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 A 미시관점(微視觀點)
(확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 중 하나는 그들이 언제나 나의 의사를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인 쪽으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미쳤으며 병들어 있다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 말에 반대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나는 그들의 한결같은 의견을 받아들여 드디어 나 자신을 갉아 먹는 짓을 그만두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서의 축복받은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희망을 되찾았고 드디어 내 앞에도 밝은 서광이 비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은 내가 병들었다며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순히 그들의 의지에 순응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란 항상 저항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는 내 의지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 이유는 내가 혼자이고 그들이 여럿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배당하는 쪽이고 그들이 지배하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왜 내가 지배당해야 했느냐 하면, 나는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것들을 거부했고 그들은 그들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맹목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한 가지 생각에 관해 정해진 시간 이상 몰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규칙이었는데, 내가 그 규칙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판단은 옳았고 내게는 떨쳐 버릴 수 없는 생각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인간은 겉으로는 고통과 슬픔을 운운하며 절규하지만, 사실은 인생에 있어 치유하지 못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지 않고 살아간다고. 그러나 예외가 생길 틈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틈새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처음부터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기억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그의 말이 내게 해당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란 생각보다 훨씬 신비로운 마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그는 내게 무수히 많은 마디로 이루어진 수직선을 그려 보이고는 그 중의 한 마디를 임의로 찍은 후 내게 말했다. 이 마디에서 떠나. 이 마디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네가 고를 수 있는 그 어떤 마디에도 머무르거나 매달리지 마. 나는 그의 충고를 무시했고 이렇게 갇혀 있는 지금에 와서 그의 충고를 듣지 않은 것을 뼈아프게 후회한다. 그렇다. 나는 내 의지를 내 뜻대로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나는 오로지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 아니다. 처음부터 내게 없었는데 어쩌면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를 것들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에 내 모든 정신적 능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앉는 것과 일어서는 것, 최소한의 영양분을 섭취함으로서 최소한의 배설물을 방출하기, 그리고 손톱을 물어뜯는 것, 그리고 가끔 소리내지 않고 웃으며 어느 날인가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을 나 자신 변화시키거나 개선하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저렇게 높이 달린 작은 쇠창살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저렇게 고개를 내저으며 나를 내려다보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신의 얼굴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신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과 유사하다고 모두가 말했고 나는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얼굴이라 할지라도 신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그 얼굴을 숭배하기로 했다. 불이 꺼졌다. 어둠은 항상 무섭다. 나는 장님이 아니기 때문에 불이 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아직은 때때로 내가 천착하는 문제에서 잠시 떠나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나에게 어둠이란 기약없는 기다림 자체이며, 오래 전에 빼앗긴 희망에 뒤이어 최근 절망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기다리라는 명령을 회피할 도리가 없다. 그것이 내가 기다리는 이유이며, 사실은 나도 지금과는 아주 다른 그리고 아주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나의 고백에 귀기울이지 않으며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며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는다. 나는 축소된 공간 안에서 확대되었다.
그것이 내가 이렇게 주저앉은 이유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일이 생겨난다. 내 인생이 망쳐졌다는 사실을 가능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나의 기억보다 훨씬 강한 나의 감정을 분해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생각들을 신의 얼굴을 한 인간의 얼굴에게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오로지 내가 항상 생각하는 핵심적인 주제에 대해서만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사실은 나 자신 지치고 있었다고 고백했지만 내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편집증 환자라고 불렀고, 나는 내가 편집증 환자라는 것을 이미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