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발톱 5/5

완결

by Kalsavina

그 순간 그녀가 고통으로 한껏 찡그려 감았던 눈을 뜨고 내 눈을 쳐다보았어. 나 역시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지. 조금이라도 그녀가 애원하는 기색을 보이면, 여기서 멈춰 달라고 애원하는 기색을 보이면 나는 지체없이 그만둘 생각이었어. 그러나 그녀의 도전의지는 여전했고, 나를 도발하는 그 눈빛도 여전했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게 뭔지 알아? 그녀의 눈동자에서 나에 대한 여자로서의 연정이나 최소한의 호의 따위를 눈곱만큼도 찾아낼 수 없었던 거야. 당연히 유혹도 있을 수 없었지. 오로지 굽힐 줄 모르는 빛나는 영혼만이 있었어. 나를 남자가 아닌 그저 꺾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그 영혼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그녀가 그저 내 힘을 버티고만 있을 뿐 그 이상의 힘을 주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어. 사실 여자가 힘으로 남자를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나는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눌러 꺾으면 되는 거였어. 그거야 처음부터 아주 쉬운 거였지. 힘에 관한 한 마이어는 내 적수가 못 되지. 아무렴, 여자잖아.

하지만 마이어가 그걸 몰랐겠어? 그녀는 알고도 남았어. 힘으로는 남자인 나를 못 이긴다는 사실을. 나는, 마이어가 내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으며 그런 내게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내게 팔씨름을 신청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어. 그 순간의 절망감이라는 건 도무지 이기지 못할 만큼 크고 깊었어.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이겨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나는 알았어. 그래서 손을 빼지도 못한 채 그냥 소리친 거야.

“그만하자! 우리, 비긴 걸로 하자.”

놀란 마이어가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틈을 타 나는 그녀의 손에서 내 손을 재빨리 잡아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어. 어쩌면 그녀가 항의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급히 한 마디를 덧붙였어.

“아니, 그냥 네가 이긴 걸로 해. ”

“그런 법이 어딨어?”

마이어의 뒤에 있던 누군가가 그녀를 대신해 그렇게 항의했지만 그건 아무 소용도 없었어. 아마도 마이어는 그 순간 내 마음을 전부는 몰랐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려 했던 것 같아. 그녀는 순순히 탁자에서 팔꿈치를 떼고 방금 전까지 내 손을 쥐었던 자신의 손을 들어 어설프게 손목을 몇 번 돌렸어. 그걸 보고 있자니 그녀의 손목을 거머쥐고 탁자에 완전히 눌러 짓이겨 으깨고픈 충동이 일었어. 그러나 그건 안 될 말이었지. 나는 돌아서서 천천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어.

어글리 덕스의 문 턱에서부터 시작해서, 걸어서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울었어. 현관문의 도어를 잡고는 내 평생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을 만큼 서럽게 흐느껴 울었지.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 그때는 그렇게 절망스럽고 서러운 느낌이 들었거든. 사실 지금도 그 절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 그리고 이건 내가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여자친구가 생긴 지금도, 나는 마이어를 사랑해.




찬웅의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그와 내가 앉아 있는 탁자 바로 뒤에서 찬웅을 등지고 앉은 한 여성의 존재를 깨닫고 그녀를 잠시 주시했다. 찬웅이 수쓰엔의 생일 파티 이후 마이어를 어글리 덕스 클럽에서 다시 만난 부분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내게 등을 보이고 앉은 그녀가 등이 푹 파인 옷을 입었다는 것과 둘둘 말아올린 머리에 젓가락 비녀를 꽂았다는 것과 마침 다가오는 웨이트리스를 향해 들어보인 왼손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왼손잡이였다는 마이어. 섹스 대신 팔씨름을 즐겼던 그녀.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어렵잖게 알아차렸지만 차마 찬웅에게 그녀의 존재를 알릴 수 없었다. 물론, 그녀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은 찬웅은 등에 눈이 달려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존재를 몰랐다. 잠시잠깐 고개만 돌렸어도 알아차릴 수 있었으련만.....

나는 한꺼번에 두 가지를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하는 스타일이었으므로, 일단은 찬웅의 얘기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그의 얘기가 끝난 후에도 다행히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두 손을 깍지껴 탁자에 괸 자세로 찬웅의 얘기를 놓치지 않고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후로 마이어는 못 만났어?”

찬웅은 쓸쓸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시 만나고 싶지만,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얘기,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는 게 더 우습지 않아? 적어도 소설가의 관점에서라면 말이야.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시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할 기회가 찾아올 것 같지는 않은데, 적어도 마이어에게 내 진심을 분명하게 알리기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거야. 아니야. 그건 더 나빴을 거야. 그래, 직감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어.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내 안에서 진행중인 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그녀가 몰랐던 게 다행이야.”

찬웅은 얘기가 다 끝났다는 뜻으로 어깨를 추슬러 보이고는 눈 앞의 위스키를 마셨다. 좀처럼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찬웅의 짧고도 열정적인 사랑의 에피소드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아주 오래 된 노래였는데, 정확한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몇 소절만 머릿속에서 되풀이될 뿐이었다.

찬웅의 대답이 비로소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그 노래의 가사를 정확히 떠올리게끔 해 주었다. 나는 햇살 따스한 봄날의 창밖을 바라보며 그 노래를 나직하게 읊조렸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 뿐이래요~

겉으로는 흥~

흥~

모르는 척 했더래요.

모르는 척 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간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도 갑돌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흥~

흥~

모르는 척 했더래요.

모르는 척 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간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도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흥~

흥~

고까짓 것 했더래요.

고까짓 것 했더래요.



“만약에 말이야. 정말 만약, 마이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떡할 거야?”

찬웅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럴 리 없어. 그게 말이 돼?”

“대답이나 해 봐. 그녀가 이 자리에 있다면, 그리고 이 자리에서 너의 얘기를 끝까지 다 들었다면, 어떻게 할 거냐구.”

“생각하고 싶지 않아.”

머리를 감싸쥐며 그가 대답했다.

그의 대답이 끝나자 돌아앉았던 그녀가 자리에서 사뿐히 일어나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와 마주한 방향으로 앉은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찬웅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수행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깨달았다. 마이어가 이대로 가 버린다면, 찬웅은 또다시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찬웅, 뒤를 돌아봐.”

“뭐?”

“아무 말 말고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라구.”

찬웅은 내 말에 짜증을 내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고, 마이어를 확인했다. 그 순간 그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는 그제서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아름다운 마이어의 미소에 황홀해했다.

그러나 그 황홀함을 오래 즐길 겨를도 없이, 나는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들 두 사람의 사이에서 난감한 구경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내 임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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