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폭주
프롤로그-송선우
오래 전부터 꿈꾸어 온 운명의 여자가 있었다. 언젠가 그 운명의 여자를 만나면, 반드시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안티고네 같은 여자.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약혼자의 아버지인 왕과 대립하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그런 비극적인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를 언제나 꿈꾸어 왔다.
그리고 페이 바 클럽에서 유수연을 만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서 바로 그런 비극적인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그녀에게서 발견했다.
그녀가 내 운명이라는 걸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윤락가 출신이라는 것, 학력이 고졸에 불과하다는 것, 조폭에게 몹쓸 짓을 당해 잘 걷지도 못한다는 것 등등.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그녀의 얼굴에 서린 비극적인 아름다움에 나는 넋을 잃었다.
그녀는 거의 뿔테 안경을 쓰고 일을 했는데,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녀가 그 안경을 쓰지 않았다면, 그녀는 꽤나 많은 남자들에게 시달렸으리라. 그리고 그녀를 질투하거나 시샘하는 여자들에게도.
그녀는 중해방의 애송이 보스 박영민의 여자이니 건드리지 마라는 충고가 있었다. 또 일설에는, 박영민은 그저 그녀의 보호자일 뿐이고, 실제로 그녀는 레즈비언이며 그녀의 연인은 소문난 여자 깡패이니 아예 그녀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게 현명할 거라는 충고까지도 들었다.
박영민의 이종사촌 형이 내 친구였기 때문에, 박영민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동네에서 꽤 이름난 수재였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더니 결국 삼촌의 뒤를 이어 중해방의 보스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 일로 몸져 누웠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어찌됐건, 유수연을 쉽게 잊지 못한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매일같이 페이 바 클럽을 들락거렸다. 당시 이비인후과 전문의 자격 시험을 막 통과한 나는, 원래대로라면 친척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월급의사로 일해야 할 처지였지만, 도무지 유수연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첫 출근을 무기한 연기하고 말았다.
부모님이 아시면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 다행히 부모님은 두 분 다 미국에 체류중이셨다. 내가 유수연에게 빠져드는 것을 막을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정말 힘든 장애물이 곧 나타날 예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