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여름
22. 박영민
세복이 녀석이 웬일로 대낮에 웨이크 업에 들어왔다. 마침 한창 더위지는 6월 하순이었던지라, 녀석은 산뜻한 회색 반팔 티셔츠에 베이지색 카고 팬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있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남성적인 실루엣 덕에 모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헷갈려하는 녀석의 진짜 성별을 유일하게 드러내는 부분이 가슴이다. 여름이 되어 얇은 옷을 걸치게 되면, 압박 브래지어로도 완전히 가릴 수 없는 녀석의 가슴이 옷 위로 슬쩍 솟아 보였다. 때문에 여름은 녀석이 자신의 성별을 완전히 숨길 수 없는 계절이기도 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종잇장처럼 얇은 후드집업을 걸쳐서 자신이 여자임을 숨길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녀석은 한쪽 구석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천천히 아키에게로 다가갔다.
아키 녀석이 난데없이 나타난 후리후리하고 중성적인 존재를 주의깊게 위아래로 훑는 동안, 세복이는 씨익 웃으며 아키의 옆자리에 앉았다.
"네가 아키지?"
"네. 실례지만 누구세요?"
"얘기 좀 하자."
"그러니까 성함이......"
"함세복."
"아, 함세복 씨. 그러니까 잠깐만......함세복?"
아키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했다. 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는 세복이를 잠시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러나 곧 다시 그의 얼굴은 특유의 능글거리는 웃음기를 되찾았다.
"아하. 영 누나의 그 멋진 애인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응. 반가워해 줘서 고마워. "
"누나는 제가 별로 안 반가운가 봐요?"
"응. 그런 거 같다."
아까부터 세복이는 계속 바지 호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지 않고 있었다. 호주머니에 뭔가가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술 한잔 할래요?"
"아니 별로. 근데 너 몇 살이냐?"
"스물 셋이요."
"엄청 늙어 보이네. 그냥 내가 너보고 아재라고 부를 판이다?"
"에이, 그러지 마요. 저 이래봬도 정신연령은 열 다섯 살이에요."
"아하. 그렇구나. 그걸 몰랐네. 그래서 말인데, 어린 동생아. 너에게 꼭 해 주고픈 말이 있어."
"말씀하세요."
아키 녀석, 어이없게도 세복이와의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슬슬 내가 한 짓, 그러니까 세복이에게 아키와 영의 다정한 동영상을 보낸 짓이 잘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세복이는 호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서는, 아키의 얼굴에 갖다댔다. 오랫만에 보는 단도였다. 날카로운 단도날이 천천히 아키의 그 퇴폐적으로 나이든 그러나 꽤 매력적인 얼굴 언저리를 훑어내렸다. 덥수룩한 머리가 위로 뻗친 이마의 라인부터 관자놀이를 따라 귀 언저리를 타고 턱으로.
"너 한번만 더 내 애인한테 허튼 수작 걸었다가는, 훅 가는 수가 있다고."
"아, 네."
아키 녀석, 세복이에게 전혀 쫄지 않고 있었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그렇게 아키에게 경고하는 세복이 녀석 역시 전혀 화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녀석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세복이 녀석은 그저 필요에 따라 아키 녀석에게 의례적인 경고를 하러 왔을 뿐이다. 아키 녀석에게 분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누나."
"왜?"
"엄청 섹시하시네요."
순간 웨이크업 바의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감히 전투복의 위협을 유들유들한 태도로 응수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다들 감탄한 것이다. 세복이는 그런 그의 태도에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섹시해서 미안하다. 너 좋으라고 섹시한 게 아니라서. "
"아 뭐 괜찮아요."
아키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저, 진짜 영 누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요. 아니, 친누나 같아서. 그래서 그런 거예요. 쓸데없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 말을 듣고도 세복이는 특유의 웃음을, 그 잔인한 웃음을 거두지 않고 아키를 한참 노려보다가 드디어 칼을 치우며 대답했다.
"말귀 빨리 알아듣는 건 좋다. 담치 형. 나 위스키 한잔만 줘요."
"너 오늘 잘 왔다."
담치 형이 선반에서 1865년산 라프로익을 꺼내며 이를 갈듯 세복이를 노려보았다.
"너, 오늘 손님들 다 갈 때까지 거기서 꼼짝도 하지 말고 있어. 내가 너한테 꼭 따져 물어야 할 게 있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