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33. 유수연
아마도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강태석에게 팔을 붙들려, 그의 차가 있는 곳으로 허무하게 끌려가는 동안, 저만치서 눈에 익은 그리운 오토바이가 보였던 건 아마도 내 착각이었을 것이다. 차를 타기 전에 벌써 의식은 희미해져 가고 있었고, 차를 탄 이후의 일은 기억에 없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아무것도 없는 골방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
양쪽 발의 뒤꿈치 쪽이 따끔거리면서 아팠다. 양쪽 발이 심하게 부은 것이 느껴졌지다. 하지만 늘 장시간 동안 서서 일하느라 발이 붓는 데는 이골이 났던 나는 그걸 이상하게 여길 겨를이 없었다.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 온 몸이 나른하고 쑤셨지만, 이대로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손등에 꽂힌 링거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꿈에서라도 다시 볼까 두려웠던 그 얼굴의 주인공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강태석.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자신에게 되돌아오리라고 호언장담했던, 악마.
그 악마는 의아하다 못해 미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답지 않게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 애기, 어디서 무슨 고생을 하다 이제 왔노. 꼴이 이게 뭐꼬.”
귀에 익숙한 그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가만 있어 봐라. 의사가 그러는데, 네가 워낙 안 먹어서 영양실조가 왔다카데. 그래서 포도당하고, 뭐 기운 차리는 링거 좀 놔 준다카길래 그러라고 했다마. 우리 애기, 얼른 기운 차려서 나아야제.”
나는 상체를 가만히 이리저리 움직이며, 브래지어 속에 숨겨둔 권총이 무사한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권총의 촉감이 느껴졌다. 그가 아직 내 몸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는 않았던 것이다. 추측컨대, 나의 갑작스러운 실신에 강태석 또한 당황했던 게 분명했다. 세복이와 헤어지고 나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게 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내가 쓰러진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의사가 진찰을 하면서 가슴을 만졌다면 권총을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모른 척했다는 사실만이 이상했다.
아, 그렇구나.
강태석이 의사에게 내 가슴을 만지게 그냥 뒀을 리가 없다. 아무리 진찰을 위해서라고 해도, 순순히 내 옷을 끌어올려 가슴에 청진기를 대도록 놔뒀을 리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헛웃음이 났다. 대체 내가 실신했던 동안 일어났던 일을 되짚어본다 한들,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권총만이, 지금의 내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려왔음을 깨달았다. 골방 위에 난 조그만 창문으로 파릇파릇한 봄날의 새잎사귀가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보였지만, 신갈이나 오산에서 들리던 생활소음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섭도록 적막한 고요만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강태석은 프랜차이즈 식당의 로고가 찍힌 쇼핑백에서 포장된 죽을 꺼내더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종이그릇에 죽을 옮겨 담았다. 그리고는 숟갈로 죽을 떠서 내게 내밀었다.
“먹어. 우리 애기, 볼살이 너무 빠졌고만. 미워졌어. 내가 데리고 있을 때는 얼마나 이뻤는데. 먹고 다시 살쪄서 오동통해져야지.”
변하지 않았다. 담뱃불로 몸을 지지고 난 날이면, 기름진 통닭이나 피자 같은 것을 가져와서 내밀고는 토할 때까지 먹을 것을 강요하던 그 버릇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다만 메뉴가 죽으로 바뀌었을 뿐.
그리고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나는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먹을게요.”
“내가 먹여주꾸마. 입 벌려 봐.”
온몸에서 소름이 비늘처럼 돋아났다. 죽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나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 숟가락이 내 입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먹고, 기운을 차려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강태석을 죽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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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우리 애기 착하네. 이렇게 말 잘 들을 거면서 왜 도망갔노. 이 오빠 슬퍼하구로, 응?”
내가 내리깐 눈을 들지 않자 그는 여전히 다정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듣는가 싶다가도 안 듣는 조 버릇 봐라. 여전하네. 이 오빠 똑바로 좀 보그래이. 내가 다른 말은 몰라도, 이 말은 니한테 꼭 해주고 싶다 아이가.”
나는 눈을 들어 강태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기름기 번들거리는 뱀눈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반쯤 벌어진 입에서 역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사랑한다.”
구역질이 났다. 먹은 죽이 다 올라올 것 같아 억지로 숨을 삼켰다. 권총을 숨긴 가슴으로 손이 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이 사랑하는 오빠를 두고, 우리 이쁜 애기가 도망을 쳐서, 이 오빠가 상심해서 죽을 뻔했다 아이가. 그래서, 내가 우리 애기한테 이제 가르쳐 줄라고. 한번만 더 이 오빠한테서 도망치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저만치 물러난 그는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몇 개의 담배꽁초가 나뒹구는 짝퉁 크리스탈 재떨이에 담뱃재를 떨구는 그를 보며, 지금이야말로 그를 죽일 적절한 타이밍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품에 숨긴 권총을 꺼냈다.
권총을 꺼내 겨누는 나를 보고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며, 지그시 눈으로만 웃어 보였을 뿐이다.
그의 턱수염이 군데군데 희게 돋아 있는 것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 상황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