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폭주
28. 유수연
세복이는 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 그애는 술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있었고, 들어오자마자 피로에 지친 기색으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나로 말하자면, 장형사와 송선우 선생에 대해 생각하느라 도무지 세복이에게 신경을 쓸 정신이 없었다.
송선우 선생이 그런 식으로 내 알리바이를 만들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싫든 좋든 그에게까지 빚을 진 셈이었다. 진기가 떠나고 허무하게 집을 잃은 후, 자존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내세울 겨를 없이 세복이와 영민이의 도움을 받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송선우 선생에게까지 빚을 지고 말았다.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은 몰랐어. 놀라게 해서 미안해."
박영민의 사과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선우 형이 타이밍을 잘 맞춰줘서 다행이야."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세복이가 들어오지 않는 우리의 보금자리까지 나를 데려왔다. 아마 박영민은 속으로 내게 감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실신하거나 떨지 않고 침착하게 경찰을 상대한 것에 대해서.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다.
세복이를 떠나야 하는 날이 오리라고.
도대체 영민이가 왜 송선우 선생까지 동원해가며 내 알리바이를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감옥에 처넣고 그냥 세복이랑 결혼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나를 지키려 애쓰냐고 묻고 싶었다.
아마 송선우 선생이 없었다면 그렇게 따져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그만."
나는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세복이랑, 결혼하는 게 어때?"
"우리 엄마랑 똑같은 말 하네."
박영민이 픽 웃었다.
"너는 결혼 안 할 거야?"
"그건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야."
"결혼은 고사하고, 그 녀석이 널 단념하기나 해 줬으면 좋겠다. 봄에 세복이 보호하려고 너네들 억지로 갈라놨을 때, 세복이 녀석이 어땠는지 넌 모르지?"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어."
영민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뭘 들었든 간에 상상 이상이야. 그래서, 당장은 너네들 갈라놓고 싶어도, 세복이 녀석 어떻게 될까 봐 겁이 나서 말이야. 너 재주도 좋다. 그 안하무인을 어떻게 홀렸길래 그 지경으로 만들었냐?
---------------
세복이는 다음 날 낮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물론, 형사에게 취조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노래, 불러 줘."
탄산수 이외 일체의 마실 것을 거부하고, 그애는 침착한 눈길로, 창백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애가 내게 무슨 짓을 해도, 나는 그애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나를 위해 강태석을 죽인 아이.
차라리 그때, 강태석의 손에 죽는 게 나았다. 여러 사람을 위해서.
"갑자기 웬 노래야."
세복이가 피식 웃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잘도 부르면서, 나한테는 안 불러 주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발안의 시골길에서 내가 불렀던 노래는, 온전히 너만을 위한 노래였는데, 너는 벌써 그 사실을 잊은 거니. 함세복?
"너 외박해서 나 화났는데, 내가 널 달래야 하는 거니, 아니면 네가 날 달래야 하는 거니? 노래는 네가 불러."
나는 짐짓 토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가끔 세복이를 놀릴 때 그러듯 한쪽 눈 아래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혀를 내밀어 보이고는 거실로 나와 버렸다.
이런 기분으로 노래할 수는 없었다.
아마 할 수만 있었다면 소리지르며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세복이가 용서 고속도로에서 묘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구하던 그 동영상을 보아 버린 날 이후로, 눈물마저 완전히 내 안에서 말라붙은 느낌이었다.
호흡이 곤란해진다.
역시, 이 곳은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가벼운 고소공포증이 있었고, 우리의 오피스텔은 20층이 넘는 높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뛰어내리면, 그대로 끝날 수 있는 바로 그 높이.
통유리로 된 창가로 다가간 나는, 늘 쳐두던 커튼을 살며시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등 뒤에서 세복이의 팔이 내 어깨를 감쌌다.
"난, 역시 자신이 없다."
여느 때보다 더욱 낮은 세복이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널 잃고, 살아갈 자신은 없어."