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접원(內接圓) Ⅲ
만약 꿈이 깨어 있는 삶에 대한 해설이라면 마찬가지로 깨어 있는 삶은 꿈에 대한 해석이었다.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중에서―
강윤
“내 심장 잘 있었어?”
창백한 얼굴로 살아서 되돌아온 민효가 내 가슴에 손을 얹으며 그렇게 질문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왼쪽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손을 집어넣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푸르게 멍든 뺨을 한 채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 이것은 내가 어젯밤 꾸었던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꿈은 반복되는 법이 없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랬다. 그러므로, 뜻하지 않게 내 사랑이 살아서 돌아온 그날 저녁까지 나는 오로지 죽음만을, 내게 절반도 허용되지 않을 그 미지의 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짓 따위는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내 감정에 이유와 논리를 덧붙여 구질구질한 설명을 하는 짓을 좋아하긴 해도, 그런 취미가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공공연히 자랑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민효에 대해서 그녀가 이러이러한 여자라고 긴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또한 내가 그녀에게 품고 있던 사랑의 파멸(破滅)에 가까운 절박함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길게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너를, 너는 그를, 그는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그 삼각관계라는 것이 나를 괴롭힌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강인에게라면, 한날 한시에 태어난 내 형에게라면야 백 번을 양보해도 양보할 수 있었지. 사실 그건 양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강인이 민효에게 ‘너는 내 거다’ 라는 소유욕을 드러내 보인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때문에 민효는 가슴 속에 원한을 품었었다. 결국 그 원한의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거듭 말하지만 그건 양보가 아니었다. 나는 민효를 사랑할 권리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내 부모님들조차도 막지 않았다. 환상적인 로맨스를 믿었던 어머니는 자식들의 치정관계를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슬프고 아름다운 로맨스의 하나로 간주할 만큼의 정신적인 여유를 가지고 계셨다.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분이셨으니까. 아무리 내 어머니라지만, 정말 대담한 분이셨다. 그랬기에 어머니가 이름도 외우기 힘든 이상한 나라에 가서 공부를 더 하시겠다고 비행기 타러 공항으로 가셨을 때도 나는 마중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본의 아니게 어머니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상할 게 없다. 나는 민효의 심장이 내 왼쪽 가슴을 차지한 후 어째서 내가 강인과 단 둘이 남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니까. 빌어먹을, 강인마저 없어졌더라면, 난 정말로 홀가분하게, 눈 앞에 보이는 내 사망 신고서에 내 손으로 도장을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이따금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는 강인을 올려다보고 그의 눈빛을 확인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붙들고 있었는지를. 게다가 강인은 내게 일말의 책임감을 부여한다. 네 목숨은 네 것이 아닌데다가, 이미 명백한 소유자가 정해져 있으니, 넌 죽을 권리가 없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 내 목숨을 저당잡히고 있다는 비참한 기분은, 곧 원한으로 이어진다. 무엇에 대한 원한이냐 하면, 민효의 죽음을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한. 결국은 복수의 도구가 되고 만 현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보고 싶은데.......볼 수가 없어.........어떻게 하면 좋지?”
대답 대신 강인은 신경안정제가 든 캡슐을 내밀었었다.
“약국에서 파는 건데, 처방전 없이 살 수 있어.......”
의사의 처방전......웃을 일이다. 속으로 이미 세상을 뜨신 아버지께 여쭈어 본다. 아버지 처방전이 필요해서 그러는데 하나 써 주시겠어요? 외과의라서 안 된다고요? 수술실에 들어가 전신마취를 하기 직전, 나를 내려다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안 됩니다. 그러지 마세요! 저를 죽이려 하시는군요.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깨어난 후,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이미 내 심장은 내 안에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심장과 더불어 사라진 사람이 누구인지.
꿈은 반복되는 법이 없다. 그러나 통증은 반복된다.
긴 잠이 가져다주는 휴식에 탐닉하다가, 일어나서는 뭔가 먹을 것이 없을까 하고 냉장고를 뒤진 후, 뭘 먹었는지도 모르게 약에 취해 냉장고 앞에 길게 엎드려 있다가 기다시피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눕는 날들이 몇 달이나 계속되었다. 아버지. 교통사고든 뭐든 간에 잘 돌아가셨습니다. 애써 살려 놓은 아들의 이런 몰골을 보시지 않으셔도 된다는 게 이 아들로서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반대로 강인은 나보다 훨씬 꿋꿋하게 민효의 부재(不在)라는 난관을 이겨냈다.
―내 심장 잘 있었어?
현실에서보다 더 생생했던 민효의 목소리. 그 휑하니 구멍뚫린 가슴을 잊을 수가 없다. 반복되는 건 기억이고 여운이다. ‘아직도’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어지는 긴 여운들. 그리고 생각하기 싫은 기억들. 몇 번이나 민효의 가슴에 뚫린 그 시커먼 우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상상을 했다.
―구속복 입혀서라도 끌고 갈 걸.
언제나 내 몸에 불을 붙이던 그 관능적인 목덜미와 더불어 더오르는 목소리. 머릿속에 들어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기억들은 하나같이 생뚱맞은 것들이었다. 결국 구속복을 입은 셈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의 내 몰골은 구속복을 입은 불치의 정신이상자보다 그다지 더 나을 것도 없는 꼴이니까.
잊어버리려고 헤아리는 시간들인데, 나는 시계바늘처럼 고정된 내 분노를 떨쳐내지 못한다. 이것은 내 안으로 들어온 민효의 심장으로부터 왔다고 믿는다. 내 안의 근육질 신부는 마취상태에서 올려진 결혼식의 지참금으로 이 잔인한 분노를 내 가슴 속으로 가져왔다.
내 나이 다섯 살. 누군가를 가슴 저리게 사랑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분명 잉태된 씨앗의 탄생은 그때부터였고,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냈다. 얼굴에 계속해서 맺히는 식은땀과 시야를 막아서는 햇빛, 그 안에서 내 품에 안겨 있었던 민효는 나와 똑같은 나이의 어린아이였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강인은 언젠가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넌 쉬운 걸 원하지 않지. 항상 어려운 것만 좋아하지. 모든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한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옷을 갈아입으며 자랐어도 민효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강인 때문이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실제로 내가 그 때문에 반미치광이가 되었다고 해도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섹스에 철학이 필요없듯, 사랑에 대해서도 개념 따위는 필요없었다. 민효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지 않는 강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조차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달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고 돌아다니는 나는 가끔 엉뚱한 곳에서 아주 사소하고도 가슴아픈 공식을 발견해내어 나 자신의 수식에 적용하곤 했다. 삼각형의 내심과 외심에 관한 문제는 중학생들이나 푸는 문제였지만, 연필로 수식을 끄적거려 찾아낸 답을 적기도 전에 나는 상체를 앞으로 꺾으며 울었다.
어떤 대가도 바란 적이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성에서 최고로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생각 따위는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보다 더 냉정한 강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내 사랑은 내 호흡만큼 자연스러웠고, 타고나길 정상적인 호흡을 못하게끔―심실중격결손이라는 병명 혹은 병명이 지시하는 심장병 때문에―타고났으니 그렇게 자연스러운 내 사랑도 항상 호흡곤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효가 죽은 후 그녀의 뒤를 따르기라도 한 듯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는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으므로 아무도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 따위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혹 아버지가 민효를 죽여 나를 살렸다는 죄책감이 남 몰래 괴로워하고 계셨다고 해도 그 때문에 아버지가 일부러 빗길에 차를 미끄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운전실력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음주운전을 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음주운전은 질색을 하는 분이셨다.
“엄마, 곧 돌아올 거야? 엄마 믿지?”
출국준비를 하시면서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돌아오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민효가 죽은 후부터 다시 살아나기 전까지의 대략적인 상황이다. 그녀는 영원한 이별에서 기인한 나의 흉통이 고르게 조절되던 어느 날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그녀는 요정이 아니라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었는데도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잠 속으로 빠졌다가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처럼 다시 살아났다. 이것은 나중에 전흥규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의 전말이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신이 나에게 마련해 준 타협의 접점을 찾았다. 그녀가 생사를 넘나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심각한 고통이나 심각한 환희에 대해서는 설명할 길도 없을뿐더러 감정의 격한 분출은 용암의 분출과 달라 시간이 지나봐야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가끔 이렇게 엉뚱하게 해결책을 제시하곤 했다. 나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내 명줄이 훨씬 질기다는 것을 깨닫고 엉뚱하게 착잡한 생각에 빠져들었었다. 그런 나의 심중을 정리하는 작업과는 별개로 우선 민효가 돌아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라는 것은 어머니가 여행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간 후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우리 집 초인종 소리였다. 우리 집 초인종 소리가 새의 지저귐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몇 분간 귀를 막고 있었다. 강인은 집 열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초인종 소리를 기억해 낸 후에도 설마하니 강인이 벨을 눌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욕을 퍼부으며 현관으로 나갔다. 잠겨 있지도 않은 문 밖에서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려오자 더욱 화가 나 문을 활짝 열었다. 밖에 서 있던 강인은 문짝에 머리를 얻어맞지 않으려고 잽싸게 몸을 피했다. 그 바람에 그는 몸을 비틀거렸고 하마터면 안아들고 있던 커다란 꾸러미를 떨어뜨릴 뻔했다. 꾸러미라고 하는 것은 다름아닌 하얀 천으로 덮인 가냘픈 몸뚱이였다.
“문을 왜 발로 차고 지랄이야?”
“지랄? 욕 다했냐? 너 때문에 애 다칠 뻔했잖아?”
또 어디서 뭐하는 여자를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 참에 에이즈나 걸려 버리는 것도 그렇게 나쁠 건 없지 않을까. 강인은 팔에 든 가냘픈 몸뚱이를 한 번 추스리며 조심스레 비척비척 들어왔다. 뭐지? 아기 기저귀 같기도 하고 홑이불 같기도 한 흰 천으로 완전히 덮인 거대한 꾸러미는 아무리 봐도 여자가 틀림없었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강인은 나를 향해 태양처럼 환하게 웃었다. 임마. 누가 왔는지 똑똑히 봐.
홑이불 아래로 드러나보이는 작은 발이 누구의 발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모르는 누군가 발일 테니 상관없다고. 그러나 신발도 벗지 않고 마루로 올라온 강인은 자신이 들고 온 홑이불 꾸러미를 바닥에 소중히 내려놓았다. 그 안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사람은 민효였다. 아마도 영원히 잊어버리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잠시나마 못 알아볼 수 밖에 없었던 그녀였다. 한 순간 귀신 내지는 복제인간을 데려왔는가 하고 의심했지만, 귀신을 포대기에 싸서 들고 올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저렇게 완벽한 복제인간을 만들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 4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알고 있다. 게다가 흙이 잔뜩 묻은 발로 재채기를 하는 그녀의 몸뚱이는 피부색부터 손마디가 볼록 튀어나온 가느다란 손가락에 이르기까지 내가 익히 아는 그 몸뚱이가 아닌가. 이 몸을 다시 보고 다시 만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차후에 뒤따라와야 설명을 필요로 했지만, 그 당시에는 논리니 원인이니 결과니 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시계바늘이 방향을 바꾸어 빙글빙글 돌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바탕의 일장춘몽 끝에 나는 원점에 서 있다. 그런 착각 덕분에 나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세상에 이게 꿈이야 생시야’ 따위의 바보 같은 말들을 중얼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민효가 한 손을 내밀어 내 왼쪽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내 심장 잘 있었어?’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너무 늦게 돌아와서 미안해.”
깨어 있는 삶은 꿈보다 훨씬 덜 격렬했다.
뻥 뚫린 구멍 대신 얌전히 옷 속에 감추어진 그녀의 가슴이 그 증거였다.
깨어 있는 삶이 꿈에 대한 해석이라면, 꿈은 깨어 있는 사람보다 훨씬 친절했고 다분히 논리적이었다. 최소한 꿈 속에서 자신의 심장의 안부를 내밀며 손을 내밀었던 민효, 가슴에 구멍뚫린 민효는 내가 현실에서 그녀에게 기대했던 상황이 어떤 것인지 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고, 극적이지만 진심어린 이별과 재회의 아픔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세상에 죽었다고 믿었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와 자신의 품에 안기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극히 드물 터이니, 그들이라면 내가 내 감정을 어떻게도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리라 믿고 나는 내 모든 충격을 생략한다. 단지 나는 충격 때문에 미쳐 버리거나 기절하거나 강인과 민효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게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는, 강인보다 오히려 내가 더 냉정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잠든 그녀를 쳐다보며 나는 강인에게 모든 사건의 전말―내 사랑이 살아서 돌아온 혹은 되살아난 연유―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대답 대신 강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배 고프지 않아?”
배는 고프지 않았다. 아마도 내일쯤에는 배가 고프겠지. 강인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민효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큰일났을 뻔했어. 이 녀석, 네가 자기 심장만으로 살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알고 돌아왔나 봐.”
강인은 내 눈 속에서 뭔가 자신이 읽을 수 있는 것을 읽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보다 냉혹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면, 난 이게 어떻게 해서 벌어진 일인지 알아야겠어. 도대체 심장 이식 수술이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단 말이야? 그게 아니면, 내게 이식된 심장이 민효의 것이 아니었단 말이야? 도대체 작년에 죽은 애가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면, 초자연적인 무슨 힘을 빌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너 그런 생각까지 할 만큼의 판단력이 있긴 한 거야? 이게 오늘 오후까지 약에 취해 병든 닭같이 자던 사람의 사고능력이라니. 놀랍지만 어이없는데.”
그러고 보니, 강인이 겪고 있을 심리적인 동요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나와 똑같은 종류의 흉통과 내가 알지 못할 흉통을 똑같이 겪어 있었다. 어릴 때 이미 폐색이 이루어졌다는 그의 심장 속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감정의 이지러진 곡선과 이성의 불안정한 직선이 맞닿는 접점이 있었을 것이다. 나보다 20분 일찍 태어난 그는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끝까지 20분만큼의 정신연령을 앞서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름 그대로 강인한 그의 인내심은 20분 이상의 것이며, 그가 남들 몰래 겪는 흉통은 자연폐색된 결손 이상의 고통이다. 그것이 내가 그를 존중하는 이유이고, 그를 위해 내가 나를 희생했던 이유이다. 나는 천사가 아니므로, 강인을 위해 내가 포기해야 했던 내 사랑을 아직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흥분한 나를 냉정히 달래며 언제나처럼 웃음을 잃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의 ‘어이없다’는 표현에 내가 겸연쩍어할 틈도 없이 강인은 덧붙였다.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은, 설명해 줄 사람은 단 사람 밖에 없어. 전흥규 교수님을 찾아야 해.”
그래서 나는 전흥규 교수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매우 힘들었지만, 기어코 그를 찾아냈다. 전 D의과 대학 흉부외과 교수이자 심장 전문의. 민효를 잃고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시간을 고통에 떨던 내가 퇴원하기 무섭게 병원에 사표를 내고 개인 병원을 차린답시고 시골로 들어가버린 무책임한 양반. 그러나 그렇게 매도할 수만은 없다. 최소한 내 목숨이 이 세상에 붙어있게 해 준 은인이고, 지금으로서는 내게 민효를 되돌려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는 장본인이 아닌가. 그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외진 곳에 숨어 있었다. 그래도 호구지책을 바꾸기에는 그의 의사로서의 세월이 너무나도 길었던 듯, 그는 결국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심장병보다는 훨씬 가벼운 종류의 병을 다루고 있었다. 그다지 변하지 않은 그의 외모를 보며 나는 그에게서 묘하게 아이러니한 격세지감을 느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 론, 적, 으, 로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고 있는 거지?”
그의 외모에 나타난 유일한 변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 옛날 그토록 신경질적이던 눈매가 지금은 한결 부드러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민효가 내게 찾아와서 심장 이식 수술이 이론적으로 가능한지 묻던 게 생각나는구나. 그 아이의 심장은 이론적인 걸 따지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야?”
민효는 이론 운운하는 걸 좋아하는 계집애가 아니다.
“심장 이식 수술.......처음부터 없던 일이었던가요?”
전 교수는 고개를 힘없이 내저였다.
“그럼 뭡니까? 심장 이식 수술이 엉터리가 아니었다면, 민효가 죽었다가 살아난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느냐고요.”
전 교수는 몇 번 고개를 내젓다가 이윽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양심에 관계된 문제였어. 젊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죄 없고 건강하고 더구나 똑같이 젊은 다른 목숨을 희생시킨다는 건 도저히 내 양심이.......”
나는 부아가 나는 것을 참으며 그의 말을 들었다.
“민효가 죽었던 건 단 몇 초 뿐이었어. 그 아이의 심장이 네 가슴 속에 들어가기 위해 들어내어졌던 바로 그 몇 초 동안 말이야.......”
“전 교수님! 아직 제 말뜻을 못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말 빙빙 돌리지 마시고 제대로 설명하시죠?”
내가 윽박지르다시피 그에게 재촉하자 눈을 감은 그는 본래의 날카롭고 유능한 의사 특유의 말투를 되찾았다.
“무례하게 굴지 말게, 강윤 군! 그럼 자네는 자네 심장이 가슴에서 끄집어내어진 뒤에 그냥 그대로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하나?”
전흥규 교수의 말은 전혀 믿을 게 못 된다. 그러나 이미 복제인간을 생산해내고 있는 이 시대 과학기술의 실태를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의 말을 빌면, 그리고 그의 말을 믿는다면, 국내 최초의 ‘심장 바꿔치기 수술’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된다. 전 교수는 더 이상의 설명을 일체 거부했다.
“이 나라의 언론은, 한 마디로 살인자들이지. 그래서 진실은 은폐되어야 해.”
그러니까, 심장을 서로 바꿔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리에 이루어졌다고 신문에 실리기라도 했을 때 일어날 파장의 심각성을 우려한 그는 입을 닫아걸어 버린 것이다. 그는 현명하기도 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비범한 사람이었다. 심장 이식을 성공적으로 해 낼 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은 아니다. 진실을 은폐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그토록 간결하고도 정확한 수사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쓰레기통에 들어갔어야 했을 심장들도 능히 개조해서 재활용했을 법하다. 아니 개조하지 않았다 해도 상관없다. 난 내 병든 심장으로 숨을 쉬고 있는 민효를 위해 내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자, 자. 소꿉놀이 시작해야지?”
강인은 어디에서 얻었는지 여자용 로션이며 립스틱 아이섀도 등등의 샘플을 잔득 얻어왔다. 기억난다. 몇 년 전, 화장을 하고 있던 민효를 보며 강인은 ‘소꿉놀이 하냐?’라고 농담조로 물었다가 민효에게 팔을 꼬집혔었다. 그처럼 떠올려보면 사소하지만 즐거운 기억들이 하나 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동안, 교향곡 X+1번 <애도>는 옛날에 일어났던 민효와 나 사이의 설명불가능한 기억의 복제 현상을 인식하게 했다. 그 덕에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보다 훨씬 전, 나는 민효에 대한 사랑을 그녀의 환상적인 목의 곡선에 대한 사랑으로 돌려 버리려 하기도 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나의 사랑은 항상 이렇게 직선적인 성향보다는 곡선적인 성향에 훨씬 많이 관계되어 있었다. 어그러졌든 어쨌든 나의 곡선은 항상 내 가슴의 통증을 자극하는 신경과 접점을 이루고 있었다.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고정된 몸으로 누워 있던 민효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도 잊지 않았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던 기억들을 아직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아직도 나와 민효가 서로의 생명의 구심점을 서로에게 선물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비록 우리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해도 말이다.
사실은 전흥규 교수의 고백을 그의 표현대로 은폐시키고 싶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가 한 말의 일부를 옮길 필요를 느낀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양심에 관계된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자네 아버지 강태규 박사가 내 계획에 반대했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그는 민효가 살아나는 걸 두려워했던 거야. 하지만 생각해 보게. 우리에게 시간이 있었겠나?
없었을 것이다. 점점 떨어지는 혈압. 째깍거리는 시계. 일 분 일초를 다투는 순간, 최악의 경우는 두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어느 쪽이든 한 사람은 살아야만 최소한 밑져야 본전이었고, 상대는 한 사람의 아들이고 한 사람의 친구의 아들이고 한 사람의 친구의 친구의 딸이고 아들과 딸 사이의 관계를 알아버린 지금에 와서는 딸 이상의 관계인, 그런 두 사람이었다. 그들에게는 신중한 선택을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시간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무대포로 자신을 내던졌던 민효와는 달랐다. 다시 전흥규 교수의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그에게 양심의 가책 때문에 목숨을 희생할 가치가 있느냐고 물었지. 그는 고개를 내저었어. 하지만 민효는 죽었어. 내가 있는 힘을 다해 살려내려고 쓰레기통에 들어갈 자네 심장까지 동원했지만 그 애는 죽었다고. 뇌사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숨이 끊어져서 며칠이나 영안실에 있었단 말이야. 알고 있겠지만 난 그 아이의 시신을 그냥 매장하거나 화장할 생각이 없었어. 그러기에는 그애 몸 속에 넣고 잠근 자네의 심장이 지닌 의학적 가치가 너무 귀중하잖나? 그래서 꺼내놓았지. 그애는 눈을 떴어. 난 겁먹지 않았네. 대낮이었고 밖에서는 간호사들이 왔다갔다하며 왁지껄하게 떠들고 있었고. 게다가 깨어나자마자 ‘아직도 사랑해요.’ 라고 말하는 애틋한 아가씨 귀신이라면 굳이 있지도 않은 공포분위기를 만들래야 만들 수도 없고. 그리고 내 옆에 있던 인턴들이 멀쩡히 그애를 보고 있었지. 난 그들에게 그게 사실은 시체였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말을 꾸며대느라 진땀을 흘렸어.
나는 아직도 소리내어 웃을 용기가 없다. 눈을 감으면 사라질지도 모를 신기루 원소들의 교집합과 다름없는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나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풍선껌을 씹는 그녀의 미지근한 체온은 현실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되살아난 그녀의 체온은 이전보다 훨씬 차다. 손만 잡아 보아도 느낄 수 있다.
“난 살아나지 않으려고 했어.”
그녀는 눈을 감고 땅바닥에 뺨을 댄 채 중얼거렸다. 깨어나자마자 ‘아직도 사랑해요’라고 말했다는 그녀는 자신의 말에서 목적어를 생략했다. 도대체 무엇을 사랑했다는 걸까? 그녀는 가끔 그렇게 교활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살아났어. 머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지. 그 다음에는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어. 난 모든 걸 잊어버리려고 1년 이상의 시간을 죽은 채 보냈어. 하지만 돌아왔어. 수술 이후에 우리들 사이에 어떤 자기장이 생겨난 건지도 몰라. 돌아올 용기가 나지 않아서 K클럽으로 가야만 했어. 아직도 강인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어.”
슬프다. 1년 이상을 링겔에 몸을 맡기고 잠들어 있었는데도, 아직도 그녀는 강인에게 품고 있는 사랑과 원한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녀의 육체는 끈질기고 강인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버렸다. 중요한 건 민효의 숨결이니까. 그녀의 귀에서는 끊임없는 진물이 흐른다.
“용환이에게 다시 기타를 치지 않겠다고 했어?”
살아서 돌아온 민효를 보았을 때, 경악하던 이용환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단순한 경악이 아니었지. 그의 경악은 강인의 경악이나 나의 경악과 얼마쯤은 유사한 성질의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후 그가 민효를 바라보는 눈빛은 솔직히 나로서는 참기 힘들다.
“용환이가 아니라 칠득이한테 그렇게 말했지.”
“그래?”
그녀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다시 기타를 쳐 봐. 강인처럼 인생에 악착같이 매달려 봐. 우리들 가슴속의 구심점은 고정되어야 해. ”
“너도 드디어 수학적인 사고에 눈을 뜨기 시작했구나.”
“그건 엉터리 농담일 뿐이야. 강인의 노래도, 너의 그 바보같은 발상들도 한갓 엉터리 농담일 뿐이었어. 하지만 네 덕분에 난 도망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도망쳐 보았어. 사실은 영원히 도망쳤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지만, 고마워.”
“그래서 날 이용해서 강인한테 엉터리로 보복했어?”
격분한 나는 민효의 어깨를 찍어 눌렀다.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찢어지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놓아 줘!”
나는 분홍색 속옷을 헤쳐내고 그녀의 가슴을 열었다. 뽀얀 젖가슴 아래로 길게 난 절개선, 내 가슴에 난 두 개의 절개선과 똑같은 흉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접점의 실체다. 우리가 맞바꾼 것은 살과 피가 아니라 힘차게 운동하는 질긴 근육덩어리였다.
잃어버린 시간 동안 쌓아올린 원한과 분노들이 고개를 쳐든다. 나는 탐스러운 분홍빛 젖꼭지를 입 안 가득 깨물었고 민효는 새의 울음소리 같은 신음소리를 냈다. 내 작은 새가 수치심에 몸을 떨든 모멸감에 얼굴을 붉히든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내 품에서 작은 날개를 파닥여 주기만 한다면. 내가 인생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방법은 따로 있다.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돌아왔다.
“널 사랑하지 않은 게 아냐. 이렇게 말하면 날 비난하겠지. 하지만 잊지 말자. 우리들의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운명이라면, 그 방향이 가리키는 대로 가자. 나는 강인, 너는 나. 우리가 맺고 있는 각은 더 벌어질 수도 더 좁혀질 수도 없어. 어쨌든 우리들 속에서 내접원(內接圓)은 존재하고 있는 거니까. ”
어쩐지 또 다시 널 잃을 것 같아. 민효는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웃는다. 그녀는 더 어려 보이기도 하지만 더 늙어 보이기도 한다.
“잊었어? 내가 너 때문에 한 번은 살아났다는 거? 두 번은 살아나지 않아.”
나 역시 그렇다. 그것은 우리 둘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강인에게조차도 해당되는 경고이고 맹세이다. 매번 암묵적인 약속을 깰 수는 없으니까, 우리들 모두가 다 같이 접하는 꿈의 접점에 대한 해석은 항상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시계바늘이 숫자판 바깥으로 달아나는 일은 한 번으로도 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