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팩더블 3 헤리티지 22)

란의 폭주

by Kalsavina

22. 유수연



원래 그런 말까지는 할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묻는 세복이의 질문에 얄밉게도 잘난 척하며 대답하는 그 송선우가 꼴보기 싫었다.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예정에 없던 노래를 부르게 만든 것도 화가 났다. 노래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누군가에게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당하거나 유도당하는 것은 짜증나는 노릇이다.

잠시 어지러워서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송선우 선생이 세복이를 복도로 불러냈을 때, 조용히 그들의 뒤로 다가가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었던 거다. 다행히 내게서 등을 지고 선 송선우 선생의 큰 키에 가려 세복이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송선우 선생은 뒤를 홱 돌아보았다.

"기절했던 거 아니었어?"

"기절했던 건 맞는데. 좀 전에 깨어났어요."

"아하. 처음부터 기절하지 않았던 거구나. 내 팔에 안기려고 일부러 기절한 척한 거였어."

"대체 뭘 믿고 그렇게 잘난 척 하는 거죠?"

나도 모르게 격분한 나는 그렇게 큰 소리로 따져 묻고 말았다.

"내가 언제 당신하고 축가 부르고 싶어했다고, 내 의사 따위 묻지도 않고 사람들 앞에서 내가 축가를 부를 거라고 당신 멋대로......"

그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아 말을 끊었다. 송선우 선생은 이제 확실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 재수없어."

침착해진 나는 세복이의 존재를 잊은 채 말을 이었다.

"뭐든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 오냐오냐 떠받들려 자라기만 한 사람들. 뭐든 자신감에 충만해 제멋대로인 사람들. 세상이 온통 자신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고만 믿는 사람들. 미안하지만 나,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발목 다친 거 아니고, 아파서 기절하느라 가출했던 내 영혼 당신한테 맡겨 뒀던 적 없고, 당신 같은 사람하고 밀당 같은 거 하려고 레즈비언 된 거 아니니까. 이제 그만 가 주시겠어요?"

"유수연."

"저 요즘 잘 먹어서 꽤 무거우셨을 텐데, 여기까지 들고 오시게 한 건 죄송합니다. 아, 앞으로 노래 같은 거 시키실 때는 일단 당사자 의사부터 물어보고 시키세요. 제가 노래할 일은 없을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혹시 노래 같은 거 부탁하실 때는 그러시라고요. 세복아. 들어가자."

세복이를 억지로 잡아끌고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간 내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송선우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령 네가 살인자라 해도 난 널 사랑할 거야. 유수연."

나는 일부러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아 버렸다.

세복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말 그대로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저 사람, 정말 널 사랑하는 것 같은데."

"됐어. 저런 사람, 재수없어."

도대체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사랑 타령인가 싶었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꼭 끌어안았다. 그 존재가 나를 끌어안아 주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걸 문제삼고 싶지 않았다.

"너, 아까 꽤나 말 잔인하게 하더라."

"어쩔 수 없어. 사실이야."

"하지만 저 사람, 너한테는 진심이야."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모르겠어."

세복이가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이렇게 널 사랑하는데, 네가 아까 그 송선우한테 했던 말을 그대로 내게 퍼붓는 걸 상상해 버렸어. 소름이 끼쳐."

"그런 일은 없어."

세복이는, 항상 나의 연약한 모습만 보아 왔다. 내가 보여준 의외의 모습에, 그애는 예상 이상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더구나 쉽게 얕잡아볼 수 없는 그애의 맞수 앞에서 내가 보여준 의외의 모습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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