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 바 Ⅱ
유리 깨지는 소리가 맑고 날카롭게울렸다. 누군가가 유리잔을 깬 것이다. 필시 유리잔 안에는먹다 남은 따뜻한 혹은 차가운 커피가 절반쯤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쯤 되면, 실내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대수롭지 않게’ 유리잔을 깬 당사자에게 돌아갈 책임에 대해 조금은 측은해하며 자신들의 대화에열중할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는 그렇게 한가로이고개를 돌릴 계제가 못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리잔을 깬 당사자는 다름아닌 나였으니까. 발치에 산산조각이 난 채 널브러진 유리 조각을 망연자실하며 바라보는 사이 아르바이트 생임에 분명한 긴 생머리의아가씨가 다가왔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유리잔을 깨기라도 한 것처럼 미안해하며 빗자루로 유리 조각을쓸었다. 덕분에 나와 그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분명 유리잔과 커피값을합친 것보다 많았음에 틀림없을 정도의 돈을 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지갑에 돈이 많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나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놀랍고, 황당무계하고,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해서 내가 실수가 아닌 경악 때문에유리잔을 떨어뜨리게끔 만들었던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전에는 결코 페이 바에서 나갈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돈이문제가 아니었다. 행여나 그 아르바이트 생이 유리잔을 깼다는 이유로 불만을 품고 나를 쫓아내려 한다면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문제니까.
그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음에도불구하고 그는 그 사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그에게 의심을 품기까지 했다. 그가 혹 그녀를 죽여서 학교 뒷산에 숨긴 것이 아닌가?.......그러고도뻔뻔스럽게 도망치지도 않고 시침을 떼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러나 그가 내 생각보다 더 뻔뻔스러운사람임을 깨닫고 나자 그에게 대한 의심이 사라져 버렸다. 다시 말해 나는 그가 사람을 죽일 이유가 없는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똑똑했다.
우리는 작년에 우리들의 모교, 즉 K대학교 학생이었던 여학생 C가실종되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C가 실종되기 전에도 이 학교 학생들은 강력 범죄에 희생당하기도하고 교통사고로 죽기도 하며 여럿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C처럼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 예는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목격자조차도 분명치 않을 정도로 말이다.
C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그 사건에 대해 내가 관심을 갖게 된이유는 따로 있었다. C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 전, 나와그가 앉아 있는 이 곳 페이 바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목격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한 한때 C와 연인이었다가 그녀가 실종되기 얼마 전에 그녀를 매몰차게 차 버림으로써 그녀의 실종에 얼마쯤 원인제공을 했다고여겨지는 A가 학교를 자퇴했다. 반대로 C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녀를 꽤나 귀찮게 굴었지만 자신의 판단 기준에서 스토커가 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는 B는 학교를 충실히 다니고 있으며 곧 졸업한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웬일인지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혹 공무원 시험 공부라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학교의 도서관이며 직영 운영 고시원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없었다. 그 얘기를 그에게 하자 그는 사람의 불쾌감을 묘하게 자극하는 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굳이 B를만나야 할 이유가 있어?”
“오래 전에, 그러니까 C가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나서 얼마 안 되어 B를 만난 적이있었어요. 그때 B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려서 그래요.”
그때도 페이 바에서 B를 만났었다. B 역시 C가완전히 사라지기 며칠 전에 그녀를 이 곳에서 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어떤 낯선 여자와 앉아 이야기하고있었는데, 그 여자는 무척 못생기고 지저분하고 게다가 인상까지 나빴다는 것이다.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을 거예요. 최소한 C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예요. B는 탁자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그 순간 그가 C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아 버린 나는 그를 어떻게달래야 좋을지 몰라 몹시 당황했었다.
“아, 그런일이 있었군.”
“그러니까 아까 오빠가 한 그 황당한 말을 믿느니보다는차라리 B의 말을 믿는 편이 낫겠다는 뜻이에요. ”
편의상 나와 마주앉아 카푸치노를홀짝이는 그를 H라고 해 두자. 가정대를 졸업한 내 친구의선배였던 H와 만날 약속을 하기에 앞서 나는 만날 장소를 고르느라 애를 먹었다. 학교 앞에서 만나자는 데야 별다른 불만이 없었지만 하필이면 페이 바라니! 사실나는 페이 바와 같은 커피숍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만나 C에 대한 대화가 한참 진전되고 나서야 나는 그가 약속 장소를 페이 바로 잡은 이유를 알았다. C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페이 바였던 것이다. 내가만난 목격자들이 한결같이 ‘페이 바’를 마지막 장소로 지목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조금 전에 내가마시던 캬라멜 모카가 담긴 유리잔을 깨뜨렸느냐 하면.......하느님 맙소사! 그는 물리학과 학생이고(내 친구의 선배라 하여 가정대 학생으로 오해하신분들이 없으시길. 그는 설명하자면 동아리 선배였다), 세상의모든 현상을 과학의 테두리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고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종교나 심령술 따위는허황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이 아주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내게, ‘C는 아마 물고기가 되었을 거야’라고 단언하다니, 이거야말로 맙소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농담하는 게 아니에요’라는내 말에 그는, ‘나도 농담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했고, 곧이어내 쪽으로 몸을 구부리며 속삭였다. ‘나는 그녀가 횟집에서 살해당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컵까지 깰 줄은 몰랐는데.”
그는 싱글싱글 웃었지만 나는 화가났다. 그는 갑자기 웃음을 자신의 얼굴에서 흔적도 없이 걷어내고는 손에 들고 있던 빨대로 탁자를 툭툭치며 재빠르게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누군가를 상대로 말을 하다 보면 자신의 말에 자기가 빠져들어버리는 예의 ‘나르시스트’와도 같은 괴벽이 있었는데, 아까도 그 같은 괴벽에 한참 시달린 뒤끝이라 가급적긴 얘기가 아니기를 바랬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지도 몰라. 어쩌면 C와 이야기했던 그 여자가 그 교통사고 이후 머리가 헷가닥돌아버려서 그런 얘기를 꾸며낸 건지도 모르지. 사실은 말이야. 내가그 여자를 본 적이 있어. C의 실종신고가 경찰서에 접수되고 수사를 시작했을 무렵이니까 아마 11월쯤 되었을 거야. 저쪽 은행 뒷문으로 통하는 복도 알지? 은행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나올 때 저 뒷문으로 나왔더니 뜻밖에도 A가있더란 말이야. 그래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이봐, A!’하고 부르면서 그에게로 다가려고 하는데, 어떤 여자가 A를보더니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멈춰 서더란 말이야. 물론 A 역시천천히 로비로 걸어나가다가 그 여자를 보고는 멈춰서더군. 그 여자는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A를 보자마자 팔짱을 끼고는 아주 밉살스럽게 ‘저 도로에서 내가 C를죽였어요.’ 하고는 가 버리는 거야. 무슨 소리인가 싶어잠깐 헷갈렸지. 그 동안 그 여자는 가 버렸고 A는 그 여자를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왔던 길을 계속 가더군.”
나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A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나는 그가 A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자체가 금시초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다같은 학교의 동창생들 아닌가.
“그래, A가뭐라고 하던가요?”
“몇 번이나 A를불렀는데도 못 들은 척 그냥 가잖아. 어깨를 쳤더니 그제서야 돌아보고는 ‘아, 형?’하고 놀란 표정을 짓는데 보니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더군. 그래서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내 목소리를 못 들었던 거지. 녀석에게아까 그 여자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전에도 몇 번 봐서 낯이 익은 여자지만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요. 아마 C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아요.그런데 나만 보면 인상을 찡그려요. 나도 그 여자가 기분 나쁘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더군. 그 여자가 무슨 말 하는지 들었느냐고 물었더니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거야. 음악 듣느라 아무것도 못 들었다나. 그래서그 여자가 C를 죽였다고 하던데 그 말을 못 들었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그제서야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묻는 거야. ‘그 여자가 C를 죽였다고요?’ 그래서 내가 다시 길 건너 편의점 쪽을 가리키면서, ‘저기 저도로에서 죽였다잖아.’하고 말하니까 완전히 쇼크를 먹은 눈치더군. ”
“그 여자가 농담으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오빠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고요.”
“이봐, 그얘기를 나만 들은 게 아니야. 다른 사람도 다 들었다구. 다만그 여자가 범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건 말이야. 작년 10월에서 11월 사이에 저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여자를 선뜻 범인으로 단정짓지못하는 거야.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는 10월 24일에 교통 사고가 한 건 있었다고 해. 어떤 여자가 저 횡단보도에서차에 치였다는데 그리 대단한 부상은 아니었다나. 하지만 확인 결과 그 여자는 C가 아니었다고 하더군.”
“그렇겠죠. 그여자가 C였다면 여지껏 행방이 묘연할 리 없어요.”
“글쎄. 어쨌든소문이 분분해. 과연 C는 어떻게 된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그들의 친구들을 통해서 들은 바에 따르면 A는 C와 굉장히 복잡한 관계였던 모양이야. B는 아까도 말했지만 C를 무척 좋아하면서도 선뜻 그녀에게 손을 내밀 생각은 못하고 있었고. 그런데 A가 C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를 일방적으로 내쳐 버리고 나서그녀가 사라졌다더군. 그래서 말인데, B나 A가 그녀를 죽여서 사체를 어딘가에 유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그 두 사람을 다 조사해 보았는데 둘 다 알리바이도 충분해. 무엇보다도 살인을 하기에는 지극히 정상적인의식의 소유자들이었거든. B는 애가 타서 A와 친구들에게 C의 소식을 묻고 다녔고, 나한테도 ‘C가 없어져서 애가 탄다’며 눈물까지 보였는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지는 않더군. 반대로 A는 한사코 침묵을 지키는 게 수상해서 왜 그러나 했더니, 속으로는 C의 가출에 대해서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놓았어. C가몇 번이나 울며불며 찾아왔지만 매정하게 내쳤는데 그걸 후회하진 않지만 그 때문에 C가 가출했을지도 모른다고생각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그녀가 가출한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녀의 친구들로부터들었다더군. 가족들이 찾고 있다고. 그래서 C의 가족 관계를 캐 보았는데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어. 그녀의 부모가친부모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그 양부모들에게도 혐의를 부여해 보았지만 경찰 말로는 알리바이가 없는건 물론이고 그 양부모가 딸을 그리 귀여워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살해할 이유도 없었다더군. 시쳇말로생명보험에 가입해 두었던 것도 아니고.....아니, 여하간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야. 나는 그녀가 물고기가 되었다는 것도 확신하고 A에게 빈정거리던 그 여자, 손에 붕대를 감고 있던 그 여자가 C를 죽였다는 것도 확신해. 내가 말한 10월 24일의 교통사고 말인데, 그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C가 아니었다면 누구였을 것 같아?”
“C를 죽였다고한 그 여자죠?”
“역시 판단이 빨라.맞아. 그 여자야. 그 여자에 대해 좀 알아보고싶었지만 의외로 알려진 게 없더군. 최근엔 대구를 떠났다고 들었어. 어쨌든 C가 실종되고도 한동안 여기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 더구나어떤 여자랑 같이 앉아 이야기하는 걸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상착의라든지 그 외에 여러 가지를종합해 보아도 C를 죽였다는 그 여자가 분명해.”
나는 나도 모르게 안온한 분위기가감도는 실내를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맞은편 탁자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그리 닭살스럽지않은 태도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뒤에는 교수님으로 보이는 두 중년 남자와 한 중년 여자가 띄엄띄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으며, 그 옆 자리에는 스터디 그룹으로 보이는 일단의 학생들이 주위가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떠들썩하게 저마다 다른 컵으로 커피며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저 자리 중 하나에 C와 C를 살해했다는 그 여자가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느닷없이 소름이 끼쳤다.
“it's mybig secret........"
잘 알지도 못하는 음악들이 흘러나오다가갑자기 이 구절이 귀에 들어온 순간, 나는 내가 내 귀에 익은 음악을 듣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피오나 애플의 ‘slow like honey'였다. H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느라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H는얼음 때문에 묽어진 파인애플 주스를 천천히 마시며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음악 좋네.slow like honey, heavy with mood.....아아아......”
그 굵은 목소리를 여자처럼 가늘게높이며 후렴까지 따라부르는 그가 우스웠다. 그러나 그 가녀리고 높은 여자 목소리를 흉내내는 그의 목소리때문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쓸데없이 남의 노래 따라 부르지 말고 그 얘기나 계속해봐요.”
“별로 듣고 싶어하는 눈치가 아닌데 계속해야 하나?”
“어쨌든 C가어떻게 되었을지 나도 좀 추측해 봐야 하잖아요?”
H는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흐트러진생각을 가다듬는 모양이다. 그는 한 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녹음된 테이프을 틀어놓은 것처럼 끊임없이말을 하지만 일단 생각의 가닥이 끊어지면 그 끊어진 생각을 자신의 마음에 맞게 정리할 때까지는 입을 열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한 마디로 얘기해서, 그는 즉흥적으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재주가 없었다. 갑자기 그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쥬스잔을 쟁반 위에 소리내어놓았다. 미끄러운 쟁반 위에 놓인 쥬스잔이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그는 투덜거리며 쟁반을 옆으로 밀쳤다.
“주인한테 말해서 쟁반 좀 옆으로 밀쳐 달라고 해야겠군. 그나저나, 그 사건 기억해?1990년도에, 저 뒷산에서 있던 어린이 실종 사건 말이야. 그......”
“아, 그사건요.......”
적어도 나이가 스무 살 이상인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사건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바로 K대학교를 중턱에 끼고 있는 산을 포함한 여러 개의 산이 만든 작은 산맥으로 이루어진 W산에서 초등학생 다섯 명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된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1990년 봄 사라진 그들은 13년 후인 작년 가을 무렵에 시신으로 발견되기까지 수많은사람들의 궁금증과 억측 그리고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사람들은 인근에 있던 군부대를 의심하기도하고, 아이들이 어떤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 살해당했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일대를 떠돌던 정신병자의 소행이리라고 단정하기도 했다.결국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채 애꿎은 아이들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 사건이었다.
“그 사건하고 C가사라진 게 관련이 있다는 거예요?”
“직접적인 연관이야 없지만, 적어도 실종되었다는 점에서는 똑같잖아?”
“그래서 C의시신도 13년 후에나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건가요? 죽었는지살았는지 아직 모르는데도?”
“C는 죽었어. 확신해.”
“그래요. 그여자가 C를 죽였다고 쳐요. 하지만 증거가 어디 있어요?”
“그 여자가 차에 치였을 때, 그 여자가 들고 있던 물고기도 차에 치였다고 했어. 아마 그 물고기가 C였을 거야.”
“말도 안 돼요.”
“A와 C가 자주 가던 횟집에, 한동안 C혼자 드나드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어. 그 횟집이 어딘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네. 성서시장골목에 있는 그 횟집 말이죠? 얼마 전에 그 주인이 살인죄로 구속되었다는 그 횟집 맞죠?”
그 횟집의 주인이 살인범으로 구속되는통에 그 횟집 역시 매스컴을 탈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내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간판을 내린 뒤였고 건물역시 폐쇄되어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그 횟집 주인D가 C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순히 C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에 대한 혐의를 거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뭐랄까, 여자의 직감이라고나 할까.D가 C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D가 C를 죽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횟집 주인이 식인 물고기를 키우고 있었다는 소문이있었어.”
그 때, 우리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손님들이 우리 얘기를 들었는지 우리를 흘끔 쳐다보았다. 연인들이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언제 가셨는지 연인들은 자리를뜨고 3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와 그 또래의 두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려 우리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나는되도록 그들을 무시하려고 애썼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H의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황당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따분한 얘기는 아니었다.
“지금 날 놀리는 거죠?”
그러나 그가 이런 자리에서 날놀리는 데나 시간을 쓸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내가 더 잘 안다.
“나도 잘 몰라. 어디까지나소문이야. 다만, 그 횟집 주인 D가 손님들에게 내놓을 횟감을 키우면서 몇 가지 다른 종류의 물고기를 키울 수 있다는 건 그다지 이상할 게 없지. 단지 식인 물고기를 키우고 있었다면 그건 문제가 돼. 법으로 금지되어있으니까. 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그 D가 C를 토막내서 고기 밥으로 줬다 이거죠?”
내 말이 우스워진 나는 킬킬 웃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전혀 웃을 일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누군가의손에 살해되어 토막이 나 식인물고기의 밥으로 던져졌다고 상상해 보자. 그래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많지 않을 것이다.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나는얼음만 남은 빈 주스잔을 열심히 돌리는 H를 위해 따뜻한 커피를 새로 주문했다. 옛날 내가 이 학교에 재학중이던 시절 이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은 노란 염색을 한 아가씨였는데, 지금은 검은 생머리를 한 키가 큰 아가씨다. 하기야 아르바이트 생이자주 바뀌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쩐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란 염색머리와 검은 생머리사이에서 묘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그랬을 수도 있지만,그러지는 못했을 거야. 막말로 D가 자기 집에들어오는 손님을 아무나 골라잡아 고기 밥으로 줬다면 아마 그 횟집은 애진작에, C가 사라지기 훨씬 전에간판을 내렸을 거야. 게다가 식인 물고기 중에는 살아 있는 사람만 뜯어먹지 절대 죽은 지 5분 이상 경과한 시체는 먹지 않는 물고기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 좌우지간, 전에 그 횟집의 단골이었던 사람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대. 그날따라회가 몹시 먹고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 10만원어치나 넘게 먹었는데,D가 매상을 많이 올려줘서 고맙다면서 어떤 희귀한 물고기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나. 마다할이유가 없는지라 ‘그러죠’ 하고 쉽게 승낙했는데, 막상 보여주는 걸 보니 기막히게 예쁜 물고기였다더군. 대체로 파란 빛을 띠고 지느러미가 노란색과 보라색을 띤 물고기였는데 아주 작더라나 뭐라나. 어찌나 이쁘던지 그때 그 물고기를 같이 본 친구들 중 한 사람이 그 물고기를 사겠다고 하면서 이름이 뭐냐고물었더니.......”
“물었더니.”
“C라고하더라나?”
내 손에 들려 있던 종이 컵(다시 내가 컵을 깨리라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종업원이 테이크 아웃용 종이컵을 가져다 주었었다)에서 커피가 쏟아졌고 나는 황급히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어 손과 탁자를 닦았다.다행히 많이 엎지르지는 않았고 아르바이트 학생도 눈치채지 못한 듯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탁자에쏟아진 커피를 닦아내는 나를 거들며 H가 말했다.
“이럴 줄 알고 종이컵을 가져다 준 모양이군? 그나저나 자꾸 왜 그래? 이래서야 농담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겠네.”
“농담이라고요?”
“미안해.”
“커피가 식었길래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오빠 때문에손에 화상 입을 뻔했어요.”
“미안하다니까. C였다는말은 진짜 농담이야. 그 앞부분부터 다시 시작할 테니까 용서해 줘.”
“또 이러면 정말 그냥 있지 않겠어요.”
C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갑작스럽게 소름이 좍 끼쳤기 때문에 순간적인 공포를 억제하지못했다면 발작을 일으켰을지도 모를 정도로 나는 내 행동의 제어력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그런 지경에까지이르지 않고 자리를 수습한 후 아까부터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녀들을 쳐다보니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H를주시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얘기를 계속해서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디까지 했더라? 참, 그래. 그 물고기를 본 손님들 중 하나가 그 물고기를 가져가고 싶다며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D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팔 수도 없지만 이름도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개량한 새 품종이거든요.’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당연히 놀랐겠지. 일개 횟집 주인이 이토록 아름다운 품종의 물고기를 개량해내다니 말이야. 그런칭찬을 들은 D는 ‘예쁘긴 하지만 위험한 물고기랍니다. 그래서팔 수가 없는 겁니다’라고 했다나. 그 손님이 끈덕지게 졸랐지만 D는끝끝내 승낙하지 않았다지.”
그의 긴 얘기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한숨이 나왔다. 피오나 애플의 음악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pale september. 지금이 9월도 아니거니와 봄에 듣기에는 너무 우울한 음악이다.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내고는 꿈쩍도 하지 않는 그의 뿔테 안경에 가리워진 눈을 보고 있자니 뭔가 모르게 미심쩍은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자리에 오빠가 있었던 게 아닌가요? 아니면, A나 혹시 C라도?”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내저었다.
“아니야. 하지만 A나 C가 같이 있었을 수도 있지.A가 그 집에 즐겨 갔다고 들었거든. 특별히 싸고 맛있어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법입소문이 난 횟집이었으니까.”
“그러면, C는그 횟집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C가 그물고기의 비밀을 알고, 먹이가 되기를 자청한 게 아닌가 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닌데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 허황한 일에 놀라다니! 이건 이 각박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인 내가놀랄 일이 아니다. 무슨 ‘공포특급’ 같은 괴담시리즈나 다름없는 만담을 듣고 놀라다니, 내가 너무 바보 같다.
“10월 24일에 교통사고가 났을 때, 그 여자가 손에 들고 있었다는 물고기가아마 그 횟집에 있던 물고기였을 거야. ”
“그러니까 오빠 말에 따르면 그 물고기가 C를 잡아먹은 물고기란 말이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오빠 말대로 진짜 그런 물고기가 있어서 C를 잡아먹었다고 쳐요. 그렇다고 그 물고기를 C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C를 잡아먹은물고기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C지.”
“이건 만화가 아니에요.”
“나도 알아.”
다시 대화가 끊어졌다. 시계를 쳐다보니 이미 6시가 넘어 있었고 창 밖으로 어스름한 어둠이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떴지만 우리 맞은편에서 우리 얘기를 듣는 남녀들은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H 역시 그들이 우리 얘기를 듣고 있음을 눈치챈 듯했으나 그가 어떤조치도 취하지 않았기에 나 역시 그들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고맙게도 이번에는 제법 진지한 태도로 다시 H가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에, 내가저 우리 학교 뒷산에서 실종되었던 다섯 아이들 얘기를 했었지?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가 되어 날개라도단 것처럼 표연히 사라졌다가 작년에야 돌아왔지. 이렇게 얘기하면 그 애들의 부모나 그 애들의 죽음을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그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 법의학자도 아니었고 사건 현장에 가보지도 못했지만 들려 오는 여러 가지 소문을 들으면서 그 아이들이 왜 죽었을지추측을 해 보았단 말이야. 그 애들이 죽었을 때 군이며 경찰들이 동원되어 그 애들이 사라진 산은 물론이고인근의 산까지 샅샅이 수색해 보았지만 그 애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지. 그런데 막상 찾고 보니 그애들의 주검이 묻힌 산은 수색했던 산과는 전혀 동떨어진 지역이었다고 해. 이게 과연 말이 되는 발상일까? 왜 경찰은 그 애들이 발견된 산을 수색하지 않았던 걸까? 단지 처음그 애들이 사라졌던 산과 너무 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 애들의 시신을 찾아냈을 때 모든 법의학자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 ‘이장했을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어. 그렇다면 누가 언제 그 애들을 처음 묻은 장소에서 그 장소로 옮겨 묻었을까? 그 애들이 묻힌 자리에 큰 돌이 있었다는데, 그 돌은 물리적으로한 사람의 힘으로는 옮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입증되었어.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공범이 있다는 거야. 그러나 단순히 개인이, 그리고 그의 절친한 공범이 저지르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한 완전범죄였어. 아무리어린애라고는 해도 한 사람도 아닌 다섯 사람을 감쪽같이 이장하는 작업을 한 두 명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해낼 수 있었을까?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볼 때 나는 그 애들의 죽음에 뭔가 더 큰 힘, 한개인의 사악한 마음보다는 더 큰 어떤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렇다면......”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열띤 목소리에는 어쩐지 나의 돌발적인 제지를 막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이거야말로 진짜 힘일지도모른다.
“그렇다면 왜 그애들은 살해당해야 했을까? 얼마 전, 그 애들의 시신을 부검하던 무렵 학교에 급하게 올 일이생겨 택시를 탔어. 택시는 그 애들이 죽은 저 산 중턱으로 난 도로를 타고 학교로 왔지. 학교로 오는 택시 안에서 무심결에 그 산을 바라보다 보니 저절로 그 얘기가 나왔겠지. 그 택시 운전기사는 아마도 어떤 다른 뒷심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렇게 얘기하더군. ‘1990년 무렵에만 해도 그 산에 토끼나 노루, 꿩 같은 게 심심챦게 많았다 아입니꺼. 밀렵군들이 그것들을 잡으려고노상 총을 들고 설치고 다녔으니, 혹시 그러고 돌아댕기다가 실수로 한 아아(아이)를 죽였을지 우예 압니꺼. 다른아들이 그걸 봤을 테니 입막음할라꼬 다른 아아들도 죽였을 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번쩍 나더군. 그래,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오빠, 우리가하던 얘기는.......”
“알아. 나도알아. 그러니까 끝까지 들어 봐.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개연성을 무시한 나머지 사건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경우를 매우 많이 보곤 하지만 정작 우리들 자신은 그걸 깨닫지 못하는거야. 그 애들이 죽었을 때, 사체 발굴 팀과 법의학 팀에서는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과 정황들을 밝혀냈겠지만 그걸 종합해서 어떤 사실을 유추해내지는 못했어. 오히려아이들이 조난사했느니 동사했느니 하는 엉터리 발표만 해서 국민들의 분노를 가중시켰지. 그들은 조용히사건을 마무리짓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거야. 헤집어서 좋을 게 없다는 게 일반적인 세인의 판단이겠지. 그애들이 조난사했다는 주장이 C가 물고기였다는 주장보다 백 배는더 허황한 주장인데도 말이야. 나는 택시 기사의 말을 듣기 전에 그 사건의 진상은 전혀 엉뚱한 사건이계기가 되어 밝혀져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어. 그 애들이 도토리 줍던 등산객에 의해 엉뚱하게 발견되었듯이말이야. 그러나 그 택시 기사의 어설픈 추측을 듣고 나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어. 우리는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미지의 단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찾아냈는데도 쓸데없다고 판단하거나 혹은 외면하고 싶어서 외면해버리는 단서로부터 진실을 찾아내는 게 아닐까. 하지만우리가 어떤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질 때는 잘 생각해 보면 그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어떤 다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는 거야. 밀렵꾼들의 오발이 무고한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택시 기사의 말은 충분한 개연성이 있어. 하지만 그건 어떤 큰 힘, 이를테면 공권력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내 상상에는 위배되지. 설령 둘 다 아니라 해도 진실은 추측에 가리워진 동시에 그 추측들을 마주보고있을 거야. 누가 죽였든 그 애들을 죽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입을 열지 않겠지. 그런데 너는 지금 C가 물고기가 되었을 거라는 내 말이 터무니없다고반박하고 있어. 개연성이 없기 때문이지? 물론 C의 실종 사건은 저 가엾은 아이들의 실종 사건과는 전혀 성격이 달라. 그애들은 말 그대로 희생당했지만 C는 희생당한 게 아니었어. 물론꽃처럼 연약한 여자였지만 그녀는 타인에게 희생될 사람이 아니었어. 자기가 희생을 자처했겠지. 아마 A를 곯려주기 위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그런 불필요한희생은 안 하는 편이 나았겠지. 산 위에서는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죽었고, 산 아래에서는 꽃다운 청춘이 애꿎게도 사라지다니 귀신의 저주를 받았나 싶기도 해.”
“오빠는 지금 오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거예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탁자까지 치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을 때, 내 측면으로부터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포착한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우리 얘기, 아니 정확히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한 남자와 두여자 중 한 여자가 뚫어져라 그와 나를 번갈아 쏘아보고 있었는데,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린 채망연자실한 사람 모양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내 시선이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얼굴에 집중되는 것을느꼈는지 보다 못한 남자가 그 여자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지만 그 여자는 벌렸던 입을 살짝 오므렸을 뿐, 여전히질린 표정으로 H의 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듯 그의 입만 쏘아보았다.
“우리가 이렇게 편안히 마주앉아 C의 얘기나 실종된 어린애들 얘기를 하고 있을 수 있는 건 우리가 그 사건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기 때문이지.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해도, 일부러라도 그 사건과의 연관성을만들어내서 자신을 개입시켜 보라구.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일이라도 그저 웃고 넘길 일로만 생각되지는않을 거야. 다시 C의 얘기로 돌아가지. 너한테 아직 하지 못한 몇 가지 이야기가 있어. A가 C와 한참 사귀던 시절에 C는 A에게자신은 물고기가 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해. 드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고 싶다고 말이야. 같이 물고기가 되어 바다로 가자는 말을 몇 번이나 농담처럼 했다지 아마. 나중에 C가 실종되고 나서 A가 내게 고백하기를, 처음에는 그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지만 나중에는 그 농담이 어쩐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는 거야. 왜 C와 헤어졌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민물에 들어간 조개마냥 입을꾹 다물었지만 나는 그의 고백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지. 적어도 C와 헤어진 이유에 대한 어떤 중대한 단서를 포착했다는 느낌이었어. 더이상한 것은 B인데, B는 그 말을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거야. B는 영리해서 그 말을 아무한테나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미쳤다고 간주할 게 뻔하니까. 그러니까 B가그저 C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콩을 팥이라 한대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멍청해져서 C의 말을 믿은 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C를 죽였다는 여자 말인데, 아주 어렵게 수소문해서 그 여자를 잘안다는 사람을 만나봤어. 그런데 그 사람 말로는, 그 여자는평소 괴짜였던 데다 연애에 실패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대단히 크게 좌절할 만한 문제가 있어 고통스러워하긴 했지만 정신은 말짱한 사람이고 장난으로라도사람이 물고기로 변한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아니라는군. 당연히 살인은 꿈도 못 꿀 사람이라고 잘라 말하는거야. 그런데 그런 여자가 백주대낮에 A에게 ‘내가 C를 저 도로(그는 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를 가리켰다)에서 죽였다’고 말했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사실이 하나있었어. C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 안되어 여자 후배랑 같이 커피를 마시는데 여자 후배한테 우연히 C에 관해 얘기하게 되었고, C가 자주 출몰했던 페이 바 얘길 하다보니자연스레 이 곳 얘기가 나왔겠지. 갑자기 후배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하는 말이. ‘페이 바 앞 8차선 도로 지금도 자주 다녀요?’ 그러기에 아무 생각없이 ‘넌 그 길 안 다니냐?’고 물었더니 그애가 이러더군. ‘언젠가 그 횡단보도를 건넜는데, 그 도로에내장이 다 터진 쬐그만 물고기 하나가 죽어 널브러져 있고 그 주위에 물이 흥건하게 괴어 있어서, 거기서끔찍한 악취가 나지 뭐예요. 얼마나 역겹던지 하마터면 토할 뻔했어요.지금도 가끔씩 지나다니긴 하지만 그 때마다 그 악취가 생각나서 그 자리 근처에 오면 눈을 감고 막 뛰어 건넌다니까요.’ 그 말을 듣고 웬만하면 눈뜨고 차 잘 보고 다녀라, 그러다 사고나면큰일난다고 충고하긴 했지만 속이 편치 않더라고. 그게 C였거나아니면 C를 잡아먹은 식인 물고기였을지 어떻게 알아? 생각같아서는 C를 죽였다는 그 여자를 찾아가서 직접 확인사살하고 싶지만 그 여자도 이미 먼 데로 가 버린지 오래라고 하고......”
그 순간 기괴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사람이 숨을 급하게 들이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거기에 경악하는 사람의 짜내는 듯한 비명까지 한데 섞인소리였다. 게다가 그치지도 않고 몇 초에 걸쳐 숨가쁘게 이어졌다. 소리의진원지는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우리 얘기, 아니 그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던 세 남녀 중 얼굴이 하얗게질린 채 그를 뚫어져라 쏘아보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 여자는 가슴에 손을 대고 자신을 진정시키려고애쓰면서 옆에 앉은 남자에게 몸을 기댔고 남자는 당황한 나머지 ‘왜 그래? 왜 그래?’만 연거푸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주앉아 있던 다른 여자가 급히 일어나그녀의 팔을 잡으며 ‘괜찮아? 진정해’를 연발했다. 숨이넘어갈 듯한 여자는 헐떡거리면서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일행인 여자가 그녀의 몸을 앞으로구부리고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진정시키자 그녀는 조금 평정을 되찾았다.
그 동안 그와 나는 옆에서 벌어진뜬금없는 사태에 놀라 언제라도 일어날 태세를 갖춘 채 놀라 그들을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카운터에 서서주문을 받던 아르바이트생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쪽을 쳐다보면서도 이쪽으로 오지는 않았다. 새손님이 카운터로 다가가 무엇인가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우울한 피아노반주가 귀를 괴롭혔다. <slow like honey>의 전주 부분이었다. 제목 그대로 벌꿀처럼 끈적하고 달착지근하고 한없이 느렸다. 문득나는 피오나 애플의 음반이 끝까지 다 돌아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두 번째 <slow likehoney>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음악의 반복은 실종된 사람에 대한 상상의 반복이다. 도망치는 인간과 쫓아가는 인간의 비애 사이에 쐐기처럼 박힌 부채꼴의 각도를 재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부옇게 흐려져오는 눈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끝으로 슬쩍 닦았다. 아, 아, 아아. 피오나의 목소리는 목소리라기보다는 거의 탄식에 가깝게 들렸다. 발작을일으킨 여자는 그 탄식에 박자를 맞추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Gonna hover over yourlife.......벌꿀처럼 느린 음악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동안 내가 일으킬 뻔했던 발작과는 비교도 안 될 진짜 발작을 일으켰던그녀의 터져나갈 듯이 불규칙하던 호흡은 다소 정상적인 주기를 찾았다. 마침내 끝을 맺는 피아노 후렴부가울려퍼질 때 그녀는 가냘픈 목소리로 나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죄송해요......제가, 제가 C를 죽인 진짜 범인이에요.......땅바닥에나뒹굴고 있던 C를, 제가 그만 치어 버렸어요.......”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그날 대학원 학사행정실에 볼일이 있어 차를 교내 주차장에 세워두고 대학원을 향해 걸어가던 그녀, G는 페이 바와 복사실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은행 앞에서 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웬 여자가 은행 앞으로 난 8차선 도로 맞은편에서 차도에 내려선채로 뭔가를 던지려고 팔을 치켜든 순간 그 순간 급속도로 달려오는 차에 치여 공중에 날아올랐다가 떨어졌는데 그 순간 그 여자의 손에 들려 있던그 어떤 것도 공중을 한 바퀴 휙 날고는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햇빛이 유난히 강하던 그날은 이상하게도그 번잡한 도로에 거의 사람이 없었고, G는 바쁜 자신의 용무를 생각해내고는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보지 못하고 곧바로 대학원 학사행정실로 갔다.
그녀가 볼일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이미 도로는 깨끗했고 그 여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차를 뺀 그녀를 곧바로 차를 몰고페이 바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달렸다. 그러다가 깜박 잊어버린 것이 있어 그 때문에 대학원으로 돌아가자니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탓에 유턴을 해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유턴을 해서 은행과 마주보는 편의점을지나치려던 순간 뭔가가 차 바퀴 아래서 터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새끼쥐라도 치었나 보다고생각하며 그냥 가려던 그녀는 알 수 없는 섬뜩한 공포가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느끼고 이내 차를 세웠다. 차에서내린 후 조심해서 자신이 지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간 그녀는 터진 비닐 봉지와, 흥건하게 고인 채 말라가고있는 물과, 물 위로 엉겨붙은 피, 그리고 터져서 납작해진물고기의 내장에서 흘러나오는 극소량의 피를 보았다. 물고기가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물고기라고 생각지도못했다. 그러나 조그마한 지느러미 하나가 젖은 아스팔트 위에 착 붙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보는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 선명한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그제서야그녀는 그 자리가 방금 전 자신이 목격했던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자리임을 깨달았고, 자신이 방금 친 것이물고기였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이 바로 자신이 친 물고기였는지에 대해서는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무심한 햇빛만 줄기차게 내리쬐는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그 날이 10월 24일이었어요. 그 날이 애인 생일이라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구슬프고 맑은 실로폰의 타음이피아노 반주에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흡사 C를 위한 장엄한장송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미지막 간주처럼 들리기도 했다.
G의 얘기를 듣고 있던 H는 조용히 그녀에게물었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사람이 물고기가 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어째서 그물고기가 C였다고 확신하십니까?”
H가 질문하는 동안 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지 않나 하는 마음에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젊은 여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 여자 역시 커피를 다 마셨는지 쟁반과 빈 잔을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고는 나가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옆모습을 본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C가 아닌가? 설마. 그럴 리가 없다. C일리가 없지. 내가 반신반의하는 동안 G는 H의 질문에 예의 그 가냘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믿어요. B도믿었고, 저보다 먼저 C를 죽인 그 여자도 믿었고, 또 당신도 그걸 믿고 있으니까요.”
200×97
작가 약력:
김성원(필명).
79년생.
계명대 영문과 대학원 졸.
연락처:016-543-5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