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공간에 대한 증오

by Kalsavina

지연의 외사촌동생 조찬은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남자였다.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되도록 항상 주위에 일정한 너비의 텅 빈 공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물건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놓여 있는 것만큼 그를 화나게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외사촌누나인 지연이 흥분해서 전화를 걸어 와서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마구 늘어놓기 시작했을 때, 그는 누나가 흥분한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내가 맥주 살게.”

지연은 밤늦은 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길로 1호선 지하철을 탔다. 구로에서 인천행으로 갈아탄 그녀가 조찬이 사는 동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1시가 넘어 있었다. 일본식 선술집에 마주앉은 두 사람의 앞에 생맥주가 놓이고 나서야-조찬은 사케를 주문했다-지연은 마침내 사람이 알아들을 만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도무지 뭐 하나 버리시질 못한다니까. 그건 그래도 나아. 냉장고 청소라도 한번 할라치면 머리끄댕이를 잡고 달려드실 기세라니까?”

지연의 어머니는 조찬의 이모였다. 정확히 말하면 조찬의 어머니의 언니가 바로 지연의 어머니였다. 바로 그 어머니가 ‘딸의 머리끄댕이를 잡아서라도’ 냉장고 청소를 못하게 하는 장본인이었다.

“아까운 걸 왜 버리느냐는 거야. 먹을 수 있는 거? 몇 달이나 넣어둬서 썩은 물이 흐르는 야채에 먹다 말고 그냥 넣어둬서 곰팡이가 핀 통조림까지 못 버리게 하는 게 말이 되니?”

“그래서 어떻게 했어?”

“버렸어. 결국. 밤에 잠드신 틈을 타서. 그래봤자 또 채워넣으시겠지만, 할 수 없지. 일단은 비우는 게 순서니까.”

“진짜 병원에라도 모셔가야 하는 건가.”

“냉장고뿐이 아니야. 도대체 20년, 30년 전의 헌옷가지를 장롱으로도 모자라 종이박스로 열다섯 개가 넘도록 싸짊어지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왜 손톱만한 빈틈이라도 생기는 꼴을 보질 못하시느냔 말이야.”

“저장강박증 같은데.”

“그래, 그런 거겠지. 분명히 무슨 정신병리학적인 이름이 있는 증상일 거야. 나도 인터넷 뒤져서 검색해보고 싶었지만, 골치가 아파. 정말 이상한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부모님 세대는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대체로 저장강박증 증세를 보인다고들 하더라고.”

그렇게 말하는 조찬의 가슴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 3자의 여유로운 기분으로 들을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연과 지연의 어머니의 싸움은 다름아닌 자신과 아내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랑이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 밤늦은 시간에, 더구나 평일에 구태여 지연을 여기까지 부른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누나가 빨리 재혼을 해서 독립을 해야겠네.”

재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지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치기공사와 결혼했던 그녀가 이혼하고 친정에 얹혀 산 지도 벌써 햇수로 6년째였다.

“너까지 그러기니?”

“미안, 미안. 그런데 다른 방법이 없잖아. 사실 뭐든지 쓸데없는 걸 모아놓으시는 버릇만 빼면 이모는 건강하시잖아. 종이조각 하나도 못 버리는 이모한테는 지금 이모가 사시는 집이 너무 좁은 것도 문제고.”

“우리 엄마는 지구를 통째로 안겨줘도 좁다고 툴툴대실 걸. 그나저나, 이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올케한테 미안해서 어떡하지?”

“얘기하고 나왔어. 누나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됐어. 나 이 근처에 사는 친구들 많아. 벌써 얘기해 뒀다고. 기왕 여기까지 행차한 거, 걔네들한테도 좀 상담을 받아봐야겠어.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날 쥐잡듯이 하는 거야? 사람이 버릴 건 좀 버리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모으기만 해서 뭐 재벌이 되기라도 했으면 내가 말도 안하지?”

*****

조찬과 그의 아내를 만나게 한 중매쟁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영화동호회였다. 그의 아내는 그의 취향에 부합하는, 키가 다소 작고 왜소한 체구를 가진 여자였다. 조찬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요정같고 여리여리한 체구에 대한 취향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해 왔다. 자신의 여자가 자신의 주위에서 많은 공간을 점유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의 아내는 그가 꼭 원하는 체구를 가졌을 뿐 아니라 단아하면서도 귀여운 얼굴이기까지 했다. 더구나 만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서로 휴대폰 번호를 서슴없이 저장할 만큼의 진전을 보이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완벽한 연애의 시작이었다.

단지 차이가 있었다면, 조찬이 영화에 미쳐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그의 아내는 그저 영화에 보통 이상의 흥미를 느끼고 있는 정도였을 뿐으로 미래의 남편만큼 영화에 열정적이지는 않았다는 정도였다. 다만 누구에게서든 추천받은 영화의 디브이디를 충실하게 수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반대로 조찬은 두 대의 외장하드에 좋아하는 모든 영화의 파일을 저장했다. 간혹 가다가 파일을 교체하기는 했어도 자신이 싫어하거나 소장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영화는 절대 저장하지 않았다.

연애의 시작에서부터 결혼식을 거쳐 신혼의 시작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신혼 두 달째쯤 접어들 무렵, 아내가 친정집에 모아두었던 영화의 디브이디를 모두 가져오면서부터 문제는 불거졌다. 옛날식 가정용 VTR 테이프로 모아둔 영화며 록스타의 라이브 비디오가 족히 일곱 상자를 넘었다. 그것만으로도 방 하나를 몽땅 비워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부피를 현저하게 덜 차지한다고는 하지만 디브이디를 담은 박스도 세 박스나 되었다.

“이걸 다 어떻게 하려고?”

“책장을 들여야지.”

“이걸 다 꽂을 책장을 들인다고?”

조찬은 자신의 진짜 애장품인 스무 개의 영화 시디만을 골라 소파 옆에 요즘 유행하는 모양의 책꽂이에 꽂아두고 장식처럼 전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가냘픈 여자가 무식하게 큰 책장을 들여서는 여분의 공간으로 꼭 비워둬야 할 현관 옆 골방을 구닥다리 테이프와 디브이디로 빈틈없이 채워버리겠단다! 멋대가리라고는 없고 여백의 미도 없는, 단지 수납을 위한 수납을 하겠다는 아내의 계획을 조찬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파도 침대도 없이 가벼운 접이식 소파 겸용 침대 하나를 거실에 두고 침실 겸 영화감상실로 쓰겠다는 조찬의 소박한 계획은, 막무가내로 킹사이즈의 침대와 화장대와 장롱을 잇따라 들이는 아내 앞에서 완전히 개박살이 나고 말았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육중한 사이즈의 가구들 앞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아내를 보고 있노라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아. 든든해.”

아내의 그 말이 바로 자신을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한 조찬의 기분의 슬쩍 풀리려는 찰나, 아내는 더 날카로운 비수같은 한 마디를 그의 관자놀이에 꽂았다.

“그렇지? 이 가구들이 나를 지켜주는 것 같지 않아?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

쉴틈없이 조찬의 아내는 이런저런 물건들로 빈 공간을 메웠다. 종잇장만한 빈틈조차 용납하지 않을 기세였다. TV 옆에 놓인 떡갈고무나무의 거대한 이파리가 그 넓적하고도 푸르디푸른 단단한 잎을 펼쳐 보란 듯이 TV의 액정 가장자리를 잠식하는 꼴을 조찬은 그저 지켜봐야 했다. 눈처럼 하얀 벽은 핀처럼 꽂을 수 있는 못을 이용한 온갖 종류의 액자와 시계와 거울과 DIY 선반으로 채워졌다. 사이드 테이블과 각종 크기의 서랍장들이 벽이며 모서리를 점령했다. 금붕어가 헤엄치는 대형 어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찬은 아내를 좋아했고,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서라면 이 모든 말소된 공백을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지나다닐 길목만을 간신히 남겨놓은 채 온 집안을 잡동사니로 채운 이 공간을 전적으로 아내의 권한으로 인정하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일까?

번민과 회의 속에서, 조찬은 불안하게 아내와의 생활을 지속해 나갔다. 언젠가부터 약속이나 한 듯 섹스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둘 다 그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온 세상이 습기와 열기로 푹푹 쪄대던 어느 여름날 밤, 조찬은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단순히 물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으로 냉장고를 연 순간, 무엇인가가 그의 발 아래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유리로 된 반찬통 하나가 박살이 나 있었다.

냉장고 안은 그야말로 입이 벌어질 정도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냉장고를 잠시 쳐다보았다. 물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빽빽하게 들어찬 락앤락 반찬통과 젓갈류를 담은 유리병과 플라스틱 반찬통과 생선 통조림, 과일과 빵 등으로 그득한 사이를 비집고 누운 우유팩 하나가 보였다. 그는 손을 뻗어 우유팩을 끄집어내듯 꺼냈다. 800밀리짜리 길다란 우유팩을 꺼낸 그는 유통기한을 살폈다. 다행히 신선한 우유였다.

상한 우유가 냉장고에 들어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그는 박살이 난 유리 반찬통을 주섬주섬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짜증을 느꼈다. 도대체 온 집안을 빼곡이 채운 물건들 가운데에서 꼭 필요한 것들, 다시 말해 빗자루와 쓰레받기와 분명히 며칠 전에 본 소형 청소기 등을 그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부엌 한켠에서 찾아낸 키친타올을 이용해 사방으로 튄 유리조각과 장조림에서 흘러나온 간장양념을 한꺼번에 수습해야 했다.

손을 씻은 후 컵을 찾은 그는 차고 신선한 우유를 들이키며 솟구치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혔다. 그러나 우유를 다시 냉장고에 넣으려고 냉장고 문을 연 그 순간, 그는 가슴 속에서 뭔가 거대한 것이 붕괴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종이로 된 우유팩을 다시 눕혀 넣지 않고서는 우유팩을 넣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페트병이 아닌, 뚜껑이 달리지 않은, 종이팩을 눕혀 넣으면 우유가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했다. 냉장고는 보나마나 엉망이 되리라. 그러나 냉장고 어디에도 이미 개봉해버린 우유팩을 세워 넣을 자리는 없었다.

*****

“뭐라고?”

지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였다.

“그깟 우유 따위, 다음부터 뚜껑 있는 페트병에 담긴 걸로 사면 되는 거 아니었어?”

“그야 그렇지만.”

“넌 지금 그게.....이혼사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혼사유였다는 사실을, 조찬은 지연에게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조찬의 아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이혼에 동의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의 집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혹시 남자가 있었던 건 아니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조찬의 아내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마침내 조찬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여분의 공간을 되찾은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연은 전혀 그걸 몰랐다. 다만 고개를 몇 번이나 내저으며 다짐했을 뿐이다.

“내가 좀 만나봐야겠어.”

“그런다고 다시 합치진 못할 거야.”

“알아. 나도 안다고, 다만 난, 알고 싶은 거야. 올케에 대해서. 올케가, 왜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널 떠났는지에 대해서.”

*****

일곱 살 소녀는 매일, 텅 비어있는, 가구라고는 저 멀리 바다 너머로 보이는 섬만큼이나 멀리 떨어져있는 작은 서랍장 하나가 전부인 방에서 혼자 잠을 정해야 했다. 그럴 때면 소녀는 자신의 몸을 담요로 둘둘 말아 벽에 꽉 붙였다. 그리고는 벽쪽으로 돌아누워 되도록 방 한가운데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방은 소녀 혼자 잠들기에는 지나치게 휑뎅그렁한 방이었다. 어쩌다 시골에서 오신 할머니가 그 방에서 주무시는 날이면, 소녀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을 껴안아주지 않아도 그저 할머니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방에서 잠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에 떨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었다. 터무니없는 부피와 두께와 무게와 질량으로 소녀의 방 한가운데를 점령한 거대하고도 적막한 공백, 그 공백을 소녀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텅 빈 공간의 한가운데 자신을 잡아챌 하얀 손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적어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휑하니 빈 공간에서, 소녀는 까닥하면 자신마저 그 공간 안에서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벽에 달라붙어 잠을 청해야 했다.

그렇게 소녀는 여분의 공간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너네들이 이혼한 건.”

지연은 한숨을 쉬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나랑 우리 엄마가 그렇게 싸워댔던 바로 그 이유로 이혼한 거네.”

어떤 방법으로도 메꿀 수 없는 간극이었다. 지연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반박할 의사가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난 너한테 한밤중에 뛰어와서 하소연을 해댔으니.”

“뭐 어때. 세상이란 게 다 그런 건데.”

조찬은 피식 웃고는 사케가 든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그래, 세상이 그런 거지. 그래서, 넌 요즘 어때? 살 만해?”

“그럭저럭.”

달리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기에 조찬은 그렇게 대답했다.

아내와 이혼한 지 약 일년여가 지났을 무렵 조찬은 사십평대의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혼자 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평수였지만 조찬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그는 가능한 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제외한 모든 잡동사니를 처분했다. 육중한 소파와 장롱이 가장 먼저 처분대상이었고 그 다음은 킹 사이즈 침대였다. 아내의 화장대와 어항과 떡갈고무나무 역시 처분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인테리어 잡지에서나 볼 법한 센스를 발휘하며 그는 자신의 공간을 정성스럽게 단장해 나갔다. 그는 최대한 가볍고 부피가 적은 가구들만을 골라 절대로 그의 주위에 필요한 만큼 확보해 놓은 여분의 공간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건 좀 심한데.”

조찬의 인테리어를 취재할 요량으로 집을 찾은 조찬의 잡지사 후배는, 조찬의 거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별로 감각적이지 않아?”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후배는 잠시 머뭇거렸다.

“선배, 괜찮아요?”

“뭐가? 너 알아듣게 좀 말해. 뭐가 심하다는 거야? 뜬금없이 괜찮냐는 질문은 또 뭐고?”

“그러니까.....인테리어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데.....이게 사람 사는 공간인지, 아니면 진짜 드라마 세트장을 차려놓은 건지 모르겠네요.”

“원래 잡지 같은 데선 다 이렇게 꾸미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죠. 하지만......”

조찬의 후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취재를 마친 후 남은 업무를 처리하러 서둘러 회사로 복귀할 채비를 하면서, 조찬의 후배는 기어이 한 마디를 던지고야 말았다.

“선배가 사는 그 공간이, 선배가 얼마나 삭막하게 사는지를 구구절절이 읊어주는 것 같아서, 보는 내가 다 고독하고 외롭더라고. 그래서 선배더러 괜찮냐고 물어봤던 거예요.”

*****

차디찬 겨울의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찬은 한밤중에 잠을 깼다. 휴대폰을 열어 시계를 확인하려다 말고 얼마 전 새로 산 벽걸이 시계가 걸린 벽 쪽으로 눈을 돌렸다. 새벽 1시였다. 감기 기운이 있어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던 탓에 일찍 깼다고 생각되었지만, 막상 깨고 나니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영화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다. 에곤 쉴레의 그림을 새겨넣은 판넬이 장식된 거실에 그는 얼마 전 소파 대용으로 군청색 매트리스를 들여놓았다. 충분히 자신의 취향대로 펼쳐놓은 여분의 공간을 새벽 1시에 마주한 그 순간, 그는 이해할 수 없이 곤혹스러운 기분으로 약 삼십 초 가량을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이윽고 냉정을 되찾은 그는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와 통조림 골뱅이를 꺼냈다. 그리고는 텔레비전에 외장하드를 꽂은 후, 외장하드 안에 든 영화 목록을 차근차근 살폈다.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그 시간을 그는 즐기려고 노력했다. 말 그대로 노력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예기치 못한 불면을 어떻게 상대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고른 그는 재생 버튼을 누르고 군청색 매트리스에 몸을 편히 기댔다. 생각만큼 편안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고른 매트리스이니 불평을 하려면 자신에게 해야 했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 그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자신을 둘러싼 충분한 면적의 여유로운 공간을 둘러보며 그는 새삼스럽게 흐뭇한 기분이 되어 한결 여유롭게 두 모금째의 맥주를 들이켰다. 이 눈앞의 광막한 여분의 공간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고독이라는 특권에 대한 확실한 증거였다. 그렇게 눈앞에 주어진 여분의 공간을 음미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무럭무럭 그 너비를 확장해가는 여분의 공간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고, 분명하고 단호하고 정직한 증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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