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팩더블 3 헤리티지 10)

란의 폭주

by Kalsavina

10. 함세복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영민이 녀석을 만나면서 복장이 뒤집어질 각오는 충분히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녀석이 내 속을 뒤집은 것은 우리의 결혼이나 약혼 문제가 아닌, 전혀 엉뚱한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수연의 결혼이라니.

나와 마찬가지로, 수연 또한 언제든지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왜 까맣게 잊고 있었단 말인가.

때가 되면 어떤 남자에게든 그녀를 내줘야 한다는 사실을, 왜 잊고 있었나.

현기증이 났다.

지금의 내 처지가 일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하루 종일 집에만 있자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민이 녀석이 했던 말이 시도때도 없이 떠올라 마음을 괴롭히는 것 또한 참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수연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퀵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크게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고, 오로지 오복이 하나로 거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편했다. 게다가 처음도 아니었고, 어느 회사 소속이 아니라 철저하게 프리랜서였으며, 이런저런 경로로 알게 된 단골들도 꽤 있었다.

그러니까 그날 그 사고는, 그 퀵 배달을 하러 갔다가 용인 서울 간에 새로 개통된 구간인 용서고속도로를 타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진입이 (우리나라에서) 전면 금지되어 있는 걸 알면서도 고속도로를 올라타야 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동안 따라붙지 않던 바이크 두 대가 옆으로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히 폭주족들이 장난치느라 따라붙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노골적으로 오복이와 충돌을 시도하며 나를 위협해 왔다.

때는 자정이 되어가는 시각이었고, 지나가는 차들은 별로 없었다. 일단 용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나는 차선을 계속해서 바꾸며 칼치기(지나가는 차들을 예측이 불가한 방식으로 추월하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바이크들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칼치기를 하는 동안, 슬쩍 옆으로 붙었다가 멀어지는 바이크를 백미러로 본 나는 바이크를 탄 녀석이 칼을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나를 칠 작정이었다.

난감했다.

단순히 속력을 내서 도망쳐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따돌려야 했다.

이대로 죽으면 수연과는 영영 안녕이다.

뭐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세상에 별 미련은 없지만.

하지만.

아직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

이만큼 사랑했으면 됐다고, 그만해도 된다고 자신을 타이를 수 없었다.

좀 더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이제 겨우 듣게 된 그 노래를, 수연의 노래를 좀 더 듣고 싶었다.

집에 가면, 수연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있는 힘껏 속력을 냈다.

그 순간 나의 구세주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 크기가 엇비슷한 두 대의 화물 트럭이 약 5미터 정도의 차이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 대의 트럭이 차선을 바꾸면서 두 대가 거의 나란히 달리는 꼴이 되었다.

나는 눈으로 두 대의 트럭 사이의 간격을 가늠했다.

아슬아슬하게 오복이가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었다.

아마 내 뒤를 따르는 바이크들은 내가 분명히 저 트럭들에 가로막혀 속력을 줄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정신을 바짝 집중하고 내가 통과해야 할 좁은 공간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속력을 냈다.

목숨을 건 도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나는 나란히 달리는 두 대의 트럭 사이를 통과했다.

성공이다!

빠져나갔다.

믿을 수 없게도, 신이 내 편을 들었다.

오복이의 백미러를 통해, 두 대 중 한 대의 바이크가 트럭에 충돌해 처절하게 나가떨어지는 꼴이 보였다.

정말 한순간이었지만, 똑똑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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