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폭주
23. 함세복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처음에 수연이 송선우 선생에게 퍼붓는 걸 들었을 때는 자못 통쾌했지만, 어째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애의 독설이 내게 씁쓸함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몇날 며칠의 시간을 두고 착잡한 마음으로 괴로워해야 했다.
안티고네는, 결코 연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결연한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사람이다. 연약하기만 해서는 결코 그런 비극의 주인공 역을 해낼 수 없다.
나의 수연이, 나의 예쁜 나비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 진짜 마음을 주는 존재를 향해 독설을 퍼붓는 걸 듣는 그 기분이 썩 유쾌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독설을 듣는 순간. 송선우가 아닌 내가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버려서였을까. 아니면 그제서야 영민이 녀석이 했던 말이 내게 현실로 다가와 버렸기 때문이었을까.
"나를 지키는 건 남자가 아니야."
수연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오히려 지난 여름, 수연이 내게 퍼부었던 그 독설 쪽이 훨씬 현실에 가깝다.
-박영민이 쉴드 쳐주지 않았다면.
-인정할 건 인정하지?
-올데갈데 없는 나홀로 인생.
-쌓아놓은 뒷백을 왜 네 발로 걷어차?
갑자기, 지독한 현실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남자들의, 남자들만을 위한 세상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나의 현실.
나는 왜 이토록 수연에게 절박하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건가.
늘 내가 그애를 지킨다고만 생각했었다. 그애가 나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어느 사이엔가, 수연을 그저 연약한 여자로서가 아니라, 내 든든한 혈육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의존하는 나 자신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었다.
과연, 그녀에게 정말 좋은 남자가 나타난다면, 그때도 내 이기심만으로 그녀를 내 옆에 붙들어 놓을 수 있을까.
아마, 놓아줘야 할 것이다.
영민이 녀석의 말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수연을 사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잃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내 사랑이,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날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 의지의 균열이 일어났다. 걷잡을 수 없는 내부붕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