. 그 순간만큼은 결코 내가 후회할 짓을 하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을 만큼 경이로운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무아지경이라는 표현이 왜 생겨났는지를 그때서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순간 나는 철저하게 나 자신을 잃었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온 내가 허망하게 몸을 일으켰을 때, 풀어진 브래지어 사이로 드러난 가슴을 여미지도 않고 창백하게 질린 세복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사랑해.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강간이라는 형태로 모든 게 이루어졌을지언정,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말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를 알면서도, 내가 무엇을 잃어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나는 결국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한 말은 물론 아니다.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모든 게 끝난 후, 무섭도록 차가워지고 침착해진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울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패배한 쪽은 나였다. 수연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녀석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녀석이 힘겹게 몸을 일으킨 자리에 피가 잔뜩 고였다. 그 새빨간 선혈은 생리혈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이 아니었지만, 녀석에게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흘린 피라는 걸 나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옷을 여며입는 녀석의 손끝이 약하게 떨렸다.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하려던 찰나에 녀석은 별안간 손을 들어 있는 힘껏 내 따귀를 때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녀석이 옷을 여미고 창고를 나간 후, 이걸로 모든 게 끝이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20년을 넘게 쌓아온,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정이 끝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녀석과 함께 즐거웠던 지난날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말 그대로, 오래된 흑백영화의 한 장면같은 추억들이이었다.
둘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시골길을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다. 함께 반도체 공장에서 부품 조립을 했다. 함께 술을 마시고 당구를 쳤다. 함께 피씨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밤을 새웠다. 함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어깨동무를 하고 밤길을 걸었다. 녀석은 노래 부르기를 싫어해서, 노래방에 가기만 하면 음치인 내게 노래를 시키고 깔깔대며 웃어댔었다.
나는 남자 너는 여자라는 사실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로, 함께했던 그 모든 것들이 세복이와 내가 함께 나눈 인생이고 우정이었다. 내 혈육보다 내게 더 가까웠던,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었을 그 존재를 나는 그렇게 허무하게 잃고 말았다.
혼자가 되어 버린 그 자리에서 흐느끼며 울음을 터뜨린 건, 결단코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복이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