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Original편 완결
39. 함세복
그 악마가 죽었다고, 이제 나는 자유라고, 몇 번이나 외치며 수연은 미친 사람마냥 깔깔대며 웃었다.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지경으로 웃어대면서도 수연은 몇 번이나 읊조렸다.
그가 죽었어, 그 개자식이 죽었어. 믿을 수 없어. 내가 꿈을 꾸나 봐.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도대체 하루 만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단 말인가.
어젯밤, 내 아지트의 창고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영민이 녀석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내게 수연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려 도착한 신갈에서 끌려가는 수연을 포착했을 때는 이미 환한 아침을 지나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각이었다.
오후 내내 강태석과 수연을 찾아 발안과 남양 일대를 헤매다녔다. 마지막에 초저녁이 되어 수연을 찾아냈고, 영민이 녀석의 권총으로 강태석을 죽였다.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해내기 벅찬 상황을 다 감당해 내고도,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어쩌면 이렇게 미친 듯이 깔깔대며 웃는 수연이야말로 지극히 정상인 건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나의 내부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던 어떤 것이 붕괴되었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렸고, 그 상실감과 허탈함이 나를 송두리째 점령했다.
이게 모두 유수연이라는 내 또래의 한 여자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내 눈앞에 있는 그애가, 아니 그녀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강태석의 피를 얼굴에 맞아 피범벅이 된 얼굴로 그애는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나 고막이 나갔나 봐. 네 목소리, 멀리서 들려.”
그 순간, 내 인생을 이렇게 처참한 방향으로 끌고 와 버린 유수연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의 증오가 가슴 속에서 샘솟았다.
수연이 내게 한 말은, 영민이가 내게 한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기를 원했던 적이 없다. 두 사람 중 어느 쪽으로부터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내게는 의미없는 말이었다. 사랑이든 뭐든, 타인으로부터 뭔가를 바라거나 애타게 갈구했던 기억은 없으니까.
내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 모든 추억이 나를 떠났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남지 않았다.
단 하나, 내가 잃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존재만이 잔인하게도 내게 매달린 채, 처음 만났을 때 내 넋을 놓게 한 그 까만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트럭을 피하려다 넘어진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고도, 내게 미안해하며 쩔쩔매던 그애의 미소띤 얼굴이 자꾸 내가 생각했던 내 엄마, 나를 버린 엄마의 얼굴과 겹쳐져 보이는 기이한 현상을 누구에게 설명해야 했단 말인가.
수연의 체온으로 따뜻해진 몸이 잠을 청하는 동안, 내가 느낀 그 안온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마치 엄마 품에서 잠든 갓난아기가 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는 걸, 누구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애가 세상을 버리려는 징후를 그 눈으로, 입술로, 손으로, 바람에 흩어지는 머리카락으로 간간히 드러내 보일 때 그애를 때려서라도 그애가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놓고 싶었던 그 충동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할 수 있었을까.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는 게 이렇게 잔혹한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다만 수연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가면 그애가 또 다시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이 나의 어설픈 고백을 막았다.
어느 순간, 주위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달이 떴다. 약간 야위어든 반달이었다.
낮게 가라앉은, 지친 목소리로 수연이 속삭였다.
“내가 죽인 거야.”
그애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섬뜩한 울림으로 들려왔다. 이미 죽어서, 유령으로 변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내 말 들려?”
“그만해.”
“내가 죽였어. 네가 죽인 게 아니야. 먼저 그를 쏜 건 나야. 거짓말이 아니야. 먼저 안전장치를 푼 거, 그거 나였다고.”
“그만해!”
“그만할 수 없어!”
수연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려퍼졌다. 더 이상 그 까만 눈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날 밤 서로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눈빛을 보여야만 했던 그 순간을 깊이 후회했다. 그날 내가 본 수연의 눈빛을, 내가 확인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눈빛은 영원히 나를 가둬 묶어놓고 풀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절망 속에서 똑똑히 깨달아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죽였어. 내가 죽인 거라고. 제발 말해 줘. 응? 네가 아니라고. 내가 죽인 거라고 말해. 제발......”
수연이 내 어깨를 잡고 흔들며 울부짖었다. 결국 나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그애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는 그 대답을 들려 주었다.
“그래, 네가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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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겼어야 했다. 그래서 서로의 눈빛을 확인하지 말았어야 했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 말았어야 했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입술을 포개며 가슴이 찢기는 고통으로 몸을 떨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야위어든 반달과, 어슴푸레한 가로등, 그리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폐성당이 우리를 깊고 평온한 어둠 속에 잠기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쩌면 바로 그게 신의 저주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