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미 자살에 관한 담론을 여러 차례 시끄럽게 늘어놓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고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던 나, 한 가지만 더 말해야겠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장담은 하지 못한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는 현실이므로. 그래서 자살은 이제 특이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인간 인생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리고 <자살의 역사>라는 어떤 인문과학 서적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살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한 가지만 더 얘기하기로 한다. 익종이 새끼가 자살했다. 그리고 이번 자살은 다른 어떤 자살과도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오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만약 이 고백을 듣는 사람이 내 고백이 진심이라고 느끼고, 내 고백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당장 자살방조죄로 쇠고랑을 차야 할 판이다. 아니 어쩌면 그 말은 틀렸다. ......방조죄. 그러나 자살이 아닌 어떤 다른 행위에 대한 방조다.
나는 내 고백의 진실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단지, 지난 번에 친한 친구 부부가 동반자살한 이야기를 한 후로 더 이상 내 얘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다. 그 점을 분명히 못박아두고 솔직히 밝히자면, 나는 익종이란 놈이 자살할 거라는 사실을 애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 놈이 내게 자살할 거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믿지 않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난 그 놈의 모든 것을 믿었다. 그 놈은 거짓말을 못했다. 그 놈은 누가 자기를 말려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놈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 말에 상처입은 그 놈이 열받아서 오기로라도 정신차리고 제 인생을 제대로 살기를 바랬을까? 아니다. 나만큼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어디 있나.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나와 무관한 인간은 자살로든 타살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도태되기를 바란다. 물론 여기에서 ‘나와 무관한 인간’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건 내가 짐승이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다. 하여간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익종이란 놈은 나와 무관한 놈이었음을. 그런데 겉으로는 허울좋게도 선배와 후배라는 듣기에 과히 아름다운 호칭을 붙이고 있었음을.
# 2
참으로 별난 인생이다. 사실은 너무 평범하게 살았기 때문에, 익종이 놈의 인생은 오히려 별난 인생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이기려 애를 써도 이길 수 없는 호적수를 만나게 마련인데, 그런 놈에게 굴복당했다는 사실까지도 너무나 평범한 그 새끼의 인생이 가련해진다. 그 문제의 호적수, 익종이 놈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무엇이었냐고 묻자니, 바로 제도권이란 놈이었다.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어기지 않고 살아야 하는 규칙이라는 그 ‘제도’ 때문에 녀석의 인생이 참으로 많이 꼬였던 것이다. ‘규정에 어긋난다’는 단서와 몇 장의 서류가 놈의 인생을 그렇게 바꿔 놓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녀석은 문과와 이과의 교차제도가 불리해진 입시제도 하에서 문과인 주제에 이과 계열인 의대를 지원했고 보기좋게 낙방했다. 그 후로 재수와 삼수를 거쳤지만 녀석은 번번히 ‘재수생보다 재학생이 유리한’ 제도 탓을 하며 자기 실력보다 훨씬 낮은 지방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중학교 때 다리를 다쳤음에도 녀석은 신체검사 때 2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늦게 군대에 가서 죽을 고생을 했다. 마치고 나오니 아직도 2학년이었다. 어찌어찌 졸업할 때가 되어 사법고시를 쳐서 보기좋게 떨어졌다. 그런데 얼마 후 시험문제 하나가 잘못된 게 밝혀져서 같이 떨어진 놈들은 다 합격 처리되었는데 자기만 제외되었단다. 더러워서 다 포기하고 일자리를 알아보자니 나라 경기는 땅바닥을 기고 있었고 젊은 대학생 백수들이 길거리에 넘쳐나고 있더란 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 땅의 사람들치고 소위 제도의 희생양이 아닌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냔 말이다. 그런데 녀석은 이상하리만치 제도권에 대한 피해의식이 남달랐던 것이다.
죽기 일주일쯤 전이던가, 한 삼 년 연락두절이던 녀석이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왔다.
“형 돈 좀 빌려줘요.”
삼 년만에 연락 온 반갑지 않은 후배가 대뜸 돈부터 빌려 달라고 하면, 선선히 빌려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인사치레삼아 물어보긴 했다.
“글쎄......얼마쯤?”
“삼천만 정도요.”
“너 나한테 그런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
사실 내 통장에는 오천만 정도의 돈이 있었다. 장차 내 아내가 될 그녀와 단둘이 살 아파트라도 한 채 사려고 혼자 힘으로 알뜰살뜰 모아 놓은 돈이다. 그런 돈을 후배 놈한테 뺏기다니(왜냐하면 돈 빌리고 다니는 놈들 치고 갚는 놈을 못 봤으니까), 절대 안될 말이다. 차라리 내 피와 살을 뜯어가라지. 그런데 그 놈, 통사정할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다. 만나서 술 한 잔 하자고 한다. 그래서 선선히 승낙했다. 만나서 통사정할 작정인가 보군. 그런다고 돈 꿔 주지는 않을 거야. 좌우지간 나는 녀석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은 그다지 변한 데가 없었는데, 단 한 가지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살이 쑥 빠진 것이었다. 중병을 앓는 환자 같았다. 눈은 충혈되었고 대학 재학 시절 단정하던 머리는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대체로 내가 예상했던 모습이었다. 항상 술이 들어가기 전에는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 대개의 남자들의 버릇대로 우리 역시 참이슬을 석 잔째 들이키기 전까지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썩을 놈의 세상, 곱게 때깔나는 서류만 만들어가면 이런저런 걸 해준답시고 말만 그럴듯하게 해놓고는, 막상 예쁜 서류 만들어 가져가면 꼭 결격사유를 붙여 준단 말이지. ”
그런 식으로 서두를 꺼낸 녀석은 소위 제도 때문에 자기 인생이 얼마나 꼬였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미리 언급한 대로다. 나중에는 얼마나 시시콜콜한 것까지 얘기했던지, 초등학교 시절 주거지와 학교의 행정단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 선생이 아침 조례시간에 전학가라며 자신을 밀쳐낸 얘기까지 거슬러올라갔다. 그렇게 삼천포로 빠진 끝에 국민연금의 부당한 폭리까지 이르러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져서 한 마디 했다.
“세상 다 그런 거 이제 알았냐?”
그러자 그 놈은 나를 상당히 원망하는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아무래도 녀석 역시 내 뒤통수를 칠 ‘멋진 한 방’을 궁리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녀석의 펀치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을 터였다.
“이제 안 건 아닌데, 갑자기 새삼스럽게 그 무게가 짓눌려져 와서 그런 거요.”
그 다음에는 다시 술이 돌았다. 이번에는 술도 말도 지지부진하게 오래 끌었다. 그래서 참다못한 내가 질문했다.
“도대체 돈은 왜 빌려 달라고 한 거냐?”
말해 놓고서는 아차 싶었다. 차라리 말을 말 걸. 괜히 돈 얘기 잊고 있었던 놈 건드려서 골치 아프게 된 거 아닌가? 그러나 익종이 녀석은 그다지 동요의 빛을 보이지 않고 대답했다.
“카드값이오.”
아 결국 카드 막을 돈이 필요했다 이거군.
“뭐하다가 삼천씩이나 끌어 썼냐?”
“그건 알 거 없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녀석에게도 책임져야 할 약혼녀가 있었는지 모르지. 그렇지만 녀석의 말대로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좌우지간 녀석은 내게 돈을 빌릴 목적으로 만나자고 한 건 아닌 모양이다. 안심하고 일어날 궁리를 하던 참에 녀석이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형은 내가 자살하겠다면 안 말리겠지?”
“내가 왜 말리냐?”
나는 평소 내 사고방식에 대해 적당히 길게, 그리고 적당히 명료하게 설명했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을 정도의 길이와 명료함을 가지고. 그러자 녀석은 클클거리며 웃다가 술잔을 탁자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나는 녀석이 화를 내려는 건가 싶어 움찔했는데, 녀석은 태연히 제 잔에 먼저 술을 따랐다. 술잔 안에는 술이 반쯤 남아 있었다.
“역시 형은 위선적이지 않아서 좋아. 아니지, 적어도 필요할 때만큼은 위선적이지 않아서 좋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을 좋아한단 말이지. 형은 그 말을 실천하고 있으니까.”
“필요할 때는 위선적이라도 괜찮아. ”
“그거야 그렇지. 다만, 위선자가 되는 데 있어서도 구비해야 할 조건이 있고 그 조건을 명시해야 하는 서류가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은 더 이상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병째의 소주를 비워갈 무렵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치뜬 채 나를 한참 노려보았다. 전에 없이 강렬하고 사나운 눈빛이었는데, 피하고 싶다기보다는 보는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눈빛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눈빛을 한동안 응시했다. 사실 녀석이 죽은 지금에 와서 녀석에게 유일하게 미안한 때가 있다면 바로 그 때였다. 왜냐하면 녀석이 내게 간절하게 전하고자 했던 뭔가를 내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텔레파시 정도는 받아줄 의향이 충분히 있었는데. 좌우지간 녀석은 1주일 후에 18층에서 뛰어내렸다. 카드 회사에 영원히 갚아줄 수 없는 3천만원의 빚을 그의 어머니와 형의 몫으로 남겨두고.
# 3
익종이 놈 장례식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였는데, 결국 가지 않았다. 영안실에서 내가 접하게 될 상황들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보다 더 익종이와 ‘무관한’ 사이였던 진환이가 내 조의금까지 챙겨들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동태를 보고하러 온 그 놈과 나는 습관대로 술을 마시러 갔다. 익종이 놈과도 그랬듯이 말이다. 술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강의 자잘한 모세혈관 같은 지류를 적절히 정화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묘약이다. 그 묘약을 진환이 놈과 나누는 자리에서 녀석은 익종이 놈이 그랬듯 도통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이서 참이슬 한 병을 다 비워 갈 무렵, 익종이 놈은 서너 번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그러면......”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고 몇 번 물었지만, 녀석이 도통 대답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결국은 대답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이슬 두 병째에 녀석은 슬슬 입을 열었다.
“유서를 썼는데, 그 유서의 내용이 걸작이야. 아니 졸작인가. 하여간.......”
“뭐라고 썼는데?”
“몰라 새끼야. 너, 익종이 놈하고 며칠 전에 여기서 술 마셨다며?”
사실 진환이가 앉아 있는 자리는 익종이 자식이 죽기 며칠 전 나와 마주앉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내 자리는 변함없이 여기이고, 내 상대의 자리는 변함없는 저 자리이다. 다만 저 자리를 차지하는 내 상대만이 수없이 교체될 뿐이다.
“그래. 마셨다. ”
“너 이 자식, 익종이 자식 죽을 거 미리 알았지? ”
“그래.”
“그런데도 안 말렸지! 이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그 놈이 죽으려고 하는 걸 알았으면 어떻게든 말렸어야 했을 거 아냐?”
“내가 무슨 수로? 도시락 싸들고 뒷간까지 쫓아다니면서 약 보이면 뺏고 면도칼 보이면 경찰 부르고 옥상에 올라가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고?”
“이런 조또 아닌 새끼가......”
진환이 놈은 내 멱살을 잡으려는 듯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내 코앞까지 자신의 얼굴과 손을 가져왔다. 그러나 손을 몇 번 떨다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나로서는 다행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놈 죽은 게 그렇게 서럽냐? 그러면 네가 그 놈 카드빚 대신 갚지 그랬냐? 그랬으면 죽으라고 고사를 지냈어도 그놈 안 죽었을 텐데.”
진환이 놈의 입술이 보기 흉하게 부어 있었다. 녀석이 내 대신 장례식장에 가서 받았을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녀석은 자기 딴에는 꽤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녀석도 익종이 놈과 마찬가지로 뭔가 나를 쓰러뜨릴 강력한 단 한 발의 총알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익종이 놈과 마찬가지로 진환이 놈 역시 내 상대는 되지 못했다.
“너는 역시 위선자다.”
위선자라는 말은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쓸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전에 익종이 놈이 한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도, 아마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위선에는 구비조건과 구비서류가 필요하다’.
“그 놈이 죽었다고 슬퍼서 설치는 네가 진짜 위선자야.”
“그럼 넌 익종이가 죽은 게 안 슬프다 이거군.”
“좀 섭섭하긴 해. 착한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슬프지는 않아.”
사실 녀석이 내 돈을 떼어먹는 상황을 가정해 볼 때, 그보다는 그냥 자살해버린 지금이 훨씬 나은 상황이라고 고백하고 싶었다.
# 4
아내 될 여자는 나보다 세 살이 어렸다. 나쁘지 않은 터울이었다. 그리고 예쁘고 영리하고 현명한 여자였다. 적어도 살아가는 동안, 말 잘 듣는 내조자가 되어 줄 것이다. 그녀와 나는 결혼 예물을 사러 어머니의 단골 보석가게 <보금당>을 찾아가 수표를 쓰고 예물 한 세트를 맞추었다. 그녀는 반지에 박힌 보석의 모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는 내 의견에는 동의했다.
마침 어머니께서 이모 댁에 가 계시느라 며칠 집을 비우셨으므로, 그녀를 잠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녀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으레 그러하리라고 예상되는, 다소 수줍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며 마루로 걸어올라왔다. 기회를 봐서 침대로 데리고 갈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커피잔을 젓는 그녀의 가녀린 손목이나 감상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가녀린 손목은 앞으로 계속 나를 위해 커피를 타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할 손이 아닌가. 너무 힘든 일은 시키지 말아야겠군. 손목이 굵어지면 곤란하다. 어지간히 커피가 다 녹았을 법한데 그녀는 계속해서 커피잔을 손으로 젓고 있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전에 아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었어요. 여자는 절대 자신의 과거를 남편하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그 사람 남자였나?”
“네.”
“적어도 남자 입장에서는 옳은 말을 한 거야. 대개 자기 아내의 과거지사를 듣고 그냥 넘어갈 남자는 없거든.”
“네.........”
그녀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대로 직격탄을 날려 보았다.
“혹시 나한테 털어놓을 과거지사가 있는 거야?”
그녀는 잠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계속 내게 자신의 옆얼굴만을 보이고 있던 참이었다. 별로 당황하거나 동요하는 눈빛이 아니었기에 속으로 내가 헛짚었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고개를 돌려 내게 자신의 가냘픈 옆얼굴을 드러냈다.
“하지만 말하든 말하지 않고 있다가 들키든 결국은 마찬가지겠죠. 내 부모님은 내가 식을 올리고 호적을 파가는 대로 곧 이혼하시려고 해요. 엄마가 28년 전에,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와 딱 한 번 잔 게 문제가 되었다는군요.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아빠죠. 자기는 바람 한 번 안 피웠다고 그렇게 기세등등하다니. 난 열 세 살 때, 아빠 회사에 혼자 찾아갔다가 거기에서 정말 못 볼 걸 보고 말았는데 말이에요.”
“그럼 그 말을 아버지께 하지 그랬어.”
그녀는 시선을 찬장 쪽에 고정시킨 채 픽 웃었다.
“그냥 그렇게 살게 내버려두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산 사람이, 이제 와서 딸에게 망신 좀 당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요? 착한 딸이죠? 머지않아 착한 아내가 되겠죠.”
요컨대, 그녀는 내게 바람피우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군. 그런 요구쯤이야 들어주지. 네가 내게 잘해 주기만 한다면.
확실히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 5
과거란,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 양심에 거리끼지 않을 정도로만 보여주면 된다. 몇 년 전, 아무도 없는 학교 노천강당이었던가. 갓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무렵, 스물 네 살의 내가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지만 나보다 네 살은 어려 보였던 내 애인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니 정확히는 양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녀는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기세로 소리친다.
“임신 안 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하루도 안 거르고 피임약을 먹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매번 거기에 질좌제를 집어넣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여성용 콘돔까지 사서 썼는데, 결국 허탕쳤어! 다 끝났어! 이 나쁜 자식. 수술비 내놔. 나 낙태해야 돼. 안 그러면 나 시집 못 간단 말이야. 돈 내놔, 돈!”
그래서 50만원을 내주었는데, 낙태 수술을 해 주는 병원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청소년 복지 센터를 찾아가 어린 미혼모들의 낙태를 전담하는 병원을 몰래 의뢰해야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를 얼마 후 전화로 듣게 된다.
# 6
솔직히 익종이 놈이 죽을 거라는 건 예상했던 바였지만, 진환이 놈이 죽으리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다. 이제 곧 H연구소에 입사하게 되어 있는, 나보다 전도가 유망하면 유망했지 결코 무망하지 않은 놈이 말이다. 그 놈이 죽었을 때는, 솔직히 마음이 너무 착잡해서, 한 며칠은 자신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익종이 놈의 망령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제 선배를 나꿔채 간 거라는 엉뚱한 상상까지 했을까.
그래서 진환이 놈의 장례식에 가기 싫었다. 이번에는 진환이 놈이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진환이는 익종이란 놈과 다르지 않은가. 결국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D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관을 모셔놓은 자리에는 문상객들과 친지들만 버글거릴 뿐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다. 듣기로는 어머님이 실신하셔서 위층에 있는 입원실에 모셔갔다고 한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죽은 놈에게 가서 절을 했다. 먼저 간 놈에게 절을 하려니 기분이 묘했다. 영정 속에 갇힌 녀석의 모습은 하필이면 대학 졸업식 때 학사모 쓰고 찍은 그 모습이다. 저걸 영정으로 써야 했을 정도로 사진이 없었을까. 나는 녀석이 나에게만 보이도록 윙크라도 할까 싶어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후 어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환이란 놈의 둘째 누님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둘째 누님은 간간히 눈물을 뿌리며 진환이 놈이 죽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들려 주었다. 시집 간 큰누이가 하도 돈 좀 꾸어 달라고 떼를 쓰기에 하는 수 없이 카드를 내주었는데, 그 카드 빚이 장장 칠백에 이르렀는데도 갚지 못하자 이를 안 놈의 어머니가 큰누이를 불러 한바탕 혼을 내고는 카드를 빌려 준 진환이 놈에게도 욕을 퍼부었다는 얘기였다. 한바탕 악다구니를 친 후 화를 푼 놈의 어머니는 지체 없이 카드 회사에 카드 분실신고를 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왜냐하면 큰누이가 이미 카드를 자기 남편에게 맡겼으므로 돌려받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진환이 놈은 곰곰 생각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카드 주인이 분실되면, 카드도 알아서 분실될 테니. 굳이 신고할 필요 없겠네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따져 물어도 대답을 않더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징조였어, 그 때 알았어야 했는데, 하고 진환이 놈의 작은 누님은 흐느껴 울었다.
나중에 영안실을 나올 때 내게 그 놈의 유서가 건네졌다. 나는 읽고 나서 그 유서를 작은 누님에게 돌려주었다. 봉투에는 큼지막하고 반듯한 글씨로 유서라고 적혀 있었고 그 옆에 괄호를 쳐서 (습득물보관함)이라고 적어놓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봉투 안에 든 본문의 내용이 너무 길지 않기만을 바랬는데, 녀석은 내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단 한 줄로 자신의 마지막 말을 소름끼치게 요약했다.
―익종아. 너는 여기 있다.
여기라 함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알 수 없다. 죽는 마당에 익종이 놈의 이름을 부를 만큼 진환이 놈이 익종이 놈을 사랑했던 말인가? 진환이의 작은 누님이 나의 가당치도 않은 의문을 풀어 주었다.
“잘은 모르겠어. 익종이가 진환이한테 돈을 빌려갔던 모양이야. 진환이는 내색은 안했지만, 돈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더라고.”
쪼다같은 놈, 누이고 친구고 남의 사정 봐주다가 제 인생만 종친 것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돈 때문에 자기 인생을 정리하는 마당에 익종이 놈의 이름 따위를 휘갈겼나? 진환이 놈이 그런 놈이었나? 누구보다 친한 친구 중 하나였는데도, 그 놈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였다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 7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약혼녀. 결국 나를 만나기 전 자칭 ‘어렸던’ 시절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두고두고 내게 책 잡히며 살 인생을 각오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깨끗하게 헤어지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들어보니 별 것도 아니었다.
“한 번만 넣어보자고 해서 다릴 벌려줬는데, 결국 못 넣었어요. 처녀막은 터지지도 않았어요.”
그럴 테지. 그러면 내가 그 처녀막을 터뜨리면 되겠군. 두고 보자. 너의 처녀막이 터지지 않을 때는 기필코 너를 남편기만 가중처벌법으로 고소할 거야. 나는 겉으로 괜찮다고 흘흘 웃으면서 속으로 이를 갈며 네 위에 올라앉을 수 없어. 물론 내 양심이 만든 법률에는 어느 정도 위배되겠지만, 그건 일단 저 깊숙한 구석으로 치워놔야지. 내 약혼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약혼반지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죠. 그런데 그를 기억하는 건 그가 나를 떠나기 전에 한 마지막 말 때문이에요. ‘지렁이는 밟아도 꿈틀거리지 않는다’. 참, 맞는 말 같았어요. 요즘은 밟으면 꿈틀거리는 지렁이조차도 잘 안 보이더군요. 간혹 가다 길에 오징어포처럼 바짝 말라붙은 그놈들을 두어 번 보긴 했는데.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하도 침을 많이 흘려서 우리 할머니가 수채구멍에서 지렁이 잡아다 달여 먹였다는 얘기 했던가요? 아무래도 그 사람, 내 과거를 정말 다 알고 있었나봐요. 얼마 전에 찾아와서 잘 살라고 축하해 주고 갔는데, 결국 죽었어요. 그 사람 이름, 궁금하지 않아요?”
약혼녀는 얼마 전에 죽은 그 놈과 동명이인인 남자의 이름을 댔다. 홍익종. 와. 이런 씨발. 세상이 뒤집힌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은 하늘이 된다. 뛰는 놈 위에 기는 놈이 있다. 지렁이는 밟아도 꿈틀거리지 않는다더라고? 익종이 놈이 그런 명언을 했다니, 나도 이쯤해서 한 마디 해야겠다. 이기는 놈 위에 지는 놈이 있다.
# 8
단지 순결 문제만이 아니라, 결혼을 앞두고 제 과거 다 까발리는 약혼녀와 파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동안 죽은 두 놈이 한결같이 내뱉었던 ‘위선자’란 말이 나를 무척 괴롭혔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다른 친구와 얘기를 해 보았지만, 그 친구는 내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얼마나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아울러 내가 만약 그 교회에 다닌다면 꼭 그 목사님이 나를 반겨 맞이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목사님의 환대를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당장 내가 당면한 문제는 목사님과 무관했으므로 나는 일단 친절한 작별 인사와, 다음에 꼭 찾아가겠다는 거짓말로 그와의 면담을 일단락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두 놈의 죽음을 생각하자 비로소 내 주위에 믿을 만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일단 남은 강의를 들으러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가, 거의 대부분의 동료들이 나가고 난 썰렁한 강의실에 혼자 앉아 있자니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군대 시절 내 밑에 들어왔던 꼬바리들 중 하나였다. 꽤 영리하고 선량한 놈이었는데, 마음이 약한 게 흠이었다. 익종이 놈을 꼭 닮았었다. 언젠가 제대를 앞두고 그 놈에게 내가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뭔가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긴 토론을 하다가 문득 ‘불안정성’(어쩌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논리인지 뭔지 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아마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너는 항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옳다고 말한다. 너는 항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옳지 않다고 말한다. 너는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 그러므로 너는 안정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불안정성을 내포한다. 왜냐하면 너는 너 자신만의 확률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너의 순열 너의 조합 너의 표준편차 모든 것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다. 너는 제도권이라는 확률의 불안정성에 종속되어 있다.
이제 와서 맹세코 대답하지만, 뭘 알고 한 말이 아니었다. 단지 뭔가 그럴듯한 말을 찾다가 정말로 그럴듯한 단어들을 주워섬겨 만든 것이다. 그게 부메랑이 되어 내게로 다시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익종이 놈이 한 말도 아니고, 진환이 놈이 한 말도 아니고, 다름아닌 나 윤태인이 한 말이!
그래서 대학 시절에 읽었던 교양서적 중 하나라도 남은 게 있나 찾아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형사법과 민사소송법 사이에 낙엽처럼 끼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보고, 집어들어 펼쳐 보다가 클클 웃고야 말았다. 그 꼬바리 놈에게 했던 또 다른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너의 본질적인 비극은 말이지, 학교 교과서를 너무 열심히 읽은 데서 비롯된 거야. 아마도 그 꼬바리 놈,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단편소설을 지지리 좋아하는 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 9
아내 될 여자와 파혼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길길이 날뛰며 반대하셨다. 하기야 집안의 체면 문제도 있고, 아직 돌리지는 않았지만 쌓아놓은 청첩장에 들인 돈이 아깝기도 하겠고, 결혼 예물도 반품이 불가능하고, 결정적으로 내 약혼녀 집안에 계시다는 ‘법조계의 높으신 어른’의 명성은 반품하기에는 너무 아깝고.
세상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므로, 체념하고 결혼 준비를 했다. 다만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그녀의 저 입이나 익종이 놈에 관한 문제가 아무래도 걸리적거리는데, 이 일을 어찌할까 하고 궁리했다.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내 인생이 순탄치 않을 거다. 부모님께 알릴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래서 궁리하다가 그녀를 밖에서 만나서 불러다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다 잊어버리고, 잘 살아 보자. 다만, 내 앞에서 할 말 꼬박꼬박 하고 살 작정이라면 그건 재고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안다. 분하겠지. 분할 거야. 그녀 역시 내가 예비 검사가 아니고 내 아버지가 판사가 아니라면 절대 시집오려 하지 않았을 테니. 하지만 그녀는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그리고 평생동안, 자기 발톱은 없는 듯이 숨겨놓고 잘 살 여자다. 물론 유능해서 내조도 잘 할 테고. 얼굴도 반반해서 어디 데리고 나가도 남부끄럽지 않을 테고.
그렇게 애써 좋게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진환이 놈의 작은 누님이었다. 아마도 신문에 대서특필된 동생의 죽음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 놈들의 잇달은 자살은 신문뿐 아니라 모든 공중파 방송과 인터넷 등등의 언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후배의 혼령, 선배를 데려갔나?’라는 제목으로 얼토당토않게 심령학적인 견지에서까지 분석되어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한동안 적잖이 피곤했다. 내가 세상 만사를 가능한 한 ‘법보다’ 간단명료하게 생각하고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면 나도 익종이나 진환이 놈처럼 스스로를 괴롭혔을 것이다. 사실 법은 그리 간단명료한 게 아니니까. 나는 가능한 한 익종이나 진환이 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두 놈들을 모두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적잖은 코멘트를 요구했기 때문에, 그걸 눈치껏 넘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내 될 여자가 드레스 맞추러 간 틈을 타 진환이의 작은 누님을 만나러 갔다. 작은 누님은 눈가가 시퍼래진 채 화장도 하지 않은 몰골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음료수 따위는 주문도 하지 않고 단숨에 말을 쏟아냈다.
“나는 몰랐는데, 익종이랑 진환이가 모두 죽기 전에 너랑 술 마셨다면서? 그 얘기 왜 안 했니? 익종이네 집에서는 그 애 유서를 언론에 공개하려고 해도 익종이 어머니가 극구 반대하셔서 결국 안했다는데, 장례식장에 그 애 어머니가 오셨다가 진환이 유서를 보시고 까무러치셨다. 돈 말고 이 애들이 죽은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너, 뭐 달리 아는 거 없니? 그 애들이 무슨 다른 말 안 하던?”
나는 말 없이 진환이 작은 누님의 손에서 쪽지를 받아들어 펼쳤다. 익종이 놈 유서의 전문이었다. 지극히 짧았다. 그 유서를 보고서야 진환이 놈이 쓴 유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익종이 놈의 유서는 대략 이러했다.
―홍익종이 홍익종을 분실했다. 분실신고 좀 대신 해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