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팩더블 3 헤리티지 27)

란의 폭주

by Kalsavina

27. 함세복




수연이 페이 바 클럽에서 형사들의 취조를 받던 그 시각에, 나는 아키와 함께 아키의 타운하우스에 있었다.

뜻밖에도 아키 녀석의 타운하우스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택시로 1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오복이를 타고는 아마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키 녀석의 집에 가면서 오복이를 탈 마음은 나지 않았다.

녀석의 타운하우스는 2층으로 이루어진 복층 구조의 단독형 타운하우스였고, 마당이 없이 바로 대문이 현관으로 이어진 구조였다. 1층에 경비실이 있어서 개인 경비원까지 고용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마약을 다루다 보니 그만큼 보안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이 분은, 일단 오시면 무조건 들여보내 주세요."

집으로 들어가면서, 아키가 나를 가리키며 경비원에게 그렇게 당부했다.

녀석의 집은 호화로웠지만, 사람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아서인지 마치 집이라기보다는 드라마 세트장을 떠올리게 했다. 초대형 벽걸이 TV와 플레이 스테이션이 있었고 심지어는 집 안에 간이 당구대까지 차려져 있었다. 이 정도면 구태여 클럽에 갈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아키는 간단한 안주와 술을 손수 내놓고는 나와 마주앉았다. 꽤나 고급진 술이었다.

마약이라는 게, 꽤 돈벌이가 되는 모양이다.

"너, 돈 많구나?"

"에이. 뭐 그렇지도 않아요. 여기 친구 집인데, 임시로 빌어 쓰고 있죠. 하지만, 이제 곧 떼돈이 들어올 거예요. 아마 여길 제 집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요."

일전에 중해방 녀석들이 내게 들려 준 바에 따르면, 아키의 얼굴이 심하게 삭은 것은 일찍부터 여자를 너무 밝혀서 그런 거라고 했다. 지금은 비록 이런 꼴이지만, 몇 년 전까지는 나이든 여자들이 좋아하는 기름진 스타일의 미남자였던데다가 소문난 색마여서, 돈과 권력을 가진 여자들이 그와 한번 자 보려고 줄을 섰었다는 것이다.

역시 안심할 수는 없는 놈이었다.

그러나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단지 수연에 대한 의혹만은 아니었다.

영민이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면, 수연은 언제까지나 영민이 녀석에게 휘둘리는 신세로 남아 있어야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키가 삼일의 마약 공급책이라는 증거.

아키가 삼일과 손잡고 있다는 정황은 있었지만, 역시 마약에 관해서는 기민할 정도로 감시망을 잘 빼돌린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녀석의 집에서 직접 마약을 맞는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 수 있을까.

"자, 드세요. 약 같은 거 안 탔으니까. 걱정 말고 드셔도 돼요."

"약, 그거 타도 상관없는데."

"네?"

"타도 상관없다고. 먹어 본들 뻗기밖에 더 하겠냐? "

"누나, 용감하시네요. 제가 누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고요?"

"남자가 여자한테 할 수 있는 짓거리야 뻔하지."

아키는 나를 빤히 노려보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래 흔들었다.

"역시, 공공의 적이야. "

"너, 그때 왜 그랬냐?"

"뭐가요?"

"지난 여름에 네가 한 짓 생각 안 나? 수연이 속여서 데려갔던 거."

"아아."

아키는 뒤로 물러앉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양 팔을 들어 등받이에 턱 걸쳤다. 다 잡은 먹잇감을 보는 듯한 맹수의 눈빛이 나의 분노를 자극했다.

할 수만 있다면 칼을 꺼내 찔러버리고 싶었다.

"수연이 누나한테 묻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뭐가 궁금했는데?"

"음 뭐. 대단한 건 아니었어요. 솔직하게 대답 안 해 줄까 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꽤나 솔직하게 대답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뭘 물어봤냐고?"

"그건 말 못해요."

격분한 나는, 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 녀석을 향해 냅다 던졌다. 칼은 녀석의 귀밑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벽에 맞고 떨어졌다. 녀석을 죽이고 싶었지만, 녀석의 집 밖은 물론이고 아마 이 방에도 설치되어 있을 CCTV를 떠올리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수연과 떨어져야 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음 순간, 녀석이 씨익 웃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녀석에게 걷잡을 수 없이 휘둘리고 있는 자신을.

녀석은, 내가 결코 자신을 죽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두번째 목적이었고, 수연이 누나를 납치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죠."

"뭔데?"

"세복이 누나보고 삼일에 가입하라고 할 생각이었어요."

"그럼, 그때 그 얘기를 왜 못했는데?"

"역시, 누나한테는, 나보다는 영민이 형이 보호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한 거죠. 유능한 형이고, 리더쉽과 카리스마도 있고, 나같은 양아치보다는 훨씬 더 누나의 보호자로 적격이죠. 게다가 집안끼리 정해진 약혼자라면서요?"

"그게 다냐?"

"네. 뭘 더 듣고 싶은데요?"

"넌 왜 나한테 남자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냐?"

"누나가 너무 세상 모르고 날뛰니까. 누군가는 뒤에서 막아줘야죠?"

젠장, 한 방 먹는 건 송선우 하나로 충분하다. 이런 애송이 양아치 따위에게까지 한 방 먹을 줄은 몰랐다.

"자,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우리 뭐할까요? 누나가 해달라는 거면, 뭐든지 다 들어줄 준비 되어 있는데."

"아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요.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말이야. 너, 그거 좀 줘 봐."

"뭐요?"

"너 심심할 때 가끔 맞는 거. 그 주사 말이야."

"그건 안 돼요."

"왜 안돼?"

"그거 엄청 센데."

"그러니까 달라는 거야."

아키는 주의깊게 나를 노려보았다.

"수연이 누나 때문에 그래요? 그 누나 때문에 괴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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